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예담마을, 황매산 철쭉 기행(記行)

난해 2020. 5. 1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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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일) 오랜만에 2박 3일의 장거리 여행을

떠났습니다. 긴 휴식 끝의 여행다운 여행.


영등포역에서 온양온천역까지는 무궁화열차로,

11:46 온양온천역에서 네 친구 만나,

아산친구의 애마를 타고 산청으로.





곧 모내기가 시작되겠죠.  우리의 마음밭은

모를 심을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함양휴게소에서 돈가스 식사.

서점에는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이란

책이 눈에 띄네요.


꾸물꾸물했던 하늘도 우리를 돕느지

파란 얼굴을 내밀고요.





산청 휴게소 건너편에 있고,

산청 단성면 청계리 소재 웅석봉(1,099M)에서

멀지않은 대명사 계단을 올랐습니다.


비구니절이고 꽃잔디 등 꽃을 사랑하는 절은

대한호국불교소림선종에 속해 있다네요.

단성면 방목리 소재.





4월말에 왔으면 한창이었을 꽃잔디.

초록과 어울리죠?


대명사는 꽃잔디의 대명사로 알려졌고요.

지면으로 뻗어가는 지면패랭이꽃.


상인(喪人)들이 먼거리 갈때나, 보부상들이

떠돌아 다닐 때 쓰던 갓, 패랭이.

여행자들에겐 친근감이 갑니다.





한문으로 쓴 대웅전,

한글로 쓴 비로전.

그리고 함박웃음 짓는 작약 한 송이.





절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남강의 상류,

경호강(鏡湖江)이 흐릅니다.


함양 남덕유산에서 발원하고, 산청 생초면에서

진주 진양호까지 32km 흐르는 거울 호수같은 강.

넓고 유속이 빨라 래프팅에 적합하죠.





절 언덕에는 양다래나무도 있고,

석류나무, 곧 꽃을 피우겠죠.


이란이 원산인 석류는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성분, 에스트로겐이 많아

여성에게 좋다는군요.





햇빛도 꽃잔디색이 되었습니다.


경남 서부에 있는 산청의 인구는 3.6만 명.

준엄한 산령이 둘러싸고 있는 지방.


감의 고장 시천면의 중산리에서

천왕봉 오르는 최단거리 산행을 하죠.

합천과의 경계에는 황매산(1,108m)이 있고요.


경호강이 군의 중앙을 흐르고, 덕천강이 서부를

남류하면서 두 강 모두 남강과 합쳐집니다.

하천유역에 위치한 단성, 시천, 산청읍 등에는

비교적 평탄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고요.





경호강과 멋진 구름이 흐르고





보리밭이 봄바람에 넘실댑니다.


산청에선 신석기 말기의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고  5,6세기 가야계열 부족국가가 있었죠.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선생의 고향.


영조임금 때만 해도 산청현, 단성현으로

나누어져 있었구요.





우리가 이틀 유숙할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정구화씨댁에 도착한 것은 4시 40분.

정구화씨는 예담마을 문화해설사이기도 하고.






이마을은 경북 안동하회마을에 버금가죠.

공자의 고향, 산동 취푸(곡부)에 있는

니구산이 있고 사수(泗水, 남사천)가 흐릅니다.


남사천의 안쪽은 단성면 남사리,

남사천  건너 마을은 사월리 상사마을.

두 마을 합쳐 예담마을이 되죠.


옛스런 담이 있는 마을.

담장 너머 한옥의 아름다움이 숨어있고, 옛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이 살아있는 마을입니다.


이마을에는 성주이씨, 밀양박씨, 진향하씨,

연일정씨, 전주최씨, 현풍곽씨, 진양강씨 등

뼈대있고 재력있는 가문들이 살아왔죠.


이마을도 광복직후 좌우대립이 극심했고,

한국전쟁 때 파괴로 99칸 최씨가옥이

잿더미가 되었지만,

2003년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습니다.




마을에서 처음 찾은 곳은

하씨고가의 620년 된 감나무.


고려말 원정공 하즙의 손자 하연이 어머니에게

홍시를 드리기 위해 심은 나무.

산청곳감의 원종이며 가장 오래된 감나무.


하연(1376-1453)은 조선 전기에 영의정을 역임한

문신. 성리학 전파, 조선의 기반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고, 예의, 효도를 몸소 실천함.





원정공 하즙(1303-1380)이 심었다는 원정매.

원목은 2007년 고사했고(700년 된 나무),

그 옆에 후계목이 자라고 있죠.


고려말 강회백(1357-1402, 하즙의 외손)이

단속사터에 심은 정당매(650살), 산천재마당에

조식선생(1501-1572)이 심은 남명매(450살)

와 함께 산청 삼매(三梅)의 하나.





대원군 친필이라는 원정구려(元正舊廬).

원정공 하즙이 살던 집이라는 뜻.





하씨고가.





크고 즙이 많은 맛있는 물앵도.

앵도는 장미과이고 물앵도는 인동과라는데-





말타고 지나가면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사대부집 담장은 높히 쌓았다죠.

이마을의 돌담은 등록된 문화재.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남사예담촌 앞에서.


문화해설사 명찰을 달은 83세 정구화씨,

우리보다 더 젊어 보여요.

건강 비결은 마음 편히 사는 것이라고.





만석지기 최씨고가, ㅁ자집.

사랑채 좌우에 중문 두 곳이 보입니다.


왼쪽 중문 통과하면 안채가 한 눈에 보이고,

오른쪽 중문을 통과하면 ㄱ자 담으로

안채가 차단되어 있다네요.


남녀생활상의 공간분화가 뚜렷하죠.

최씨고가 안채는 1920년대 지어진 집.





거북이 모양의 대문 잠금장치가 독특합니다.

최씨집안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도 있겠죠.






단정한 흙담.

예담마을의 흙담길이는 5.7km.





사수(남사천) 넘어

니구산이 보이고.






사효재(思孝齋) 앞 520살된 향나무.

향나무는 사효재를 짓기 전에 있던 나무이고

제례를 올릴 때 향으로 쓰이죠.


사효재는 이제의 8대손 이윤헌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재실.


산적이 부친을 해하려 하자 이윤헌이

막아서다 팔이 잘렸고, 8년 뒤 사망.






이제(-1398)는 이성계의 셋째딸 경순공주와

혼인하여 혁명파에 가담, 정몽주 격살에 참여했고

 장인을 왕으로 추대. 1차 왕자의 난때 피살됨.


이제의 아버지는 이조년(1269-1343).

시문에 뛰어나고 고려말 혼란한 시기에

임금에게 직언도 서슴치 않은 인물.





형제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 배를 탔는데

황금이 형제의 의를 깰까봐 황금을

강물에 던졌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조년.


그의 다정가는 많이 듣던 시조.


이화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데

일지(一枝)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양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씨고가 입구의 부부회화나무(310살).

이 밑을 부부가 지나가면

금슬이 좋아진다 하네요.





이씨고가의 회화나무(450살).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라네요.


콩과의 회화나무는 한여름 나비모양의 연노랑꽃을

피웁니다. 키는 20m. 느티,팽,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살고 크게 자라는 나무.


잎은 아카시아나무 잎 비슷하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심겨지지만 옛선비들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땅에 즐겨 심었던 선비나무,





이 나무에는 배꼽이 있어 삼신할머니 나무라고도 하고.

아기를 원하는 여인이 구멍에 손을 넣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하네요.





이씨고가.





큰길가에 있는 예담촌 참살이에서 오리탕.

담백하고 맛있었죠.


식당 tv 위에는 애들이 식당부부에게

선물한 그림이 붙어 있었고요.

예담촌답습니다.





저녁즈음 보는 작약은 더욱 아름답고요.


작약(함박꽃)은 작약과의 여러해살이풀.

백색, 적색의 꽃을 피우고,

관상용, 약초로 재배하죠.


홍자색 꽃을 피우는 목단(모란)은 나무이고,

잎 모양이 오리발(작약은 잎이 좁고 길다).






여름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름다리 건너 산 밑에 있는

남학정에서 본 예담마을.





마을입구의 멋진 이팝나무 한 그루.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20-30m 키의 나무.

이밥에 고깃국, 비단옷 그리고 고래등 기와집,

옛사람들의 소원이랄까요.


이밥은 이씨임금이 내리는 쌀밥. 이팝나무꽃은

 쌀밥을 수북히 담은 흰 사기밥그릇을 연상시키죠.

이꽃이 필 때는 보리고개.


입하 전후로 피는 나무, 입하나무에서

이름이 왔다 하기도 하고요.


습기를 좋아해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을

예상하는 등 기후를 예보하는 나무.

영어로는 snow flower.

(박상진교수)






어두컴컴해질 때의 담장빛갈

너무 이쁩니다.

동네엔 로빈갤러리도 있고요.





멋있는 남사천  바위,

사연이 있겠죠.





매직아워가 되었나 보네요.

하현달도 떴고.



'그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느뇨

그대 나에게로 오는구나


하지만 한 영혼이라

나를 생각하지 말라

풀잎처럼 수풀 속 새들처럼

내 지극히 겸손된 마음에서 사노니


어찌하여 나를 청하느뇨

아무 말 없이 잠들어

시원스런 안식 속에 사는 나를


가라앉은 계절의 저 향기

말 할 수 없는 열정 넘쳐 흘러라

귀와 눈과 코까지'

(안나 드 노아유의 '어느 오월 밤의 매력이여')





다음날 아침 5:30

아침 산보를 나섰습니다.





니구산과 남사천





산 위의 남학정,

날이 밝아오네요.





남사천 건너에 있는 상사마을에 있는 기산국악당.

기산 박헌봉(1907-1977)의 생가터에 기산재가

복원이 되어있고, 그를 기념하는 국악당이 있죠.


그는 1960년 최초의 사립교육기관, 국악예술

학교를 설립했고, 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했고요.





이날의 일출시각은 5:50.





선비촌도 밝아오고요.





남학정 올라갔다 오는 길,

나이 지긋한 할머니,

상추를 심고 있었습니다.


예담마을의 가구수는 140호를 넘지만

인구는 200명이 안됩니다.

문화재로 등록된 한옥은 30여채.


독거노인도 많고 한데

앞으로 전통마을이 잘 보전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군요.





숙소입구의 딸기 비닐하우스를 지나

숙소에 돌아오니,

햇살 받고 있는 집, 마음에 듭니다.





방에서 내다본 대문.

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지방이 없고

우리방을 지나 옆집으로 차가 갈 수 있고요.





처음 먹어보는 가죽나물 등으로 차려진

아침을 들고 이집 식당에서 나오려니

어버이날 꽃다발이 있군요.


하루 전 이곳에 왔을 때, 딸인지 며느리인지

정구화씨 주머니에 돈봉투를 찔러넣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가 주고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