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오후, 퓌센에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까지는 112키로.
알프스를 넘었다.
알프스에 걸쳐있는 나라는 일곱,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리히텐슈타인.
그중 오스트리아가 차지하는
면적이 가장 크다 한다.
산꼭대기엔 로마시대 초소?
한니발이 코끼리 부대를 대동하고
알프스 넘어 로마로 진격할 때,
주간엔 보초들이 지키고 있어
야음을 이용하여 넘었다는데.
오스트리아 티롤의 주그스피츠브릭
휴게소에서 설경을 즐겼다.
이지역에 있는 Lermoos,Biberwier는
겨울스포츠의 명소로 이름이 나있다.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5세기 훈족의 침입에 따라,
도나우강유역에 살던 서게르만계
바이에른족(영어론 바바리아 야만인)이
알프스 산기슭에 자리잡을 때부터이다.
오토3세(983-1002재위)때 처음으로
Osterriche(동쪽의 나라) 이름이 나온다.
오스트리아는 13세기말 합스부르크
초대황제, 루돌프1세 이후 동 왕가의 영유지.
16세기 후반 투르크침입을 막았고,
18세기 마리아테레지아여제가
근대국가의 초석을 닦았다.
19세기초는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아
러시아 원정에도 참여했다.
이후 독일연방의 맹주로 있었으나,
1866 연방을 탈퇴하고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을 이뤘었다.
1914년 슬라브족과 대립중에
황태자부부가 슬라브민족 비밀조직에
의해 암살당함으로 1차대전 발발.
또 이사건으로 6백년 넘은 합스부르크
왕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어 국토는 쪼그라들고
독일과 합병되었다가
1945년 승전국 소련이 진출했고,
1955년 독립하여 주권을 찾았다.
언덕위의 교회당, 동화속 나라같다.
오스트리아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8/10 좀 넘고, 인구는 870만.
양지쪽은 녹색의 세상이다.
4시에 인스부르크에 진입하였는데,
캐도릭국가답게 벽에 예쁜 성화가.
시내에 들어서면 구시청사의
시계탑이 보인다.
청사는 파괴되고 종탑만 있다.
탑의 148계단을 오르면 시내와 인강,
그리고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Innsbruck는 인강 위의 다리라는 뜻.
한 건물에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재미있게 우리를 본다.
크리스마스장터에는 사람물결이.
그 유명한 황금지붕(Goldenes Dachl) 위로
파랗게 매직이 걸렸다.
이곳에서 15세기 말, 맥시밀리안1세와
마리아비앙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그는
오스트리아의 광개토대왕이라 할까.
비록 결혼정책으로 영토를 늘였지만.
지붕 아래에는 황제의 두부인을
포함한 조각들이 있다.
황금지붕 건물벽에는 황제 휘하의
여덟개 영지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황금지붕 뒤로는 알프스 설산.
인스부르크는 인구 12만의 도시로
서부 티롤주의 수도.
남북으로 2.5천 미터 산으로 둘러싸인
로마시대부터 알프스의 교통요지.
맥시밀리언 1세의 황실 덕분에
유럽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인가
착각이 드는 창문.
오스트리아하면 생각나는 것이 두개.
하나는 박태준회장이 포철을 창립할 때
파트너가 이나라의 페스트제철소.
일본측에서 거절을 당한 후,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받았다.
또 하나는 프란체스카 영부인.
낙산 아래 이화장은 해방후 거처가 없는
이대통령에게 주위에서 마련해준 집인데,
70년에 그녀가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그녀는 장개석총통이 준 냉장고를
35년 사용할만큼 검소했다.
남보다 잘사는 모양을 보이며
거드럭거리기 좋아하는 우리들,
독일, 오스트리아사람들에게서
배워야하지 않을까.
거드럭거리는 정치인들,
무엇이 그리 잘났는지.
인스부르크에는 크리스탈 명품
스와로브스키 본사가 있다.
시내에서 산쪽으로 떨어진 숙소.
주인이 캐도릭신자인지
곳곳에 성화가 걸려 있었다.
그러면, 디저트나 잘 주시던가.
마침 조그만 마을에 축제가 있어
흰옷의 천사차림 소녀들을 태운
행사안내차량을 앞세우고 온것은 좋았지만,
차량의 통제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와야했다.
동네는 라이화이젠뱅크가 있었다.
협동조합은행의 선구자.
행사장은 바로 호텔 앞.
무대쪽은 줄을 쳐놓아
출입을 막고 있었다.
무대에는 분장을 한 몇명이
요란스럽게 춤을 추었는데,
조그만 마을의 행사라 싱겁기만 하고.
뜨거운 와인 한잔 사먹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베니스를
향해 390키로 길을 나섰다.
이탈리아로 들어서자
포도, 사과밭이 많이 보였다.
이탈리아가 포도주의 원조라고.
포도주 제일의 생산국은 이탈리아.
섬의 도시, 베네치아를 가려면,
먼저 유람선같은 큰 배를 타야 한다.
드디어 베네치아가 모습을 들어냈다.
이탈리아 면적은 한국의 3배,
인구 67백만의 캐도릭 국가.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후
이민족이 침입했고, 수세기 동안
정치적 분열 속으로.
도시국가로 표류하던 이탈리아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르네상스를 일으켜,
유럽예술의 전진기지가 되었으나,
15-18세기에는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1815년 나폴레옹이 패하자, 반도는
군소독립국가를 이루다가
이탈리아통합운동(Risorgimento)으로
1870. 반도통일을 이루었다.
1차대전때는 연합국으로 참전했으나,
20년대 파시즘정권을 낳았고,
1943년 연합군에 패했으며
1946년 공화국으로 탄생,
나토창립회원이 되었다.
베네치아는 1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졌고, 150개 운하,
400개의 다리가 있으며
아랍, 비잔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종 예술양식을 볼 수있는 도시이며
낭만적 분위기가 흐르는 도시.
인구는 26만명이 넘는다.
여름은 더워 방문을 피하는 것이 상책.
드디어 하선.
6세기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피난민들이
만기슭에 마을을 세운 것이 도시의 기원.
리알토섬을 중심으로 12개섬이 취락을
형성하다, 7세기말에는 해양무역 중심지가
되었고, 나아가 독립된 도시국가로 발전.
이곳은 은행이 최초로 세워지고
장부거래가 처음 이루어진 곳
15세기에는 밀라노, 피렌체와 같이
이탈리아를 장악했으나,
1797 나폴레옹침략으로 자치권을 잃고
오스트리아에 속하였다가,
1866년 이탈리아로 귀속되었다.
그러고 보면 훈족은 서구 전체를
혼란 속으로 집어 넣은 민족이다.
한나라에 쫓긴 훈족(흉노족)은
동서로 갈라져, 그 일부는 동쪽
한반도로 와서 신라의 선조가 되었고?
역사적으로 고증도 있는 모양.
골목을 둘러보니 벽들은 낡았고
벽을 큰 호치케스로 박아 놓은 모양.
건물 붕괴 등 도시를 보전하기 위해
차량의 도심 진입을 금지하고 있고,
유네스코는 도시보전운동을 펴고있다.
옛날 사용하던 우물도 있고,
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가면을 쓰고하는 큰 축제가 있는 모양.
앞쪽의 흰 다리는 두칼레궁전과
교도소를 연결했던 탄식의 다리.
중죄인들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유일하게 탈출했던 사람은 카사노바.
나와서 그가 한 말, "나는 여인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
물론 그는 베네치아여인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다.
북동에서 남서로 초승달 모양 석호 중심부
에 위치한 산마르코 광장.
베네치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건물이 ㄷ자모양으로 배치되어있고,
나폴레옹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했다.
99미터 캠퍼닐리 종루가 있고,
종루 위에는 전망대가 있다.
광장의 ㄷ자 앞에 있는 성마르코성당.
비잔틴건축의 대표.
이집트에서 가져온 성마르코
유골의 납골당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곤도라를 탔다.
뱃사공은 마피아 졸개같이 험상궂고.
탈때와 내릴때 얼마나 배가 기우는지-
넓은 바다입구에서 시작하여
좁은 운하를 한바퀴 돌은 후
성당과 종루가 있는 광장으로 다시 나왔다.
친구부인이 비들기와 노는 애들을
흉내를 내니, 한친구가 친구부인 손에
모이를 쥐어주고, 곧 비들기가
떼를 지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그 친구 돈을 요구하니
거절할 길이 없었지.
광장에 있는 카페 훌로리안.
1720년에 개업하였는데, 괴테 니체
나폴레옹 바이런 릴케 모네 마네 등이
이곳을 들렸었다.
광장 종탑 앞 아이스크림집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먹고
화장실을 공짜로 이용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표정을 보시라.
석양에 물들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성당.
1630년 흑사병으로 베네치아 인구의
1/3이 몰살했다. 이병에서 구원을
받는다면 성모마리아에게 새성당을
받친다하여, 1682년 만과 대운하 교차점에
바로크양식의 이 성당을 지었다.
우리는 수상택시, 바포레토를 타고
제일 큰 운하, 그란데운하를 통해
도시를 통과했다.
대저택, 카사노바의 집 등 등옛날주택,
터키상인회관, 수녀원 등
큰 건물들이 즐비했고
어둠이 깔리자 하나 둘 불들이 켜졌다.
베네치아는 오페라의 선구자.
이곳에서 최초의 오페라공연이 있었고,
17세기 16개의 오페라하우스가 있었다.
모짜르트가 이곳을 방문했었고.
지붕 위엔 정말 사람들이 서있는듯.
여행 시작했을 때, 가늘었던
초생달은 배가 상당히 불렀다.
리알토다리도 보였고.
이다리는 베네치아 최초의 다리로,
이민족을 피해 섬으로 도망할 때
십자가를 문 비들기가 머물렀던 곳.
이다리 위에서 키스하면 사랑이
영원하다는 전설이 있다고.
석양이 짙어졌다.
나그네의 마음은 우수에 젖어들고.
써비스한다고, 배는 전속력을 내어
한바퀴 더 돌았다.
그리고 우리는 숙소 Antille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우리를 반겼고,
안개는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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