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경주 남산, 포항 그리고 호미곶(2017.5.29)

난해 2017. 8. 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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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  아침 6시반,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경주를 향했다.

 

오래 벼르던 남산을 오르고,

포항에 오래전 둥지를 튼

차건동, 김윤호친구도 만나보려고.

 

 

대구를 지나자니 낙동강이 흐른다.

대구도시공사 사장을 했던

윤성식친구 대구자랑을 시작하고.

 

대구에는 낙동강(남한에서 제일 긴 강)과

금호강이 흐르고, 천미터 넘는 산이 둘.

팔공산(1,193미터), 비슬산(1,084미터)

 

 

우리가 타고간 무쏘 스포츠.

류흥구친구가 3일 여행 동안,

운전대를 놓지않았다.

 

여유만만하고 화도 내는 법이 없고

낙천적인 친구, 사람좋게 허허댔다.

 

그의 신경을 건드린 일이 있었는데.

한참 달리다보니, 백차가 쫓아와서

4만원짜리 딱지를 끊었다.

 

짐차가 1, 2차선을 달렸다나.

4차선 도로에선 화물차 차선을 지켜야.

 

 

KTX를 타고 경주역에서 건동, 윤호친구와

합류한 김지탄친구와 화랑교육원에서 만나,

 

그가 사온 우엉을 얹은 경주교리김밥,

우리가 싸온 음식으로 간식시간을 가졌고.

 

 

11시 넘어 경주 남산 답사를 시작,

동남산코스를 밟았다.

동남산 탑골, 미륵골, 부처골 일대는

주차장이 따로 없고.

 

남산은 금오봉(468미터)과 고위봉(494미터)

사이의 40여개 계곡과 산줄기로 이뤄졌다.

 

가파른 동남산과 완만한 서남산이 있고,

석기시대 유물로 부터 신라건국설화의 나정,

왕국의 종말을 맞았던 포석정이 

서남산 기슭에 위치.

 

불교가 국교가 된후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되었으며, 수많은 유적과

전설이 깃들여 있다. 2000년 12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첫 방문지 탑골에 있는 옥룡암 대웅전 뒤의

부처바위. 30여점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데,

불교세계의 모든 형상, 서방정토(西方淨土)와

속인의 수양을 함께 새겼다.

 

통일신라시대 신인사라는 절이 있던 곳.

신인사는 신인종의 명랑스님이 당나라의

군사를 몰아내기위해 사천왕사에서 기도중,

불력(佛力)을 빌기 위해 만다라적인

부처의 세계를 조각하여 건립한 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바위 북면에는 마애여래가 있고,

그 위에는 천개(天蓋), 두 천사의 비천(飛天)상.

 

마애(摩崕): 석벽에 불상이나 글자, 그림

따위를 새김.

 

여래(如來)는 부처 칭호 가운데 하나이자

석가모니가 자신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한 칭호

 

 

여래 좌우에 있는 9층목탑과 7층목탑.

9층 목탑은 황룡사 9층 석탑복원에

도움이 되고.

 

황룡사 9층탑은 몽고 침입으로 불탔다.

 

 

양쪽 탑 아래는 사자가 지키고.

 

 

부처바위 남면 오른쪽, 얇은 감실(龕室)

안에 있는 7세기경 불상 삼존불(三尊佛).

화목한 가정적 분위기이다.

 

왼쪽 여래입상(立像)은 가슴이 부풀고.

 

 

동면에는 선정에 든 수도승상,

 

 

본존(本尊)과 보살이 있다.

 

마당 남쪽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작고 아담한 금오산 옥룡암.

시인 이육사(1904-1944)가 이 암자에서

요양하며, 청포도 초고를 구상했다고.

 

 

우리는 옥룡암을 나와 대나무숲을 끼고

보리사로 향했다.

 

 

보리사는 비구니 수도절로, 마애불 앞에는

옛서라벌 중심지, 드넓은 배반평야가 위치.

 

불상이 앉아 있는 곳에서 보면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다고 하는 낭산

뿐만 아니라 진평왕릉, 보문들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미륵골 보리사의 석조여래좌상(坐像).

완숙된 통일신라 작품.

 

석굴암 본존불이 위엄이 있다면,

여래좌상은 인간적인 느낌.

하체가 왜소하지만.

 

 

석조여래좌상 뒷면에는 약사여래좌상이

얇게 돋을새김되어 있다.

 

 

바위틈의 귀여운 불상,

 

 

부처골 감실마애여래좌상.

두 손을 소매 속에 넣고, 다소곳한 상체에

비해,무릎이 낮고 오른 발이 크다.

고신라 작품. 남산불상 중 나이가 제일 많음.

 

 

감실마애여래좌상 앞에서 기념사진.

맨 좌측이 차건동친구,

그 앞이 김윤호친구.

 

건동친구는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강원산업에 입사, 퇴사후 개인회사를

차렸고, 지금은 후배에 넘겼다.

 

윤호친구는 고려대를 졸업,

바로 포철맨이 되었다.

 

 

12시 반 넘어 단감농원할매집에서

옛날식 칼국수.

어렸을 때 먹었던 통밀칼국수

맛 그대로였다.

 

칼국수집에 붙어있는 부앙무괴(俯仰無愧),

하늘을 우러러보나 세상을 굽어보나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

 

 

우리는 배동 삼릉으로 이동.

삼릉은 아달라왕(154-184), 신덕왕(912-927)

경명왕(917-924재위)의 능으로 송림에 싸임.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왕릉의 진위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길 표지판이 신라답다.

서남산 코스가 시작되었고.

 

 

삼릉골 제1사지 탑재와 불상.

삼릉골은 사시사철 시원한 물이 흘러

냉골이라고도 하며 가장 많은 불상이 있다.

 

 

삼릉골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삼릉에서 개울따라 500미터 위로 위치,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위풍당당한 자세로 보아 8세기 중엽

신라전성기의 불상. 어깨에서

 내려진 가사끈의 매듭이 특징.

 

소승불교에서는 예배대상이 석가모니불

하나였지만, 대승불교로 교리가 발전하자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 미륵불 등

다양한 명칭이 나타났다.

 

석가여래,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등에 따라

항마촉지인, 지권인, 선정인, 아미타9품인 등

부처의 손과 손가락을 쥐는 모양이 틀리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내려다보고 있다. 머리의 보관에 화불을

배치하여 관세음보살임을 표시.

 

방금 하늘에서 하강한 모습.

가장 밝은 표정을 짓는 순간은

석양 해잘 무렵.

 

보살은 보리살타의 준말.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 지혜를 가진자의 뜻.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므로 누구나

보살일 수 있다.

 

몇몇 보살들은 영원한 부처의 화현이자,

구세주로 존중되고 있다.

관세음보살, 미륵보살 등.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중 왼쪽의

현생의 석가모니 삼존불. 좌우보살은

무릎꿇고 연꽃을 받쳐들고 있다.

 

 

오른쪽은 내생의 아미타삼존불.

육존불은 힘있는 붓으로 한번에

그린듯한 느낌.

 

 

제6사지 석탑터에 있는

삼릉골 석조여래좌상.

 

선각육존불에서 오른쪽 능선길을 100미터

가면 순백화강암으로 된 여래상이 있다.

불상이 바위 속에서 솟아오르는 모습.

8세기 후반 불상.

 

신라인들은 자연과 조화되지 않을 경우,

불상이 눈비를 맞더라도 전각을 짓지 않았다.

 

 

삼릉골 선각(線刻)여래좌상.

선각육존불에서 바위위 등성이로 200미터

오르면 앉아 있는 여래상.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모두 표현.

남산의 마애불 중 가장 늦은 10세기불.

재주를 부리지 않는 소박감을 느꼈다.

 

 

 

내려다본 경주뜰.

 

 

여름 문턱의 상선암 스님.

계곡은 심한 가뭄으로 말랐고,

날씨는 30도 넘는 더운 날씨.

 

상선암 샘물을 마시니 살 것 같았다.

물병도 채우고.

 

상선암은 남산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이나

미완성인 느낌.

 

불상은 배동들판을 보고 있다.

 

 

대불좌상에서 내려가는 길목엔

기린초꽃이 활짝.

이곳에서만 이 꽃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금오산 정상까지는

20-30분이 걸린다.

 

 

내려다본 서라벌 벌판과 북남산.

 

아이를 얻으려면 산으로 들어가 빌고,

기가 당찬 사람들은 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고,

생명이 다하면 산으로 들어가

영면하는 터전을 마련한다.

 

남산은 영원한 곳.

(김대벽의 경주남산 서문에서)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에서 길을 돌려

능선을 타고 배동 삼불사로 내려왔다.

 

이곳에는 삼국시대 걸작,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서있는데

삼존이 모두 천진스런 아이들같다.

1988년 보호각을 세웠다고.

 

 

풍만한 얼굴,  두툼한 입술

그리고 천진스런 웃음.

 

본존불과 좌협시보살은 7세기 후반,

우협시보살은 7세기 후반에 조성된

고신라불상의 대표작.

 

본존상 뒷모습은 남근상,

두 보살상 뒷모습은 날씬한 허리,

펑퍼짐한 궁둥이의 영락없는 여인상.

 

칠불암의 삼존불상과 더불어

남산의 가장 우수한 작품이라고.

 

 

삼불사 옆에는 67년 원효종의 총본원이던

망월사가 있다.

 

 

'산사의 밤 눈이 내린다

 

스님의 아버지는 구두수선공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다녔던 길은 골목골목 어두웠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말 많은 세상에서 너희 남매만 지킬 수 있다면

내가 구두수선공이면 어떻고

한 겨울 바람지기면 어떠냐

 

당신의 49재를 끝내고 그말이 조곤조곤--

 

바람도 없이 눈이 내리고

三佛寺 댓돌 위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위로

동백꽃보다  붉은 그 꽃빛으로

내 아버지 다녀가신다.'

(삼불사의 밤, 곽정숙)

 

이날 걸은 거리는 2만보, 10키로정도.

 

 

 

저녁은 도지동에 있는 호박고을식당에서

단호박 겻들인 오리고기.

손님대접한다고 차건동친구가 쏘았다.

 

고맙고, 맛있고.

 

 

식당입구에 놓여진  돌 위에 그린 그림이 멋졌다.

종업원이 그렸다고.

 

 

멋진 하루가 져갔다, 친구들 덕분에.

 

 

차건동친구가 예약해준 보문단지

켄싱턴리조트에 돌아오니,

골프장은 불이 환하고,

 

 

김지탄친구 썬그라스와 모자가 없다고

유흥구친구와 찾으러 갔는데

모자만 덜렁 들고 왔다.

 

낮에도 지탄친구, 가방을 김밥먹은 곳에

놔두고 와선 한 바탕 소란을 피워었는데--

 

하루종일 고생한 흥구친구를 위해

간소한 소주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