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 피렌체는 270키로.
이들도시 이름은 영어로,
베니스와 플로렌스.
우리와 친근감이 가는 경치가 나타났다.
인솔자 쌍둥이아빠(정경진씨)는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을
요번여행의 클라이막스로 보고,
버스에서 관련 다큐를 보여주었다.
유럽역사 문화에 박식할뿐 아니라
지식의 전달에도 적극적이었다.
학교강의도 맡고 있는 모양.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조그만 교회가 있는 전원풍경이 전개.
피렌체를 흐르는 아르노강 저편에
피렌체대성당(두오모)이 보였다.
강가는 휴식공간.
인구 38만의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로마의 북서쪽 230키로 떨어져 있고
옛 토스카나공작령의 수도.
1865-71년 사이에는 이탈리아수도.
14-16세기 유럽의 예술 상업 금융
학문의 중심지였다.
위 기간에 이곳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해
프랑스로, 스페인으로 퍼졌다.
프랑스 프랑수아1세는 강력한 문화
정책을 펴, 루브르 중세의 성을 부수고,
르네상스풍의 궁전을 지었다.
피렌체 출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고.
이어 아르노강의 반듯한 풍경,
그리고 베키오다리가 나타났다.
우피치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길,
허름한 바이지만 처마도 아름다웠다.
이곳 출신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박물관도 보였고.
폰테 베키오(베키오다리)는 1345년에
건설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베키오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
처음에는 이곳에 푸줏간이 있었으나
보석상 등 중심상가지역이 되었고,
메디치가문의 비밀통로도 있었다.
또 세기의 연인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곳이기도 하다.
이다리에는 자물쇠가 많이 달려있다.
연인들이 사랑의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는 강에 던져버렸고.
보수중인 94미터의 베키오궁전 탑.
베키오궁은 지금은 시청사이며
궁전 앞은 시뇨리아광장.
우피치미술관 삼면 기둥에는
피렌체출신 명사들의 조각이 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알리기에리 단테(1265-1321) 등 예술가 외
아메리카가 신대륙이라는 것을 증명한
아메리코 베스푸치(1451-1512),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16세기말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한 이
미술관이 완공되어 전시를 시작했다.
원래 이건물은 사법기관 관료들의
관청사 용도로 지어졌었고,
메디치가문 코시모의 사무실((Uffizi)
이기도 했기에 우피치미술관이다.
이탈리아작품뿐 아니라 프랑스, 화란,
플랑드르, 독일 등에서
수집한 작품들을 포함하여
1737. 메디치가문의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 루이사 메디치가 작품의
외부 유출을 금하는 조건으로
시에 기부함으로 미술관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2.5천점의 작품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술관입구 조각상 밑에는
6섯개 구슬 모양의 메디치가문의
문양이 있다.
메디치(Medici)가문은 1434-1737사이
300년간 정치권력을 누렸으며, 이시기에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만들었고, 오늘의 피렌체를 있게 한
명문가이다.
문양의 여섯개 알약이 암시하는대로
가문은 약사, 의사로 시작하었으며,
1412년 교황청과 전속은행계약을
체결, 유럽에 16개 도시에 후렌차이즈
지점을 둠으로 상업자본을 쌓았다.
3명의 교황도 배출했고.
고시모 메디치(1389-1464), 그리고
그의 손자 로렌초(1449-1492)는
문화예술울 적극 후원하고, 대학에
막대한 자금을 기부하는 등으로
르네상스의 바람을 일으켰다.
미켈란제로, 라파엘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등은 이가문의 식객이었다.
이가문 출신 교황 레오10세는
오늘의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시스티나성당 등을 있게한 장본인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부족자금을 면죄부를
발행하여 메꿈으로 종교개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먼저 <르네상스 이전의 작품>을 보면
조반니 치마부에(1240-1302)의 마에스타
두초 디 부오닌세냐(1255-1315)의 마에스타
서양미술의 아버지라는
지오토 디 본도네(1267-1337)의 마에스타.
황제나 최고지위의 인물을 존경을 담아
부를때의 마에스타는 마리아와 예수가
옥좌에 있는 그림을 말하기도 한다.
황금빛 바탕, 딱딱한 표정의 인물들,
중심이 되는 인물들을 크게 그린 것 등
중세풍이다.
그러나 세 화가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평면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공간을
원근법적으로 구성하고, 안물들을
근육과 뼈를 가진 존재로 그리기 시작.
특히 지오토는 사실적인 공간 묘사와
부피감이 느껴지는 인체묘사, 자연스런
인간감정을 구사해, 르네상스
회화의 시조로 불린다.
시모네 마르티니(1280-1344)와
리포 멤미(1291-1356)가 그린 수태고지.
시모네는 고딕양식의 대표화가로
현실감없는 정교한 세부,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이 특징.
르네상스로 접어들던 시기,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조아의 취향이다.
마리아의 자세는 갑작스런 천사의 출현,
혼전임신 소식을 듣고 당혹해하는 모습.
천사 가브리엘의 날개, 옷, 꽃 화병 등의
세밀함, 황금색 배경, 양감을 잃은
얼굴 등은 중세적 취향.
<르네상스시대의 작품>을 보면,
프라 필리포 리피(1406-1469)의
두 천사와 성모자.
리피는 수도사로 나이 쉰에 이그림의
모델인수녀를 납치해 아기까지 낳았다.
코시모 메디치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파문이나 추방으로 이어졌을 사건.
성모 마리아가 세속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졌고, 그림의 배경이 그림 속
그림으로 독특하다.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봄.
정중앙의 비너스(아프로디테), 왼쪽의
여신을 수행하는 삼미신 모두 여성의
몸을 다각도로 관찰하는 감상자들의
관음증을 충족하기에 알맞다.
오른쪽 시퍼런 남자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 봄을 알리는 서풍을 의미.
그에 잡힌 여인은 봄의 요정, 클로리스.
요정은 꽃무늬 여인,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한다.
플로라는 보티첼리가 흠모하던 여인,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는 중세 이후 최초로 등장한
실물 크기의 여성 누드.
그림 왼쪽의 남녀는 서풍과 미풍의 신.
오른쪽 여인은 자연의 변화를
관장하는 호라이.
폰토르모(1494-1556)의 코시모 데 메디치
코시모는 물려받은 은행업을 확장,
엄청난 부를 쌓았다.
교황청과 각국의 실세들간의 평화와
질서를 구축하려고 노력했으며
경쟁가문들의 모함으로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기도 했지만,
반귀족적이고, 서민층의 존경과 지지를
받은 그는 무사히 복권했다.
코시모의 막강한 부와 학문에 대한
열정이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요람으로 만들 수 있었다.
잠시 쉬는 동안 밖을 보니, 베키오다리.
5세기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시작한
중세는 인간성이 말살되고, 신 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암흑시대였다.
교회의 횡포, 교황청과 국왕들간의 갈등,
십자군전쟁(11-13세기), 14세기 중반의
흑사병 등 혼란을 거치며 종교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커지며
천년을 이어온 신의 자리를 인간으로
대체하고, 과학과 이성의 길로 나가는
움직임이 무역과 상업의 발전으로
생겨난 도시국가와 교황령과의 협력,
충돌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 할 수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 기독교이외의새로운
주제도입으로 나타난 것이 르네상스.
르네상스에 이어 16세기에는 종교개혁,
18세기에는 산업혁명이 뒤를 이었으며
근대적 국가형성에 앞서
봉건사회는 서서이 무너져갔다.
피렌체대성당의 돔이 보였다.
르네상스시대는 조반니 보카치오 등이
대중화시킨 휴머니즘이 확대된 시기.
단테의 신곡에서 보카치오의
인곡으로의 전환이라할까.
데카메론은 페스트난을 피해 피렌체 교외
별장에서 숙녀 7명, 신사 3명이 10일간
체류하며 한사람이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하고 끝나면 춤과 노래를 한다.
이야기는 다채로우나 통일성이 있고
사랑과 지혜가 주제. 중세교회와
봉건제도를 조소하고 성과 쾌락에 관계된
재미난 여흥거리 등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삼대천재의 작품>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수태고지.
제단화의 경우 세로로 그려지는데,
이 그림은 가로가 더 길다.
가운데 뒤 흐릿한 항구와 산이,
가까이 있는 것은 선명하게
멀리의 것은 모호하게 보여,
공기원근법을 구사.
마리아가 있는 공간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 가브리엘 천사는 신이 만든
곳에 위치. 건축물의 모양은
치밀한 원근법이 잘 구사되어 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의
세례요한과 성가족.
이그림 주문자가 청구서에 못미치는
돈을 지불하자, 미켈란제로는
불같이 성을 내고, 그림을 회수하겠다
하여, 결국 청구서대로 지불했다고.
그는 항상 회화보다 조각이 우위에
있음을 역설했다. 우피치미술관에서
볼 수있는 유일한 그의 그림.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의
황금방울새와 성모.
삼각구도, 공기원근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향.
얼굴의 부드러운 윤곽선은
모나리자를 떠올리게 한다.
황금방울새는 엉겅퀴를 주로 먹는데,
가시면류관의 예수를 상기시킨다.
금발의 단아한 표정, 아이를 돌보는
자애로운 여인상은 정말 좋고.
라파엘로 산치오의
레오 10세의 초상.
라파엘로는 레오 10세하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레오 10세는 로렌초 메디치의 아들.
면죄부를 팔아 부족한 자금을 메꿔
재위시절, 루터의 종교개혁을 불러왔다,
라파엘로는 세부묘사에 탁월.
등장인물은 과장되게 미화되지 않았지만
권위와 성격이 자연스럽게 묘사됨.
라파엘로 자화상.
르네상스의 삼 거두를 비교해 본다.
다빈치는 레오 10세의 인정을 못받아,
이곳 저곳에서 활동하다, 프랑스 왕의
품에서 타계했지만, 나머지 두사람은
메디치가의 적극적 후원을 받았다.
피렌체에서 활동한 미켈란젤로, 라파엘은
성격상 천양지판. 편협하고 외골수인
미켈란젤로에 비해 라파엘은 인간적.
둘 다 독신이었지만, 라파엘은 부도덕하다
할 정도로 염문이 많았고 덕분인지
모르지만 37세로 요절했다.
셋중 막내인 라파엘로는 두선배들처럼
혁신적 기법(다빈치:특유구도, 명암.
미켈란제로:해부학적 완벽, 치열한 인간정신
등)은 없었으나, 여러사람의 기법을 종합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우아한 작품을 그렸다.
<후기 르네상스>
티치아노 베첼리오(1490-1576)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여성의 도발적인 시선은 그 이후 옷을
벗은 마하,그랑드 오달리스크, 올랭피아에
이어졌고,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티치아노는 빛에 따른 색채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잡아냈고 시각과
촉각을 자극하는 기교를 부렸다.
라파엘로가 사망한 후 전기 르네상스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16세기 들어
암울한 사회 분위기에 편승, 질서 조화
균형의 전기 르네상스가 급변했다.
후기 르네상스 화가들은 선배들의 기교에
왜곡과 일탈을 더하여,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화풍을 펼쳤다.
<바로크작품>
카라바조(1571-1610)의
이삭의 희생
카라바조는 폭력, 살인 등으로 탈옥만
일곱번 했다는 가록이 있지만, 후원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능도 가졌다.
작품의 특징은 격정적인 내용을 담은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보는듯한 느낌.
우리는 미술관을 나와 피렌체대성당,
베키오궁전(시청사), 바티스테로 산조반니
세례당이 위치한 피렌체 정치의 중심,
시뇨리아광장으로 나왔다.
모조 미켈란젤로의 데비드상이 있었고,
피렌체의 영광을 만들은
코시모의 기마상이 서있었다.
헬라클레스와 불꽃의 신, 불카누스의 아들,
주민을 공포에 떨게한 카쿠스의 조각상도 있고.
이곳은 종교개혁에 앞장 섰던
사보나롤라의 화형장소.
넵툰의 분수.
포세이돈을 상징하는데, 피렌체가
해전에서 승리했음을 기념한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단테기념관.
기념관 앞의 바닥에 있는 단테상.
물을 뿌리면 상이 보인다는데,
잘 모르겠다.
유럽 네번째의 성당, 고딕식 건축물.
이름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꽃의 성모마리아라는 뜻.
뒤에 돔 일부가 보인다.
1296년에 시작한 공사가 1371년에 끝났다.
중간에 흑사병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현장으로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곳.
성당 지하에는 브루넬스키의 묘가 있고,
제단 왼쪽에는 미켈리오 그림,
신곡을 설명하는 단테가 있다.
가까이서 보니, 일부만 보이는
피렌체대성당(두오모)의 돔.
보이는 돔은 1437년, 르네상스건축의
선구자 브루넬스키가 완공.
철근, 코크리트 없이 벽돌로만 건축.
돔설계자이며 건축을 맡은
브루넬스키.
광장 앞 피렌체대성당의 부속건물,
바티스테로 산조반니 세례당.
대성당보다 먼저 11세기에 지어졌다.
우측에 성당 일부가 보인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추정.
단테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당의 제2문, 동문,
금박으로 된 브론즈의 천국의 문.
미켈란제로가 감탄하여 붙인 이름.
로렌즈 기베르트작품. 창세기 이야기를
10개의 패녈부조로 만들었다.
그중의 하나.
대성당 지오토의 종루.
지오토 디 본도네가 설계하여 1359년에 완성.
높이 82미터. 대성당과 잘 어울린다.
414계단을 오르면, 돔 꼭대기와 같이
피렌체 전경을 볼 수 있다.
피렌대성당을 뒤로 하고
우리는 로마 인근 피우지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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