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숙소에 늦게 들어와
다음날 아침 짐꾸려 나가려니,
Ibis Brussels Waterloo 내부는
온통 전투그림.
그러고 보니 이곳이 워터루전투(1815)가
일어난 곳이며,
지금은 벨기에 땅.
워터루는 프랑스사람에게
회한이 많은 곳.
아바가 노래한 워터루.
남자에게 강제로 정복을 당했지만,
차라리 잘되었다는 여자의 마음을
워터루전투를 들어 노래했다.
워터루전투의 영향을 들면,
유태계열 로스차일드가문은 이 전투에서
엄청난 부를 축재, 상업자본의 초석을 쌓았고,
나폴레옹 황제즉위에 실망한 베토벤은
웰링톤의 승리라는 곡을 만들었다.
또 웰링톤의 승리교훈을 얻기위해
그의 모교 이튼고교를 방문한
쿠베르탕남작은 운동하는 학생들을 보고
올림픽을 구상했다.
파리까지 가는 320키로의 여정,
세계3대 곡창지대인 드넓은
로렌평야를 지났다.
프랑스는 전통적 농업국가.
농업협동조합계은행이 강세다.
휴게소를 들리니
크로아상 빵이름이 눈에 띠었다.
공장지대도 지나고.
고속도로엔 미국처럼 트럭들이 많다.
트럭수송이 90%의 점유율을 차지.
차들은 전조등을 켜고 가고.
파리시내는 샤를 드골공항의 서남쪽.
파리는 면적은 서울의 1/6이고
인구는 225만명. 6세기 메로빙거왕조가
수도를 정한 후, 10-11세기를 제외하고
정치의 중심이었다.
지금의 파리는 제2제정시대(1852-70)
나폴레옹3세때 오스망남작에의해
계획된 도시.
유럽대륙은 복잡한 과거를 가졌다.
로마대국의 성립, 고트족의 이동,
훈족, 몽고족, 이슬람의 침입,
북방의 게르만의 이동 등.
거기다 유럽왕조들간의 정략결혼.
쉴새없이 전투가 있었고,
국경의 변동도 심했다.
파리는 이곳에 살던 갈리아의 한 부족,
파리시아부족의 이름에서 연유한다.
파리에 들어서니 집시가족이 보였다.
집시는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북인도에서 가족단위로 이동,
전세계에 살고 있다.
2천만명의 집시중 유럽에 6백만.
루마니아, 폴란드에 많이 살며
배타적 문화와 방랑기질이 특징.
유럽사회의 두통거리이지만,
전통 수공예품,카드점, 춤과 음악 등
유럽사회에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없다.
서울 오페라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오르세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은 오르세궁, 기차역의 자리.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맞춰
역사를 세웠을 때는, 시민들의
반발이 컸지만,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변신했다가, 1939년 폐쇠되었다.
1979년, 루부르박물관, 뤽상부르미술관
등에서 인상주의(19세기중-20세기초)를
중심으로 전후에 활동한 미술가의 작품을
인수받아 개관했다.
농촌출신 밀레(1814-1875)가 그린 만종.
빛과 대기의 색으로 칠해진 무념무상 자연속에
가난한 농부 부부를 그려 넣었다.
77년 루부르을 찾았을 때,
그곳에 있던 그림이다.
마네(1832-1883)의 피리 부는 소년.
입체감이 없고 주제가 없다고
루불 살롱전에서 낙선한 작품.
벨라스케스(1599-1660)의 영향을 받아
선명하고 과감한 색채가 돋보인다.
마네의 올랭피아.
누드에 입체감이 없는 그림으로
당시 인기의 고급창부 올랭프를 연상시켰고,
시민들의 분노를 샀던 그림.
나부의 뻔뻔하고 노골적 시선,
가려진 음부는 끈적한 시선을 유도한다.
꽃을 든 하녀는 손님이 왔음을 말하고,
암고양이는 매춘을 암시한다고.
르누아르(1841-1919)의 그네.
뚜렷하지않은 윤곽선, 얼룩처럼 뭉친 색,
그림자, 그리고 바닥의 색이 현란하다.
인상파그림은 장소에서 받은 인상을
잡기에는 좋지만, 인물의 섬세한 표정,
특징을 잡는데는 한계가 있다.
고흐(1853-1890)의 폴 가셰의 초상화.
고흐가 정신병으로 고통 받을 때
그를 높이 평가하고 격려한 정신과의사,
가셰박사는 화가이며 그림수집가.
고흐가 죽기 전에 고흐와 교류했고,
슬프고 우울한 그의 표정은
그가 아내와 사별 후
우울증에 빠져있었기 때문.
탁자에는 심장통증을 치료하는 약초가.
고갱(1848-1903)의 타히티의 여인들.
타히티는 고갱이 부르조아의 위선적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며,
파리화단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왼쪽의 타히티 의상, 오른쪽은 서양옷.
원시와 문명이 대조되며,
여인들의 표정은 우울하다.
서양옷을 입은 여인은 고갱의 여인.
화려한 색상, 자연색을 벗어난 배경,
평면적 바다 등은 고갱의 특유화법.
쿠르베(1819-1877)의 세계의 기원.
쿠르베는 현실참여형 화가.
나폴레옹3세를 비난, 방돔광장의 3세동상을
파괴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었고,
그후 스위스로 망명.
저항기질이 다분한 야한 그림으로 악명이
높았고, 모델은 동료화가의 연인.
이그림으로 친구와 결별했다고,
그림은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화두.
미술관을 나서니, 센강 건너
왼쪽은 콩코르드광장쪽 놀이기구.
센강 건너 오른쪽은 루브르박물관.
(파리 약도)
에펠탑 가는 길.
멀리 좌측이 콩코르드광장.
프랑스는 면적은 한국의 6.7배,
인구는 66백만명. 캐토릭신자가 85%.
로마시대때는 갈리아지방.
3세기 게르만 프랑크족이 침입,
5세기 후반 프랑크왕국건설.
10세기말, 프랑크왕국 멸망하고
카페왕조 창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동프랑크는 독일, 서프랑크는 프랑스.
14세기 초반 영국과 백년전쟁이 있었고,
16세기말, 부르봉왕조가 창시되어,
루이 14세(1638-1715)때는 스페인에
우위를 지키고, 중상주의, 해외식민지로
프랑스의 영광을 얻었던 시대이다.
1789년 시민혁명으로 공화제가 되었으나,
1804 나폴레옹황제가 즉위,1814년 퇴위,
공화제와 왕정복귀 등 혼란이 있었다.
1940년 독일에게 항복하였고,
1958년에는 드골의 5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맞아
1889년 준공되었다.
당시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고
모파상 등의 비판이 거세었었다.
센강 서쪽 샹드 마르스공원 끝에 있다.
텔레비안테나가 설치되어 높이가 324미터.
다음엔 개선문으로 이동.
샤를 드골광장 중앙에 서있는 이 문 중심으로
12개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쳐 있다.
이문은 프랑스의 승리와 영광을 기념,
나폴레옹의 명으로 시작,1836년 완성했으나,
나폴레옹은 1821년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서거, 정작 본인은 보지를 못했다.
로마 티투스황제의 개선문을 본땄다고.
1차대전 무명용사의 시신이
문 아래 매장이 되어있고,
1945년 해방기념으로
드골장군이 이문 아래로 행진했다.
문 아래에서 보면, 나폴레옹때
참전한 558명 장군이름이 있다.
마침 12월1일이라,
개선문에서 콩코르드광장까지 이르는
샹젤리제거리의 성탄 장터에선
개장 점등식이 있었다.
뜨거운 적포도주 한잔 하며
무엇을 사먹을까, 토핑은 무엇으로 할까?
저녁은 현지식 에스까르고로.
생각보다 맛있었다,
조그만 달팽이라 양이 적어 아쉬웠지만.
다음날 시내로 향하는 길.
스페인에서도 그랬지만, 이곳도
벽면 등에 빈 구석이 있으면 낙서가.
그래휘티(graffities)라 한다.
벽 등에 긁거나 스프레이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을 말하는데,
기원은 고대동굴, 이집트 유적에서 왔다.
60년대말 필라델피아에서 시작하여
뉴욕 브롱크스거리에서 본격화.
반항적 청소년, 흑인 등 소수민족사람들이
즉흥, 충동적으로 그린 것으로
장난스럽고, 상상력 넘치는 것도 있다.
키스 해링에 의해 현대미술로 인정받았고,
유럽에서는 공산시대 동유럽에서
억압받은 내용을 표현한 것이 시초.
담장도 예술작품이다.
메트로 입구의 초라한 행인.
1916년 건설된 메트로는 16개 노선.
역간 거리가 짧고 시내 안가는 곳이 없다.
77년도 이곳에 왔을 땐
메트로로 파리명소를 구경했었다.
건물에 붙여놓은 크리스마스트리.
라파예트백화점에서 쇼핑.
털모자 15천원에 샀는데,
작은 물건이라도 예쁘게 포장을 해준다.
화려한 천장, 왼쪽엔 엄청나게 큰
크리스마스트리의 끝부분이 보인다.
점심식사후 루브르박물관 가는길,
이집트에서 선물한 콩코르드광장의
오벨리스크가 보였다.
이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
18세기 루이 15세 명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루이15세는 1715년에 등극, 정치에 무관심했고,
애첩 퐁파드르부인에 모든 것을 의존하여
반감과 불신을 샀었다.
1789년 시민혁명때 루이 15세 동상이
파괴되었고, 혁명광장으로 개칭되었다.
동상자리에는 단두대가 놓이고,
마지막 절대군주,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1,300여명이
처형을 당했다.
그래서 피의 광장이라고도 한다.
1795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
화합이라는 뜻의 콩코르드(Concorde)
광장으로 개칭했다.
박물관 입구.
박물관 자리에는 1190년 요새가 지어졌고,
16세기 중반 왕궁으로 재건축되었으며
1793년 궁전 일부가 미술관으로,
그리고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왕실수집품으로 시작,
루브르에 보관하기 시작했고,1725-1848년
살롱카레에서 살롱전이 개최되었다.
프랑스 최초황제, 나폴레옹(1769-1821)때는
약탈 미술품이 유입, 5만점이 넘었다.
밀러의 비너스상, 기원전 2세기의 작품.
밀러섬의 아프로디테신전 부근에서
발견, 헬레니즘시기의 작품이다.
40대의 완숙한 몸매.
그리스섬, 사모트라스의 니케(승리의 여신).
BC190년대의 토관 속 여인상.
그리스섬에서 발견, 산산조각이
난 것을 복원. 헬레니즘시대의 것.
나이키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말한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제(1528-1588)의 가나안의 혼인잔치.
예수는 이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켰다.
후기 르네상스시대 베네치아파 화가로
티치아노(1488-1576)의 영향을 받아,
빈틈 없는 구도, 화려한 색채가 돋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세례요한.
다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남색행위를 했다고 함.
세례요한이 여성스러워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 앞은 항상 인산인해.
얼굴을 살짝 돌린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고
윤곽선을 흐리게한 것이 신비롭다할까.
공기원근법(뒤에 펼쳐진 풍경)을 썼다.
세계의 최고인양 착각을 일으키는 것은
그림을 둘러싼 의혹 때문이라고.
모델이 누구인가 하고.
금요일인데도
박물관은 사람물결로 가득 찼다.
나폴레옹의 전속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
(1748-1825)의 나폴레옹 대관식.
화려한 의상, 고혹적인 빛,
담담한 톤이 특징.
204명이 그려져 있고,
나폴레옹 모친을 중앙에 배치했으며
나폴레옹의 키를 크게 그림.
나폴레옹 대관식인데, 조세핀에게
나폴레옹이 관을 씌워주고 있고,
교황은 무력하게 앉아만 있다.
데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메두사호의 뗏목.
인간의 처절함을 극적으로 표현,
보는 사람을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1816년 세네갈을 향하던 배가 조난,
150명중 14명만 생존.
감정에 호소하는 낭만주의적 그림.
미국인 건축가 이오밍 페이가 세운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놀라는 여인.
서구의 금연가들은 줄지 않은 것같다.
거리엔 담배피우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여성들도 마찬가지고.
Pharmacy가는 길,
마주친 노트르담 사원.
1163년 시작하여 1250년에 완성한
고딕양식의 결정체.
야간에 본 에펠탑.
에펠탑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센강.
좌측강변은 크리스마스장터로
빛이 환하다.
유람선 투어를 했다.
노트르담사원이 있는 시테섬,
생루이섬을 한바퀴 돌았다.
밤에 보이는 노트르담 사원.
노트르담사원이 서구에 많은데,
이태리 두오모와 마찬가지로
그지역의 대성당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강변에는 초겨울의 냉기를 즐기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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