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수) 가평 용추 구곡 트래킹.
10:30분 흥구친구의 애마로 가평시내를 거쳐
용추구곡의 첫번째, 용추폭포(와룡추, 臥龍湫) 도착.
더위를 피하려는 두번째 계곡트래킹.
성재 유중교(1832-1893)가 이곳에 몇년 살면서
용추계곡의 아홉 구비에 이름을 붙이며
옥계구가(玉溪九歌)를 지었다고.
이곳도 경반계곡와 같이
연인산(1,068m)도립공원 안에 있다.
아기를 못 낳는 여인이 이곳에서
빌면 아기를 낳았다고.
용추계곡을 처음 찾은 것은 삼십여년전.
당시 산행 짝이었던 이승부치과원장이
'산(山)'지를 보고 이곳을 찾았었다.
계곡을 건널 때마다 신을 벗고
내를 건너는 원시계곡.
찾는 사람도 아주 드물었고.
경희친구와 찾았을 때는
계곡엔 달래가 주렁주렁 달려
얼마나 맛있게 따먹었던지.
용추구곡의 아홉군데 설명판들은
생소하고 무언가 흡족하지가 않다.
물은 맑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고.
지금도 청정계곡.
밀양의 얼음골에 비할 수는 없지만
제법 시원.
중국의 천자가 단군의 부인, 용녀의 재주에 놀라
이곳을 탐내었던 마음을 버렸다는
탁영뢰(濯瓔瀨)도 지나고
이름과 설명이 과장되었다 할까.
입구의 대형주차장은 너무 멀고 소형 주차장은
몇개 있지만 만차이고. 차들은 차량차단장치가
있는 곳까지 갔다 되돌아 와야.
공원관리원들은 많은데
피서객들은 불편을 느끼고.
요즈음 공직사회의 축소판.
개인소유의 주차장은 1대에 15천원.
그 수입도 만만치 않겠다.
키가 1m 이상이고 7-8월 개화.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꽃.
매혹적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 마타하리.
그녀는 1차 대전 중 독일스파이 혐의로
프랑스에서 총살당함.
히어리, 개나리 등과 같이 순수한 우리말.
키가 커서 말다리와 닮았다고 해서
마타리란 이름이 나왔다고도 하고.
실타래를 풀어놓은듯 물살이 흐른다는
일사대(一絲臺)도 지나고.
요즈음 젊은이들,
아빠노릇하기 힘들다.
옛날에는 자연스러운 계곡이었는데-
어느 정도 오르니 흙길이 나오고.
6번째 물구비, 추월담(秋月潭)을 지나니
한더위에 화초를 심는 일꾼들, 휴식 중.
장모사랑에 사위가 지는 멜빵은
힘없는 이꽃의 줄기로 만들었다고.
계곡 상류에 우리는 들어섰다.
'전화 몇 번 하지 않았다고
내가 그대를 잊은 건 아니다
너의 이름을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다고
내 마음이 그대를
영영 떠난 것은 아닌 것처럼
그리운 그대여 부디,
세상의 수치로
우리들의 사랑을 논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그대와 내 마음의 간격
어느 비 오거나 눈 내리는 날에
홀로 뜨거운 찻잔을 마주 한 날에
그 누구도 아닌 네가 떠오른다면
이미 너는 내곁에 있는 것
우리의 사랑도 거기 있는 것'
(홍수희, 마음의 간격)
청풍협(靑楓峽)지나니
멋진 누리장나무숲.
키다리 미스장이 생각나는.
옥황상제를 모시던 거북이가 몰래 이곳에
뛰어들었으나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어
바위에 쉬니,
옥황상제가 법을 어긴 거북이를
바위로 만들었다는 귀유연.
우리들 마음에 제일 와닫는 곳.
물소리도 우렁차고.
잠자리, 사마귀 등에 기생하다 성장하면
숙주를 물가로 가게 유인하고.
숙주는 죽고 연가시는 숙주의 몸을 탈출,
물속에 알을 낳는다.
이때 길이가 15-90cm.
2012년 제작된 영화, '연가시'가 있었다.
실제 인간에게는 감염이 안되지만
영화에서는 인간에게 감염이 되어
계곡 등에 영양실조의 변시체가 뜨기 시작하고.
주인공의 아내, 아이들에게도 증상이 나타난다.
물가에서 홀로 또는 짝지어 살며
수서곤충, 버들치 등을 잡아먹는다.
눈에 잘 안띄는데
이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랄까.
물살이 노니면서 흐르는 시내.
두번째로 마음에 드는 곳.
송사리떼들이 우글우글,
우리는 비스켓을 던져주었다.
이곳부터 연인산에서 흐르는
작은 실계곡이 시작.
옛날에는 이곳에서 고개를 넘어
가평 현리에서 서울가는 버스를 탔었고.
이날 왕복 8.8km, 17천보를 걸었다.
지난번 경반계곡 트래킹시와 비슷한 거리.
용추버스종점에서 연인산 정상까지는 11.7km.
지루한 느낌이 드는 꽤 먼 산행거리.
가평 북면 백둔리코스(편도 4.8km)가 무난.
더위를 느끼지 않은 트래킹.
별로 땀을 흘리지 않았고.
올해 최고의 피서지, 경반계곡이라고 했지만
처음 이곳을 온 친구 둘은 이곳이 더 낳다고.
경반계곡은 포장안된 길과 수락폭포가 좋고
용추계곡은 계곡이 더 깊고 물이 많고.
땅 속에서 2-3년, 종류에 따라 길게는 17년을 지내다
지상에서 한 두 달.
우리의 생도 언젠가 끝나겠지.
억겁의 세월을 생각하면
매미의 생이나, 우리 인생이나-
동네 입구의 금자네 우거지갈비탕을 지나
가평읍의 이화리, 금대리, 산유리, 복장리
그리고 청평의 고성리를 지나,
2017년 개통된 가평대교를 지나
가평 설악의 신천리로.
그렇게 가평을 많이 왔어도
처음 지나본 길.
청평대교를 되돌아 설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21km, 시간으로는 25분 단축.
오랜만에 찾았다.
4-5시에는 휴식시간.
나무 밑에서 휴식.
동네에는 아로니아농장이 있고
열매가 달걀 닮은 가지도 있고
오랜만에 까마중도 보았다.
큰 볼 것은 없지만 고향의 냄새가-
까마중은 어렸을때 많이 따먹었지.
까맣게 익은 열매가 스님의 머리를 닮아
까마중.
설악 IC로 해서 광진대교 건너 귀가.
집에 오니 7시.
막국수집을 일군 할머니는 오래 전 돌아가셨고
자손들이 가업을 승계.
맛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3년전 여름, 친구들과 충남여행을 하던 중 들렸던
오천항 위 영보정의 시원한 바닷바람이 생각나
떠난 느림보여행.
영보정에 누워 시원한 바닷바람에
오수를 즐겨도 좋고,
얼마 안있으면 폐역이 된다는 청소역도 둘러보고
오천의 충청수영도 돌아보고.
보령시 청소면 소재시 진죽리에 있는
장항선에 있는 조그만 역.
청소면의 인구는 2천명 정도.
청소산 밑에 자리 잡고, 동부에 오소산(791m)이
있고 천수만 일대에선 천일염을 생산.
오소산은 홍성과 보령의 경계.
2019년 가을에 올랐었다.
청소역은 오천을 돌아본 후
자세히 보기로 하고 오천항으로.
기차를 같이 타고온 한 아줌마를 만났는데
역사옆에 세워둔 차를 타고 집으로.
이곳이 좋아 대전에서 이사를 하였다고.
보령시의 인구는 104천명. 농수산업, 광업의 도시.
차령산맥에서 가장 높은 오서산이 있고
중앙에는 성주산(680m).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탑비가 있는
성주사지는 들려볼만한 사적지.
대천천, 주교천의 넓은 평야가 있고.
대천시와 보령군이 합쳐진 시.
김좌진, 이지함의 묘가 있다.
오양손칼국수에서 만두세트+해물칼국수.
그리고 성을 올랐다.
아담한 성과 나무 그리고 뭉게구름,
어울리지 않는가.
'동백꽃 필 무렵'이 촬영되었다고.
보육원 출신 동백이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
보령 오천면 소성리 오천항에는
조선시대 3대 수군절도사(정3품)영의 하나,
충청수영이 있었다. (세조 12, 1466년 설치)
금강하구에서 평택까지의 연안경비와
조운선 보호관리가 임무.
1509년 성을 축조하였는데 길이 1,650m,
옹성 5, 성문 5개.
500여년간 서해안 방어의 중심지.
성지, 서문, 진휼청건물이 남아있고
장교청, 삼문은 자리를 옮겨 보존.
느릅나무과의 팽나무는 키가 20m.
산림청 보호수 중 10%가 팽나무(느티나무 다음
으로 많다). 바닷가에 많은 포구나무.
대나무총의 총알로 쓰였던 이나무의 열매,
팽. 식용도 하고 기름도 짰다고.
(박상진교수)
알뿌리로 번식하는 수선화과 꽃.
꽃줄기가 올라오는 7-8월이면
잎이 말라죽는다.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1833(순조33)년에 세워진 건물.
가난한 백성을 구제할 목적으로
곡식을 꾸어주고 거두어들인 곳.
천수만 일대의 주요 항구이며
보령 북부 생활권의 중심지.
백제때 중국, 일본과 교류가 활발했던 곳.
바다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피항시설이 필요 없는 천연의 항구.
가장 많은 어선이 등록되었다고.
고려 이래 외적을 막기위해
군선이 머무른 곳.
이곳 여객터미널에서 월도, 육도, 추도, 소도,
원산도, 안면도 영목항으로 가는 배가 있고.
낚시배, 키조개잡이배가 대부분.
키조개는 잠수부들이 잡는다고.
만으로 고급어종산란장이며 철새도래지.
1980년 대규모간척사업이 이루어져
15천 ha의 간척지가 생겼고
새조개가 번성한 곳.
햇볕이 뜨겁기보다 정답게 느껴지는 날.
'8월의 땡볕 아래에 서면
내가 가진 그늘이 너무 작았네
벗이여 이리 오세요
홀로 선채 이 세상 슬픔이 지워지나요
나뭇잎과 나뭇잎이 손잡고
한여름 감미로운 그늘을 만들어 가듯
우리도 손깍지를 끼워봅시다
벗이여 우리도 서로의 그늘 아래
쉬어 갑시다'
(홍수희, 그늘 만들기)
수영성 안에 있는 정자.
1504년 수사 이량이 지은 최고 절경의 정자.
옛날 바다 건너 황학루, 한산사가 어우러졌던.
이항복, 정약용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경치를 즐기며 시문을 남긴 곳.
수영이 폐지된 후, 빈터인 것을
후에 이 건물을 지음.
충청수영성과 거북선.
해유시화첩은 규남 하백원(1781-1844)이
보령문인 5명과 함께 만든 기행시화첩.
충청수영성 일대를 돌아보고 느낀 감상을
그림과 시문으로 엮은.
건너편 건물은 황학루, 한산사인듯.
뜨거운 여름날 피는 부처꽃과의 나무.
반질반질한 줄기를 갖는 간지럼나무,
일본에선 원숭이 미끄럼나무.
백일홍과 같이 한꽃이 백일을 가는 꽃이 아니고
수없는 작은 꽃들이 백일 동안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옛날 바닷가 마을에선 해룡의 심술을 막으려고
해마다 처녀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한 왕자님이 해룡을 퇴치하고 처녀에게
왜구를 퇴치한 후 100일 후에 오겠다고 약속.
처녀는 백일을 못기다려 죽고
왕자님은 처녀를 묻어주고 떠나고.
그 무덤에서 피는 꽃은 100일 동안
피고지고 피고지고.
(박상진교수)
간척지 냄새가 나고.
시원한 바닷바람에 한잠 자려했더니
같이 간 친구가 가만 두지를 않았고,
이야기 하느라고.
느림보여행은 도대체 바쁘지가 않다.
오천 초등학교 뒤쪽으로 가니
유격장군 계금 공덕비가 있었고.
임진왜란때 명나라 수군장수가 3천명을 이끌고
이곳에 상륙하자, 이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공덕비를 세웠다고.
아담한 오천교회 건물은
분당살았던 시절, 다녔던 교회를 생각케 했다.
삼문은 수군절도사가 집무하던 공해관의 출입문.
충청수영의 장교청(객사) 옆으로 옮겨놓음.
공해관은 없어진지 오래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없었고.
오천초등학교 자리에서 옮겨진 장교청.
수군절도사가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고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 숙소로 사용.
준비한 복숭아를 먹으며 한참동안 한담.
그러던중 같이 온 친구는 손수건이 없어졌다고
식당에도 전화하고 어수선.
해물칼국수 먹을 때 분명히 손목에 감고 있었는데.
국민학교 일학년 때인가 신발주머니를
목에 걸고 한참 찾았었다고.
요즈음은 목걸이한 마스크를 뒤로 돌려놓고
식사한 후 한참 마스크를 찾는다고
내가 얘기를 했었다.
한참을 찾더니 찬구는 갑자기 웃어 젖혔다.
손수건을 목에 걸고 있지 않은가,
갈매못순교성지 등 순례길 안내문이 있었고.
입구에서 열체크,
딱지를 붙여주었다.
열이 나면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보령시의 선진기법.
이층에 있는 달보드레에서 커피 한 잔.
오양손칼국수에서 식사를 한 사람에게는 10% 할인.
'달 보드레요'는 강원도 사투리 아닌가.
원광수산에서 간제미무침+시원한 비루 한 잔.
배가 불러 무침을 3만원어치 주문했더니
그도 많았고.
수영성 입구의 청해수산은 간재미무침
최소 가격이 6만원. 원광수산 옆집은 4 만원.
주인집 아주머니, 이곳이 고향인데
마음이 푸짐했다.
이동네는 키조개 코스요리가 대세.
청소역은 장항선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驛舍),
원형이 보존된 국가등록문화재.
하루에 8번 무궁화호가 정차.
1929년 영업개시, 2020년 폐역 예정.
이역에선 표발매 업무도 안한다.
여름을 청소하는 역.
송광호가 주역으로 나오는 다큐.
독일기자가 광주사태 검문을 뚫고
사건을 취재하는 내용.
1시간 마다 지나가는 열차.
흰조롱박꽃이 피었고, 열매도 열리고.
얼룩조롱박은 처음.
밤에 이역에서 열차를 탄다면
박꽃으로 세상이 환해진 정경을 볼 수 있을 텐데.
주말에 이 열차를 타려면
일주일 이전에 예약을 해야.
역부족.
느림보여행 자주 해야겠다.
집에 오니 밤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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