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경주 남산, 포항 그리고 호미곶2

난해 2017. 8. 2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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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지탄친구 잃어버린

안경을 TV옆에서 찾았다고 환호.

 

어디에 두고 찾았던 것을 슬그머니

내놓았겠지.

오히려 우리들 중 한사람이

감추었다고 생때.

 

아침 일찍 보문호수를 한 바퀴.

 

 

잘 가꾸어진 공원의 꽃이 눈부시고.

 

 

공기도 신선하고,

뒷짐지고 걷는 맛도 있고.

 

 

운동 나선 사람들

 

 

소나무도 멋졌다.

 

 

화사한 잔디와 여인

 

 

산책로는 우리말고는 별로.

 

 

각자 무엇에 골몰해 있고.

 

 

어제 싸가지고 온 호박고을 오리고기에

호박, 왕뚜껑라면에 누릉지.

훌륭한 아침이었다.

 

 

8시반에 건동, 윤호친구 만나

남산 가는 길, 아줌마 아저씨말고

다 수거한다고.

 

우리도 수거 대상인가?

 

 

오리나무 잎과 열매가 싱그러웠다.

 

 

용장골에 놓여진 설잠교에서 한 컷.

설잠은 김시습의 법호.

 

용장사는 김시습(1435-1493)이 31-37세에

칩거한 곳. 그는 59세에 부여 만수산

무량사에서 병사했다.

 

이곳에서 최초의 한문단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다.

 

금오신화는 다섯편만 전해지고 있는데,

귀신, 염라왕, 용왕 등 비현실적 소재로

우리나라배경으로 우리의 감정, 풍속을

묘사했고, 주인공들이 모두 세상을 등진다.

 

시를 많이 삽입했고 인물심리와 분위기

묘사가 뛰어났다.

 

만복사저포기는 노총각 양생이 죽어

처녀의 혼백과 연애하는 이야기.

 

용장사로 인해 계곡이름도 용장골.

 

 

용장골에서 삼층탑을 바라보면

부처님나라를 우러러보는 것 같은 기분.

 

 

저 멀리 능선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은 삼륜대좌불이라고도

하며 신라하대의 대표 우수작.

 

여래 왼쪽 어깨에 띠 매듭이 있고, 기단부는

자연석이며 간석 대좌 모두 둥근 모양.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 10미터 아래에 있다.

밑부분 연꽃무늬가 환상적이며

유려하고 세련된 선의 흐름이 깔끔하다.

 

 

이탑은 용장사지 동편 능선에 자리하여

이 계곡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신라 하대의 대표 우수작.

 

멀리서 보면 높이 350미터 되는 산 전체를

하층기단으로 삼은 듯해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8세기 후반에 조성되었다.

 

1924년 쓰러져 있던 탑을 복원할 때

2층 탑신 상부에서 사리공이 확인됨.

 

 

부드러운 산들의 중첩.

 

 

남산 안내도

 

 

삼화령 가는 길 편하고, 넓고.

 

 

삼화령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

우리는 백운재에서 고위봉으로 오를 것이다.

 

 

칠불암까지는 0.55키로,

고위봉까지는 1.2키로 남았다.

 

 

드디어 칠불암에 도착했다.

 

 

삼존불과

 

 

사방불을 합쳐 칠불이 있다.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조성됨.

윙크하는 부처님의 모습,

마음에 든다.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석굴암 불상보다 이른

통일신라 불교미술 발전기의

신라불상 중 최고 걸작.

남산에 있는 문화재 중 유일한 국보.

 

이곳에서 발견되는 화려한 기와무늬며

귀인들이 기도드리고 중병을 고쳤다는

비석조각들로 보아 나라에서

경영하던 큰 절이 있었음.

 

 

칠불사 석탑

 

칠불사에서 커피 한잔하고 보시했더니

이쁜 비구니스님 물병 대자 한병을 주었다.

더운 날의 생명수.

 

 

칠불암 삼존불의 배경이 되는 바위의 높은 벼랑 위에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있다.

 

 

보리수 잎 모양의 감실을 파고,

구름 위에 의자를 놓고 편안히 앉아 있는 보살.

보살상의 눈 높이로 보면 이곳이 남산의 도솔천.

 

 

백운재에서 고위봉 오를 때

두 젊은 처자에게 물었다, 고위봉에 오르냐고.

젊으니까 오른다고,

 

우리는 늙으니까 올랐다.

 

사실은 그녀들의 기를 받아

모두 오를 수 있었든 거다.

 

 

고위봉에서 바라본 금오봉.

우리는 용장사지 3층석탑을 거쳐

이곳에 올랐다.

 

 

2시 다 되어 산자락에 있는

남산초가집식당에서  산채비빔밥+동동주

 

밭에서 직접 기른 산미나리 향도 좋았고.

 

 

그리고 열반골로 하산.

 

열반골에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각간의 외동딸이 사랑을 독차지 하고,

많은 사내들이 그녀에게 사랑을 호소했다.

 

어느날 그녀는 부처님의 세계, 열반에 살 것을

 결심하고 속세를 떠나 열반골로 들어섰다.

처녀의 살내음을 맡은 뭇짐승이 으르렁대고,

 

그녀는 맹수계곡을 벗어나 할머니의 안내로

천룡사에 이르러 열반의 세계, 보살이 되었다.

 

처녀를 찾아 나온 짐승들은 열반계곡의

사자바위, 이무기바위. 큰곰바위 등이 되었고.

 

 

관음사를 거치고

 

 

담다에서 두사람 당 빙수 한 그릇.

 이날 걸은 거리는 5시간 반을 걸어

3만보. 15키로 가까이 되었고,

.

 

남산 답사를 모두 마쳤다.

여행전에 문화해설사를 쓰려고 했으나

하루에 18-20만원을 요구하여

예약을 취소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백번 잘한일.

차건동, 김윤호친구 덕분에 해설사의

안내를 받는 것보다 더 세세하게 곳곳을

답사할 수 있었다.

 

고맙다, 두 친구야.

 

 

이어서 옛날 수학여행을 회상하며

안압지를 찾았는데

안압지 이름이 동궁월지로

바뀌어 있었다.

 

이 호수는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 674년에

축조했고, 동궁은 679년에 지어졌다.

 

 

전시되어 있는 향로뚜껑,

 

 

기와, 청동거울 등도 구경하고.

 

 

월지(月池)의 정취도 만끽하고.

 

 

대릉원(大陵園)을 찾으니,

 

이곳에는  천마총, 미추왕(13대 왕)릉, 황남대총 등

23기의 고분이 있었다.

 

대릉원이라 이름이 붙은 것은 삼국사기에

미추왕이 재위 23년만에 돌아가니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에 연유.

 

가장 큰 고분은 황남대총.

이곳에선 금관 등 30천점의 유물이 나왔다.

황남빵 이름도 황남동 이름도 관련이 있구먼.

 

 

5월의 송림은 매력적이었고

 

 

특히 신라왕릉의 둥근 선은

젊은 여인들의 굴곡된 선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천마총의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말이 달릴 때

튀는 흙을 막는 마구)도 보았고.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금관도 보고,

 

 

가냘픈 목백일홍의 자태도 보았다.

곧 꽃이 피겠지.

 

 

첨성대는 지난번 지진으로 몸이 흐트러져,

보수를 위한 측량을 하고 있었다.

 

 

여행 두번째 날은 저물고,

 

 

부드로운 곡선들의 유희는 계속되었다.

 

대릉원 근처에서 포항친구들이

쌈밥을 쏘았다.

어쩔꼬 자꾸 신세를 져서.

 

 

숙소에 들어왔다가 다시 동궁월지로 가서

야경을 즐겼다.

 

이재춘친구 어찌나 사진을 열심히 찍는지.

 

 돌아와선 소주잔치 벌리고

어제와는 달리 모두 꿀잠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