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하도 더워
더위로 여름을 그려야 할 것 같다.
앞 못보는 사람이 개울을 건너고 있다.
지팡이로 판자 다리를 더듬으며
빠질 듯 빠질 듯 위태롭게 개울을 건너고 있다.
그러다 문득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위태롭게 개울을 건너고 있는 것이
우리들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안타깝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그 앞을
(신경림의 '앞이 안보여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우리나라의 현실도 그렇고,
더위도 그렇고.
8/19(일) 오후 경의선을 타고
문산의 친구를 찾아 나섰다.
파주의 들, 그나마 눈을 시원하게 했다.
생선구이, 칼치조림으로
이른 저녁 해치우고
바람의 언덕으로 갔더니, 바람 한 점 없었고.
더위를 진정시키려고
친구부부와 쥬스 한잔.
젊은이들은 그 더위에 불구,
바람없는 바람의 언덕을 거닐고 있었고.
목적은 6:30분에 시작하는 클래식콘서트.
이날 일몰시간은 7:30분.
더위를 못견딜 것 같아
파주 헤이리에 있는
헤이리시네마로 이동.
널직한 극장이 마음에 들었다.
헤이리 이름은 이지방의 농요(農謠)에서
따왔다고.
영화제목은 'Between Land & Sea'
아일랜드 라힌치 조그만 동네의
셔핑, 농사 등의 이야기.
스토리는 별로였지만
파도타기의 시원함을 맛보았다.
영화보고 귀가하니 밤11시.
다음날 8/20(월) 6:10분, 아산친구 만나려고
용산역으로 출발.
무궁화호는 후졌다, 옛날 기차처럼.
휴가기간이라 객차가 모자라는지.
80년대 애들을 위해 당시 최고급열차였던
새마을호를 예약했는데, 타고보니
휴가철이라 임시열차로, 후진 통일호 객차.
애들이 얼마나 실망스러워 하던지.
수원뜰을 지나자면, 옛날로 진입한다.
서호의 민물고기 튀김, 들리곤 했던 여학생
이 소프라노로 불렀던 가곡,
술에 취해 연습림을 방황했던 일 등의 기억.
온양온천역에 도착하니
친구의 든든한 모습.
배가 조금 나왔다.
안면도 가는 길, 수덕사 구경을 할까 했지만,
시간상 일주문을 보는 것으로 만족.
태안 남면 드르니항과 안면도를 연결하는
대하랑꽃게랑 다리를 보며
안면읍 입성.
안면도는 1638년(인조때) 세곡운반을 위해
운하가 파졌고 섬이 되었다.
해안선 길이 120키로. 우리나라 6번째 큰 섬.
안면(安眠)은 조수가 편안히 누워 쉴
수 있다는 뜻.
고구마, 황홀한 일몰, 꽁지머리 횟집주인,
겨울이면 눈천지, 꽃지, 모감주 군락, 영목항,
바가지 상혼, 울창한 송림 등이 생각나는 곳.
친구가 덕분에 좋은 여름을 보낸다는
삼봉해수욕장 도착.
안면읍 북쪽 창기리에 위치한 명품해수욕장.
모래사장 위에 송림이 있고, 그 속에
우리는 그늘막을 쳤다.
솔바람, 향기 솔솔 들어왔고.
더운 줄 몰랐다.
벌써 사람이 뜸해진 해수욕장.
우측에 괴암 삼봉의 끝 부분이 있고.
그늘막 치기 달인, 친구가 설치한 그늘막.
전체 멋진 모양새를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
옆에 애들과 놀러온 가족이 간식 중,
우리가 침 흘리니 참외를 통채로 가져왔다.
버너에 불 붙이고,
냄비 올리고,
라면 넣고
파 숭숭, 계란 탁탁
면발 후루룩,
시원한 맥주 꿀꺽꿀꺽.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바다로 나아갔다.
해안쪽은 란티엔바이윈(藍天白雲).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 흐르고.
정면에서 본 삼봉.
우리는 삼봉을 넘어 그늘막으로.
펼쳐진 모래사장, 바다,
그리고 해안가 산줄기.
바닷가 해당화 대신 핀 순비기나무꽃.
(해당화는 5-7월 개화)
끝여름 을씨년스런 해변을 자주색
낭만으로 물들인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나와 가쁘게 쉬는
숨소리를 숨비소리, 숨비기소리라 한다고.
열매는 해녀들의 만성두통 치료제.
이 식물은
해변가 모래 유실을 방지하기도 하고.
오후 3시, 아쉬움 속에 삼봉해수욕장을 떠나
꽃지해수욕장(안면읍 승언리)을 지났다.
이곳은 제법 피서인파가 넘실거렸고.
꽃지는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는 곳.
할배 할매바위가 겹쳐 한 몸이 되었다.
신라 흥덕왕때 이곳은 장보고기지라고.
기지사령관 승언은 출정나가 돌아오지 않고,
아내 미도는 기다리다
할매바위가 되었다.
고깃배도 보였고
해수욕장 분위기가 물씬.
우리에겐 삼봉해수욕장이 더 좋지만.
안면도 자연휴양림 스카이워크
283미터를 왕복했고.
381ha 소나무 천연림에는
적송이 가득.
이곳에는 이지방 출신, 시인이며 문학평론가,
채광석(1948-1987)의 시비가 있다.
기름진 고독의 밭에 불씨를 묻고
자유의 여신을 가다리는
그의 처절한 기다림.
우리는 서산으로 달려
서산동부전통시장으로.
어부 아내에게 2만원에
병어 6마리 사가지고,
쓰리고 유진맛집에서
병어조림+참이슬.
우리 단골 '맛있게 먹는 날'은
예약손님으로 가득했고.
이곳 음식점들의 가격,
옛날 같지 않다.
아산에 들어서니 저녁노을 지고.
7시반이 되었다는 얘기.
신정호 자연생태공원 야간산보.
연꽃들은 벌써 잠이 들었고.
지난 방문때 친구는 잠들은 연꽃을 보고
이미 끝물이라고 했던가.
연꽃을 태몽으로 태어난 여인이 있다는데,
얼마나 아름다울꼬.
개중에는 잠못이루어 하는
꽃들도 있었다.
멋진 하루 피서하고
20:47분차로 귀경.
녹녹치 않은 세상,
친구들마저 없다면?
친구들! 덕분에 좋은 이틀 보냈네.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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