1. 삼월, 삼월회의 비상(飛上)
봄이 오면 여인들은 바람을 탄다고 하지만, 남정네들의 마음 또한 간단치 않다. 그래서 삼월회 회원 여섯 명은 3월 23일(목), 서울을 떴다. 매월 한번 청량리역을 구름다리로 건너, 오삼 불고기집을 찾는 범상적인 생활을 일탈한 비상(飛上)이라할까?
오후 다섯 시 안 되어 김선배, 김형, 정형과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서선배, 이교수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일찍 수속을 밟고 면세점을 기웃거렸는데, 여자들에게 특히 다정다감한 김선배는 일치감치 따님에게 줄 화장품을 구입했다.
19시 15분 싱가포르(新加坡)행 비행기는 이륙하였다. 애초에 여섯 명이 모두 가보지 않은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싱가포르와 그 이웃인 조호바루, 바탐을 방문하는, 4박 5일의 여행으로 낙착되었었다. 저녁은 여덟시가 한참 지나서야 나왔는데, 그전에 마신 레드 와인 두 잔이 여행 기분을 슬슬 나게 하였다.
6시간 반의 비행시간을 조금이나마 죽이려고, 올해의 이상 문학상을 받은 ‘밤이여, 나뉘어라’를 읽었다. 주인공은 오슬로를 찾아 옛 동창 부부를 만나, 옛날의 미련을 확인하는 이야기이다. 빛과 어둠의 미학을 바탕으로 인간내면에 자리한 욕망을 묘파한 작품이라는데, 글쎄.
싱가포르 창기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Changi Village)에 도착하였을 때는 한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물줄기가 제멋대로 뻗치고, 그나마 시원찮게 나오는 물로 샤워를 마치기도 전에 옆방에서 호출이 왔다. 우리회의 기 살리기(cheer up) 선수, 이교수의 말씀, “첫 날 밤을 그냥 지날 수 있나요?” 여행사에서 준비해 놓은 열대과일을 안주로 싱가포르에서의 첫술을 마셨다. 바나나, 오렌지, 배 이외에 망고, 망고스틴, 드래곤후루츠, 스타우루치 등 열대 과일은 먹을 만했다. 특히 망고스틴의 흰 속살은 달콤했다.
2. 평화와 고요의 섬, 센토사
3월 24일(금) 아침7시 모닝콜에 선잠깨어 식당으로 내려가니, 한쪽 식당은 온통 한국 사람들뿐이었다. 너무 많이 와서 푸대접받는 기분이라 할까. 오른 쪽 일반 여행객들의 식당은 출구도 다르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8시 반에 숙소를 떠나 동해안도로(East Coast Parkway)를 달리니, 잘 가꾸어진 정원 사이를 누비는 기분이었다. 길가의 키 크고 의젓한 나무들의 이름을 물어보니, 남미에서 들여온 비나무(Rain Tree)라고 한다. 비가 오면 어깨가 축 쳐지는 특성이 있다고.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 끝에 위치한 부드러운 역삼각형 모양의 섬이다. 크기는 서울보다 조금 크고, 인구는 4백만 정도이며, 제일 높은 곳이 164미터인 평평한 나라이다. 싱가포르는 1819년 레플즈(Raffles)경이 싱가포르 섬을 조호르 술탄으로부터 사들여 영국 식민지화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레플즈는 비록 영국인이었지만, 리콴유 전수상과 더불어 싱가포르 사람들이 추앙하는 인물이다. 도시의 골격을 세운 사람이었지만, 원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년에 영국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 후 싱가포르는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에 맞선 영국의 대항기지가 되었고,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자 동남아 유럽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되어 독립국이 되었다.
인구의 78%는 중국인이다. 20세기 초 영국인들이 말레시아의 주석광산, 고무농장의 인력수요를 위해 중국인을 강제 송출한 것이 말레시아 등지에 중국인이 많이 살게 된 기원이 됐다.
싱가포르 남쪽 훼이버 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평화롭고 고요하다는 뜻)섬으로 이동하였다. 먼저 나비공원에 들렸고, 다음 수족관(Underwater World)을 들렸다. 모두 어린이가 되어, 인면충(Man-face Bug), 미미크라이(식물의 잎처럼 위장한 해룡), 바닷소(海牛), 빙해천사(날개 짓을 하는 달팽이 종류) 등을 찾았다. 나비공원과는 달리 수족관은 더위를 피할 수 있어 더욱 좋았는데, 상어와 가오리 천지였다.
다시 찌는 더위로 나와 이층버스를 타고 실로서(Siloso)해변으로 갔다. 누가 말하지 안했는데도 여섯 남정네의 발걸음이 쌕시한 수영복차림의 엷은 흑색 미녀로 향했다. 멋쩍게 미녀 주위를 한 바퀴 돌아,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았다. 깨끗하고 조그마한 해수욕장은 짝퉁이다. 땅이 좁은 나라라 바다도 메우는 실정이었지만, 여유를 부려 이웃나라에서 모래를 퍼날러 만들었다고 한다. 기념촬영을 하자니, 해변 한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는 두 동양여인의 다리 살결이 너무 눈 부셨다.
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진 실로소 요새(Fort Siloso)는 영국의 대일본 방위용 이었고, 일본 점령 시에는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실제로는 일본군은 바다 쪽이 아니라 조호바루 쪽으로 침공해왔으니.
싱가포르식 점심을 먹으러 씨빌리지(Sea Village)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곳에서는 인건비가 비싸 음식배달이 안 된다.”고 하는 가이드 설명에 맞받아, “우리는 배달민족이라 배달이 잘 된다.”했더니, 썰렁한 웃음이 터졌다. 미녀를 앞에 서게 해두고 자리에 편안히 앉은 김선배는 레이디 퍼스트가 아니고 올드 퍼스트라고 무언의 말을 하는 듯 했다.
씨빌리지는 야외식당으로, 자리도 그만이었고 음식도 먹을 만 하였다. 단지 눈치 없이 소주 팩을 꺼내려니 종업원들의 감시가 심상치 않았다. 벌금을 내고도 먹겠다고 호기를 부리니 가이드 홍차장이 극구 말렸다. 서선배님이 사주시는 싱가포르 맥주, 타이거 한잔의 시원한 맛, 왜 그렇게 좋았던지. 디저트로 가져온 과일, 푸딩 몽땅 먹었더니, 배가 보통 부른 것이 아니었다.
버스로 싱가포르섬에 돌아와 식물원(Botanic Garden)을 들렸다. 이곳은 말레이 지역 고무산업의 탄생지이다. 브라질의 고무나무를 들여와 현지 적응 단계를 거쳐, 주 생산지화 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국립 난 공원(National Orchid Garden)의 난들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던 품종들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노 무현 대통령 내외분의 이름이 붙여진 덴드로비움 꽃은 썩 아름다운 꽃은 아니었다. 리 콴유 전 수상처럼 칭송받는 인물이 우리나라에는 언제나 나타날지. 냉 온실(Cool House)로 들어서니, 찌는 더위가 다 가버렸다.
홍차장의 말로는 근육통, 벌레가 문 데에 좋다는 호랑이연고(Tiger Balm)는 호랑이 뼈가 아니고,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성이나 피부 알레르기가 없다고 한다. 이약을 만든 싱가포르사람 이름에 호(虎)자가 있다고.
3. 빛나는 보석, 조호바루(Johor Bahru)
싱가포르섬 왼쪽에 치우친 북쪽에서 160미터 길이의 다리를 건너면 말레이시아 조호르주 수도 조호바루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 가는 도시다. 국경을 넘으려니 입출국 수속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홍차장의 역량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여직원과의 얼굴 대면만으로 신속히 통과하였다. 역시 특별대우는 좋은 것이었다.
버스로 다시 이동하여 공동묘지를 방문하였다. 이슬람교도들은 시신의 머리 방향을 아라비아로 향하도록 한다고 한다. 서양의 묘지와 별다름이 없었으나, 빈자의 묘지는 구역도 틀리고, 손질이 허술하고 일부는 허물어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호화분묘와는 다른 조그만 차이이다. 어째든 꽃 한 송이 들고 찾아올 이 없음이 정녕 쓸쓸함이리라.
다음으로 말레이시아인 여자 가이드, 테레사의 안내로 동네에 심어져 있는 야자수(Palm)며 여러 가지 열대식물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산세베리아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무도 제 곳에 심겨져야 꽃을 피우지. 또 문주란도 심겨 있었는데, 영어이름이 Spider lily이다.
곧 이어 깡뽀마을의 민속춤을 구경하였다. 춤보다는 앙드롱이라는 대나무 악기가 이색적이었다. 그렇고 그런 춤 뒤에 손님과의 합작 춤이 있었다. 우리의 대표선수 김형은 이국인이라는 느낌이 안날정도로 그녀들과 잘 어울려 춤을 추었다. 사진 촬영 후 무대 옆 동네 구멍가게에서 과일로 만든 과자류를 예의로 샀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값을 낮추어 달라고 하다, 서선배한테 혼이 났다. 많이 사는 것도 아닌데, 후한 마음을 가지라고.
이곳에서 마지막 들린 곳은 이 나라에서 가장 잘 지어진 것 중의 하나라는 이슬람사원이었다. 내부 구경은 할 수 없었지만, 넓은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마침 이곳을 찾은 말레시아 여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였다. 원빈을 좋아하는 소녀들이었다. 우리들은 원빈의 아빠가 되고. 경쾌한 소요, 귀여운 모습과 표정들, 한동안 우리도 젊어지는 것 같았다.
국경을 통과하는 길은 싱가포르 항에서 선적될 화물을 나르는 트럭들로 정체가 되었다. 반대방향은 더한 교통체증이었는데, 퇴근길의 말레시아근로자를 태운 차들과 오토바이들의 줄이 끝이 안보였다. 싱가포르는 이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주고, 조호바루는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고. 하여튼 이 정체 속에서도, 여간해서 클랙슨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국경에서 우리는 가이드 테레사에게서 배운 인사말 ‘조빠라지(또 봅시다)’를 그녀를 향해 외쳐대었다. 그녀의 한국말 실력은 보통이 넘을 뿐 아니라, 목소리, 제스처, 유머감각이 코미디언 감이었다. 현재 그녀는 한국인 남편과 살고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로 돌아온 우리는 차이나타운에 있는 고려정에서 한식 저녁을 들었다. 점심때의 경험을 살려, 미리 생수병에 소주를 부어와 소주 한잔 씩 했다. 허지만 잔을 따르고 하는 짓들이 주인 눈에 띄기 십상이었다.
숙소(Changi Village)에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자마자, 김형의 방에 집합하여, 안하면 팔이 근질근질한 팔운동을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는 챔피언급인 김선배는 소문과 같이 해외에서 맥을 못 추었다. 싱가포르의 두 번째 밤은 이교수의 독무대였다.
4. 아빠 까봐르, 바탐 (Apa Khabar, Batam)
3월 25일(토)에는 숙소를 8시 15분에 출발하여 차이나타운에 잠간 들렸다가, 싱가포르 섬의 정남쪽에 있는 크루즈 센터로 갔다. 이곳에서 10시 50분배로 동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걸려, 인도네시아 바탐섬에 도착하였다.
말레이 반도, 자바, 수마트라는 8세기이전에 슈리비자야라는 강대한 해상제국에 속하였었다. 지금도 비록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 따로 이름이 있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두 나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홍콩부자가 싱가포르에 투자하듯이 싱가포르 부자가 바탐섬에 투자하여, 바탐섬은 개발 열풍에 싸여 있다. 골프장 같은 레저시설은 물론 산업시설이 들어섬에 따라, 게딱지같은 근로자 숙소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경제가 하향일로에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예외적인 일이다. 불모지였던 섬의 인구가 70만이 넘어섰다고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기념품 가게를 들린 다음, 관우장군과 부처를 함께 모시고 있는 사당(大伯公廟)에 내려 분향도 했다. 그리고는 바로 옆 과일시장에서 맛있는 망고스틴을 한 봉지 사고, 두리안 1개를 별도로 30불 주고 사서 배를 갈랐다. 전부들 먹어 보았는지, 입을 대는 사람이 없다. 식성 좋은 김형도 저만치 도망갔다. 서선배와 둘이서 먹어 치웠는데, 맛이 좋아서 먹은 것이 아니라, 본전생각이 굴뚝같아서였다. 냄새만 지독했지, 열대과일의 왕다운 맛은 없었다.
점심은 나고야타운에 있는 커다이어(Kedire)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먹었다. 우리의 입맛에 맞춘 음식이었지만, 정말 맛있게 배불리 먹었고, 물병에 넣은 소주도 한잔 하였다. 소주를 먹어도 개의치 않는 이곳은, 싱가포르에 비해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것 같았다. 현지인 가이드 알판(Al-pan)은 입만 뻐끔하면, 인도네시아 공무원들의 부정부패에 관해 떠들었다. 어떻게 보면, 벌금, 곤장제도 등이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는 싱가포르는 숨이 막히는 사회라고 할까?
점심 후 마사지를 원하는 여행객은 도중에 내려놓고, 2시에 숙소(Batam View Beach Resort)에 도착하였다. 배정받은 방에 들어서니, 속이 탁 트였다. 바다 건너 동쪽에는 반대편의 섬 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위에 떠도는 적막감. 간간히 지나는 조그만 배들.
잠들면 머리맡은 늘 소리 높은 바다/ 내 꿈은 그 물굽이에 잠겨들고 떠오르고/
날 새면 뭍에서 멀리 떨어진 아아 나는 외로운 섬//
철썩거리는 이 슬픈 시간의 난파(難波)/ 내 영혼은 먼 데 바람으로 밤새워 울고/
눈뜨면 모두 비워 있는 홀로뿐인 부침(浮沈)의 날 ( 이 근배의 ‘부침’ )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호텔 수영장으로의 집합 메시지 도착. 우리 여섯 명은 풀장 앞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다가, 어떤 사람은 수영하고, 어떤 사람은 수영복 입고 폼만 잡고, 그러다가 어떤 사람은 풀장 건너편 그림 같은 해수욕장을 걷기도 했다.
저녁은 호텔 근처에 있는 야외식당 아마존에서 게 요리를 들었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한국여자들 한 무리가 먼저 자리를 잡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유혹을 받았으면 하는 눈치들이었다. 목석인간들은 전주 사나이가 내놓은 이곳의 백주(Apak Putiu, 14.5%)에 빠져들었다. 어제 저녁 소주 한잔에 대한 그의 답례였다. 부드러운 술이었다.
다음날 3월 26일(일), 5시에 울리는 모닝콜에 선잠을 깨었다. 밖은 주룩주룩 비가 나리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자, 알판의 조크가 또 시작되었고, 여자들이 자지러졌다. 우리가 방문할 원주민 마을에는 남자 화장실이 없다고. 나무 밑에 일 보는 것은 좋지만,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좋아하니까, 조심하라고. 잘 못하면 집에도 못가고, 아주머니한테 쫓겨난다고. 별 내용은 아니지만, 익살스럽게 생긴 외국 남자가 한국말로 능청을 떠니, 꼭 코미디 쇼였다. 그는 우리에게 몇 마디 인도네시아 말을 가르쳐 주었다. 아빠까봐(안녕하세요)르. 이곳 사람들은 말 끝부분에 혀를 굴리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브자리(좋다, 최고라는 뜻)까르르. 이 친구 툭하면 이브자리를 깔았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마을에서 민속춤을 보고, 꾸며 놓은 예식장에서 사진들을 찍었다. 질이 좋다는 인도네시아 커피를 사기도 하고. 이곳의 특이한 점은, 춤 등에 대한 대가로 팁을 개별적으로 요구하는 대신, 출구에 돈 넣는 함을 준비해 놓았다. 동네 꼬마들도 그냥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천진스러운 몸짓으로 바나나를 사달라고 했다. 맘 좋은 아주머니들, 바나나에 질렸는지, 돈 만 주고 바나나는 돌려주었다.
부두에서 알판과 이별하고, 다시 배를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하여 입국절차를 마치니, 홍차장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5. 주롱 새 공원, 그리고 시내관광
싱가포르에 도착하니 바탐과는 달리, 비는 안 오고 날씨는 무더웠다. 버스를 타고 알프레드 보석점(Alfred's Jewellery)에 들려, 체질에 맞는 보석이 무엇인지를 체크해보니, 내 체질에는 오렌지색이 맞는다고 했다. 장사속이라도 그럴듯했다.
혜복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우리는 주롱 새 공원(Jurong Bird Park)으로 향했다. 먼저 모노레일을 타고, 공원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저번에 탔던 케이블카와 마찬가지로 한차에 6명씩 탔다. 그러고 보니 여섯은 요번 여행에서 참 편리한 숫자였다. 의사결정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젊은이 못지않은 서선배께서 합리적 결정을 내리셨다. 이교수가 그랬던가? 일곱이면 고스톱을 한 팀으로 못한다고.
새우리가 없이 사육되고 있는 플라밍고 무리도 구경하고, 원앙(Mandarin Duck), 펭귄, 올빼미 등도 구경했다. 올스타 버드 쇼도 구경할 만 했다. 농구도 하고, 목소리 흉내도 내고, 수영도 하고, 관람석에 있는 손님에게 물건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동남아 까무잡잡한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주말이라 동남아 근로자들이 모처럼 공원을 찾았는가 보았다.
주간의 마지막 코스로 싱가포르강 입구에 위치한 멀라이언(Merlion)공원을 찾았다. 강바람과 멀라이언(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의 입에서 품어 나오는 물줄기가 모처럼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싱가포르는 사자의 도시(Singa Pura)가 어원이라고 한다.
저녁으로는 리쿄식당(Rykyo Inn)에서 스팀보트을 먹었다. 이 요리는 몽고인이 전래한 청나라의 겨울음식이다. 어패류, 만두, 쇠고기, 야채 등을 닭 육수에 익혀서는 칠리소스 등에 찍어 먹는다. 요즈음 서울에서도 유행 중인 음식이지만, 이곳의 음식은 정말 끝내주었다. 중국인 종업원에게 “쩐 피아오량 (정말 예쁘다)”했더니, 추가 서비스가 보통을 넘었다.
저녁 후 소주로 붉어진 얼굴을 하고는, 줄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트라이쇼(자전거 옆에 두 사람이 탈 수 있게 변형한 수레)에 정형과 함께 올라탔다. 우리는 제일 젊은 친구가 모는 트라이쇼를 골랐다. 브라이언 왕이란 이름을 가진 이 친구는 앞서가는 수레들을 따돌리고, 북적거리는 인도거리(Little India, 인도계통이 싱가포르인구의 7%)와 시내중심가를 달렸다. 자전거 달리는 속도와 별반 차이가 없었고, 밤바람은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둘째딸보다 한 살 많은 왕이란 친구,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는데, 서울 오면 딸을 소개해주겠다니, 껄껄거렸다. 잠깐 동안의 중국어 연습이었다.
요번여행의 마지막코스는 유람선을 타고 싱가포르강을 타고 내려가, 멀라이언공원까지 갔다 오는 것이었다. 한국말로 된 테이프를 틀어주었는데, 오래되었는지 간혹 끊겼다. 우리의 한강과 비교하면 조적지혈이라 할까. 싱가포르하면, 그저 도시국가 정도로 생각하는 우리. 그러나 이 나라가 추구하는 “Clean & Green"이 부럽기 짝이 없다. 도시만 아니라 사람도 깨끗한 나라, 국민의 생활향상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나라. 그리고 싱그러운 꿈이 있는 나라. 이 나라는 앞으로의 전략사업으로 의료, 제약 등 공해 없는 하이테크산업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위조를 방지하는 지폐발행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달했다고 한다.
6. 쉔지(深記)에서의 야참, 그리고 귀국
호텔에 돌아와서는 샤워하고 바로 이교수방에 모였다. 마지막 소주 네 팩을 비우고 나니, 술꾼들은 아쉬움이 그득했다. 그래서 호텔을 나와 큰 네거리를 우로 돌아, 쉔지(深記)라는 식당을 찾았다. 길가 식탁에는 우리와 같이 여행을 즐겼던 젊은 부부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메뉴판을 뒤져 처음에는 버섯야채요리, 나중엔 새우요리를 시키고, 타이거 맥주 큰 병 6병을 시켰다. 첫판에서만 소득을 올렸지, 바로 환원 시켰던 이교수가 요리 값을 냈고, 항상 본전인 김형이 맥주 값을 계산했다. 요리는 둘 다 감칠맛이 있었다. 그런데 새우는 7마리. “서선배님 드시지요.”하다가, 결국 6등분하고 말았다. 술기운이 오르자,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의 느낌을 느꼈다. 줄곧 여행사의 계획대로 움직이다, 자유를 느껴본다 할까.
요번 여행을 통해 삼월회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진 느낌이다. 특히 룸메이트였던 입사동기 정형과는 말을 안 해도 서로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여행은 나를 찾는 것이라는데, 나를 찾은 것인가?
3월 27일(월), 여행기간 내내 잠을 못자서인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잠이 쏟아졌다. 그런데 잠들만하면, 승무원들이 잠을 깨웠다. “뭣 마시겠어요?” “Chicken or fish?" "선물 무엇 하나 안 사시겠어요?” 마나님 줄 선물에 대해 고민 고민하다가, 백 불짜리 흑진주 목걸이 하나를 샀다. 마나님은 진짜 천 불짜리 목걸이를 사준다고 해도 믿지 않을 사람이니까, “짠돌이가 그렇게 비싼 것을 살 리가 있어?”하며.
오후 5시 넘어 집에 도착했는데, 쇼울더백이 없었다. 한참 생각해보니, 공항버스 의자 팔걸이 밑에 두고 내린 것이 틀림없었다. 오, 흑진주 목걸이! 끝.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봉사에서 찾은 사랑하는 까닭(2006.11.27-29) (0) | 2015.09.26 |
---|---|
늦봄, 지혜의 언덕을 넘어 (2006.5.29-30) (0) | 2015.09.26 |
봄의 길목을 추월, 문수골을 향하여 (2006.3.4-5) (0) | 2015.09.26 |
바로물가의 겨울연가 (2005.12.9-10) (0) | 2015.09.26 |
마가목 빨간 열매를 밟으며 (2005.9.2-3) (0) | 2015.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