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용문사 산행

난해 2020. 5. 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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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은 누구의 것입니까


바람이 고요히 흐르고

흙내음 진하게 풍겨오는 지금 이곳은


햇살이 따스하게 자리잡고

푸른 하늘 가없이 펼쳐지는 지금 이곳은


오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다정하게 다가오고 어린 꽃들이

화사하게 달려드는 지금 이곳은


이 계절은 그대 것입니다





4/29(수) 9:45  상봉역에 다섯 명 모여

용문 가는 길, 양수리 풍경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한마당식당 전화로 부탁해서, 용문역에서

우리를 픽업, 상원사주차장에 내려놓았죠.

(양평 용문면 연수리)


이곳에서 절은 1km 못미치지만

호젓한 길을 우리만이 걸었고요.





이날의 일정은 현위치에서 상원사를

들렸다, 산 하나 넘어 용문사 구경하고

관광단지로 내려와 한마당식당에서 뒷풀이.


지난번 용문산 은행나무길 걸었을 때

맛있게 먹었고, 그집 식구들과도

잘 사귀어 놓은 한마당식당.


출발지점에서 바로 용문사로 가면

거리가 얼추 2km.


상원사에서 바로 오르면 장군봉(1,065m).

정상은 오른쪽으로 우회하죠.





상원사계곡은 용문사계곡보다 작지만

꽤 깊은 계곡이라 물소리 우렁찼죠.

산새소리 요란했고요.





이곳저곳 고추나무꽃이 한창 때. 4월말에서

6월 중순까지 꽃이 피는 낙엽활엽관목.

 내한성이 강하지만 습기를 좋아하죠.





현호색과의 노란괴불주머니꽃도 한창.

꽃모양이 어린이 노리개 주머니 비슷.

현호색꽃은 홍자색이죠.





길은 생각보다 깁니다.

나무 그림자로 운치가 있고요.





상원사 입구는 꽃대궐.

벚꽃이 아직도 한창.





절 뒤엔 용문산 정상, 가섭봉(1,157m).

경기도내에선 화학산(1,468m), 명지산

(1,267m) 다음으로 높죠.


이곳에서 용문사까지 2.1km,

용문산 정상까지는 3.6km .





절 화단에는 매발톱꽃. 위에서 보니

꽃모양이 제대로 안나옵니다.


마리아재비과에 속하고, 꽃색은 흰색,

적색, 보라색 세 가지고요. 꽃말 '버림받은

 애인'과 같이 머리를 푹 숙이고 있네요.





자연과 어울어진 삼성각 건물이 먼저 보입니다.

상원사를  찾은 것은 난생처음.

무척 마음에 드는 절이고요.


'각(閣)'자를 재미있게 썼습니다.





대웅전의 두번째 주련은

분별시비도방하(分別是非都放下).

'분별이나 시비 모두 내려놓으시오'


고려때 창건, 보우(고려말 국사, 조선초

봉은사 주지)와 무학대사가 머물고, 세조가

들려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절.


효령대군(태종 둘째 왕자) 원찰이었고

6.25 용문산 전투때 전소.





종무소, 요사채로 쓰이는 제월당(霽月堂).

제자는 비개일 제, 비씻기울 제.


마음의 모든 찌꺼기들을 비가 개이듯,

비에 씻겨내듯 마음을 비우고

지혜를 가득 담는 집.


멋진 글씨를 쓴 사람과 글귀가 써있는데

그 내용을 알 수가 없군요.





초파일이 오면

자비로운 마음이 꽃피는 세상이 되려나요.





금낭화가 큰 무리를 지어 피었고.


양귀비목 현호색과에 속하는 며느리주머니.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우리는 꽃을 주머니모양으로 보지만

서양사람들은 심장(bleeding heart)으로 보네요.





절에서 내려다본 산하.

수락산 수암사 담장에서 내려다보는 기분.





설왕설래하는 동종. 효령대군이 주조 봉헌했다는

종. 1907년 일본군의 독립군 토벌작전으로

절이 전소되어 종과 종각만 남았었고,


1908년 남산의 일본절로 옮겨졌다가,

2010년에 상원사로 반환되었다는군요.


1939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1945년 조계사에

보관되었는데, 일본인들이 바꿔치기 했다 하여

일본종으로 추론되기도 하고,

(현재는 국보 해제 상태)


중국종에서 신라종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종이라기도 하고.


KIST조사 결과, 신라시대 제작되었다는

가능성도 있다 하여, 가짜 오명을 벗기고

재심을 청구한다 하기도 하고요.





종각에 있는 말벌집.

말벌은 종소리를 좋아하는가 보죠.





정이가는 청운당.





이리저리로 보아도 마음에

드는 절입니다.





군대시절 군승실에 근무했다는 태욱친구,

염불도 제법합니다.


마음 훌훌 털어버리고

터벅터벅 가는군요.


오른쪽 길섶엔 꽃잔디 심겨 있고요.





절에서 직접 용문사로 가는 길,

처음은 순조로웠죠.





이곳에도 철쭉철이 돌아왔구요.





하향길을 걷다보니,

급경사 하향길이 나타나고,





미끄러지다시피 내려오니

우리가 상원사로 올랐던 길.


이길을 더 내려가 상원사 오르기 전에 보았던

용문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려.


한마당식당사장이 우리를 내려놓으면서

일행이 떨어지지 말고 고개를 넘으라는

말뜻을 깨달았죠.


상원사에서 용문사 가는 길,

안내표시가 잘 안되어 있어, 우리가

겪었던 일이 자주 있나봅니다.


 일행이 같이 헤맸으니 그나마 다행.

일부는 제길로 가고

일부는 헤매고 했으면 이산가족이 될 뻔.





길 입구에서 잠시 쉬어 간식도 하고 가는 길,

예쁜 십자화과의 미나리냉이꽃이

피어 있고요.


4-6월 냇가 근처에 피는 꽃이죠.





개울도 위태롭게 건너고,





낙엽 속에 구슬봉이꽃이 피어 있네요.


2-10cm 작은 키의 용담과 두해살이 풀.

습하고 양지바른 곳에 자랍니다.





용문사에서 올랐다는 두 처자를 만나

길을 물었더니, 곧 상원사에서 오는 길과

만난다더니, 곧 그길과 만났죠.


용문사 가는 길의 절반이 되는 지점.





가파른 언덕을 힘들게 넘으니

정상 오르는 길, 용문사길, 상원사길이

만나는 삼거리.





아이고, 힘들어!!





'이리로 갈까?' 했더니

나를 따르면 항상 헤맨다 하는군요.





운동화짝 끌고와서 급경사길 내려가며

개고생하는 도원친구.

영우친구 안온 것이 천만다행이고요.


용문산은 급경사가 많아 오르기 힘든산. 몇년전

한여름 더운날에 정상(가섭봉)에 오르자마자

쥐가 나서 119도움을 받았던 일이 있었죠.


세친구가 갔었는데, 구급차가 적어서

두 명은 걸어갈 수 밖에 없다하니

두 친구 얼굴이 하얗게 되었었죠.


사정사정해서 같이 타고 내려왔지만

내가 쥐가 안났다면 어떠하였겠어요.





500m 남은 지점에서도

길은 왜 그리 험하고 먼지.

근래 둘렛길만 걸은 것도 요인이 되겠죠.


상원사에서 정상 오르는 것이 빠른 길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용문사-

마당바위-가섭봉이 최선의 길.





초파일 준비로 야단법석 중인 용문사.


진덕여왕때(649) 원효가 세웠다기도 하고

신덕왕때(913) 대경대사가 그랬다기도 하고,

경순왕이 직접 창건했다 하기도 하고.


수양대군의 원찰로 세조때 중수했죠.





대웅전 앞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중국에서 온 불상을 보니 금새 역겨워졌고요.

요즈음 새로 세워진 불상은 거의 중국제.


풍력발전이니 뭐니 우리는 중국의 밥.

우리 국민들 큰 일이죠.

손쉽고 싼 비지떡만 찾고.


절에 돈이 많으니 쓸데 없이

돈만 들이고, 절은 흉해지고.





천 백살의 은행나무, 아직도

자세가 꼿꼿하고. 키 42m, 둘레 14m.

마이태자가 금강산 들어가다 심었다 하기도

하고, 의상대사 지팡이였다기도 하고.





산 정상이 희미하게 보였구요.

아직도 자목련이 지지 않았군요.





특이하다 하면, 미소전.

복전함의 '전'자가 돈'전'자가 아니고

밭'전'자이네요.


부처님의 자비의 미소,

수제자 마하가섭의 이심전심의 미소.


모든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면

좋겠지요.





오래된 절은 고풍스러워야 되겠지요.

돈 냄새도 아니나고.





머리깎은 느티나무

보기가 좋습니다.





내려갈 때는 몸이 가벼워지지요.

마음의 짐을 덜었으니까요.



'인생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다

잘못 찍었다고 싶으면

인화하지 않고 버리면 되는

사진하고는 달라


그럴 수 없어

사진은 정지된 하나의 순간이고

인생은 끝없이 흘러가는

순간순간들의 집합체인 것을

멈춰 놓고 들여다 볼 수 있는게 아닌 것을'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





숲길로 들어가는 구름다리.





바람부는 귀룽나무(구름나무) 아래 서면

향긋한 내음이 마음을 적시고요.





길가에 으름덩굴꽃이 피어 있네요.


연산군은 폭군이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자작시를 남긴 임금이기도 하죠.


신하들과 으름열매를 나누어 먹으며

'으름을 맛보고 시를 지어 오시오'했다는데,


무오사화 후 2년이 된 시점이라

신하들 마음이 어떠하였겠어요.

(박상진교수)


으름열매는 토종바나나랄까. 맛이

바나나에 비할 바가 아니죠. 고향 할미산

아래 덤불에서 따먹은 기억이 있는데-





열매는 발기한 남근 같지만 벌어진 다음은

여성의 치부와 같아, 옛사람들은

임하부인(林下婦人)이라 했다죠.





한마음식당에서 두부전골에 해물전,

도토리묵 그리고 주님.


도원친구 연신 맛있다 하며 평소 안먹는

낮술도 마셨죠.


이집 몸 불편한 어르신, 장기 두시고,

마나님 테레비 보시고.





귀로의 전철 안에서는 항상

하루를 잘 보내게 해주셨다고,

긴 기도를 하며 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