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별이 사라져
흔적만을 빛낼지라도
나는 별을 보고 있으니
별은 나와 함께 있구나'
(한섬, 눈이 부신 그런 날들)
임광진친구와 함께.
코레일 관광상품, 레일텔을 처음 이용했다.
대만 자유여행시 이용한 에어텔과 비슷한 상품.
기차편과 숙소를 한번에 예약.
산에 열심히 다녔던 김동원친구가 4.14일 갑작스레
소천. 사위가 부산으로 직장을 옮겨
부산으로 생활터전을 옮긴지가 2년이 되었나?
연락이 늦게와 이날에서야 부산으로.
부인도 좀 안정이 되었을 테고.
친구는 뭔가 심각한 표정.
내가 친구와 마지막 대화를 한것은 작년 11.7일.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광진친구부부가 와서
을숙도를 갔다고 했다.
친구가 같이 했었다.
왼쪽 밑의 줄 두번째가 동원친구.
부산엔 친구들도 없고, 활달한 친구가 아닌지라
좀 더 자주 통화라도 했을 껄 하는 생각.
문가는 성공의 역사를 이어 국민통합을 이루라고.
마지막까지 헛소리.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박시춘(1913-1966) 작곡,
남인수(1918-1962) 노래,
이별의 부산정거장.
부산과는 별로 인연이 없다.
전대통령시절, 전경환씨가 뉴질랜드에서
헤어포드, 앵거스(육우) 수입을 추진시
내가 그업무를 담당,
1,500두 이상 실은 배가 부산에 도착하면
소들은 15일간 동물검역소에 머물게 되어
한 두번 이곳에 출장왔었던 기억.
경희친구와 해운대에 머물며
을숙도 철새를 보았던 기억 뿐.
부산엔 우리회사가 운영하는 사료공장이
있었는데, 직원들 얘기로는 날씨가
온화하고 물가가 싸서 살기 좋다고.
남는 시간에 역에서 가까운 태종대를 방문하기로.
현위치에서 22번 영도등대까지 한 바퀴 돌았다.
아랫길로 해서 윗길로.
순환열차가 쉬고 있어 걸어서 한 바퀴.
시간이 없어 해안가를 내려가 볼
여유는 없었고.
태종대는 영도구 동삼동 소재.
국가지정문화재이자 국가지질공원.
삼면이 첨예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해식애.
신라시대 무열왕이 이곳에 와 절경에 도취했다기도
하고, 하늘에 빌어 비가 내렸다 하기도.
동래부사가 기우제를 지낸 곳.
오륙도, 쓰시마가 보인다.
신선대, 오륙도를 유람선을 타고 돌아오는데
한 시간.
원래는 이곳에 말사육장이 있어 목도(牧島).
그러다가 군사훈련용 말이 빨라 그림자도
안보인다 하여 절영도(絶影島).
1951년 절자를 빼고 영도(影島).
면적은 14.2제곱km.
남서면은 급경사이고 북동은 완만.
인구 118천 명.
조선공업단지, 패총, 해양대학교 등이 있다.
오른쪽 건너편은 해운대.
부산광역시의 인구는 356만.
동래에 선사시대 유적이 가장 많고.
신라세력에 일찍 흡수가 되었다.(1세기)
고려후기에 왜구침입에 대비
동래읍성 축조.
1423(세종 5년) 부산포가 개항되고
왜관 설치. 당시 동래인구는 2416명.
1592년 울산에 있던 경상좌수사영을
수영으로 옮김.
1877년 일, 청, 영 영사관 설치.
1925년 진주의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1955년 인구 백만 돌파.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1987년 지하철 개통
현재는 큰 산업시설이 없어 활기가 없는
도시라고.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종기, 1939-, 바람의 말)
쪽동백 꽃말은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서.
때죽나무와 형님, 아우 하는 사이.
동백나무보다 열매가 작다.
그래서 쪽자가 붙는다. 쪽문, 쪽배처럼.
씨앗기름을 짜서 호롱불 기름으로 쓰고
동백기름이 비싸 어려운 사람에겐 대용으로.
20여 송이씩 긴 꼬리모양의 꽃차례.
(박상진교수)
내마음은 어데로?
친구도 생각하고
나는 어떻게 될까.
1906년 점등 시작.
예술작품전시실,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엔 공룡발자국, 공룡화석이 있고.
등대 아래에는 신선바위가 있고
그 위에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돌로 변했다는 망부석이 있다.
우리가 등대를 바라보고 있는 곳엔
이시형(1910-1985) 해양대학 창립자,
독립운동가였으며 내무, 국방장관을 역임한
신성모(1891-1960)씨 등의 상반신 동상이
세워져 있음.
그늘진 습지를 좋아하는 다년생 초본.
장희빈에 내린 사약원료.
따뜻한 성질 때문에 약재로도 쓰이고.
천남성은 가장 양기가 강한 남쪽 별.
눈이 부셨다.
아직도 경황이 없다는 친구 부인.
다니고 있는 교회 신도들 덕에
장례를 잘 치루었다고.
친구는 무종교.
큰딸은 부산에 있는 직장 다니고,
칭따오에 있는 둘째달 내외가 한 달
휴가를 내어 와 있다고.
친구는 3일 복통에 시달렸는데
마지막날은 괜찮아지는 것 같드니
밤 9시 화장실에서 숨졌다고.
복통으로 사망하는 일은 드문데-
자세한 사인을 알려면 부검을 한다 해서
그만 두었다고.
산에 다니는 친구를 중심으로
친구들의 정성을 전달했다.
산악회 카톡에 한 마디 올렸을 뿐인데-
참여한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전철을 탔다.
처음 타보는 부산전철.
산을 오를때면 동원친구 도시락엔
제일 정성이 들어있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친구,
부인도 극진했고.
모친이 돌아가셔 문상시 부인에게
저녀석이 무얼 잘 하길래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주냐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당연히 대접을 받을만큼
잘한다고 대답.
묻는 쪽이 바보가 되었던 셈.
빵 한 개씩.
나와는 달리 광진친구는 부산에 대해 잘 알았다.
지리, 맛집 등. 지인들도 있고.
과거엔 부산 YMCA도 큰 조직이었겠지.
출장도 자주 왔고.
해운대맛집 금수복국에서 저녁.
졸업후 아마 처음일 게다.
이해청친구는 고3때 우리반이었는데 과묵하고
곽신열친구는 얼마나 쾌활하던지.
우리가 즐거웠다.
중병을 이겨내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마치 청년 같다.
이친구들은 동원친구가 부산으로
이사왔는지도 모르고.
신열친구가 모는 개인택시로 달맞이공원
구비길로 해서 송정해수욕장으로.
낮이었으면 와우산중턱의 좋은
풍치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곳도 개발이 되어 옛날 같지 않다고
친구는 말했다.
쾌활한 대화는 이어지고.
저녁값은 신열친구가 계산.
서울오면 청와대구경 가자고 제의.
부산 MBC 아나운서 하던 이필중친구와
통화했는데 양산으로 이사를 가서
참석이 어렵다고.
신열친구에 의하면 불고기집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또 변동걸친구가 부산지방법원에 있을 때
친구들이 자주 만났었다 한다.
친구는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 놓고 떠나고.
매일 일을 하지는 않고
답답할 때 차를 몰고 나온다고.
우리 나이가 그렇지.
일보다 휴식이지.
해운대구(海雲臺區)는 중동, 좌동, 우동이 있고
해운대해수욕장은 중동.
신라말 최치원이 이곳에 들려 경치에 반했고
동백섬 동쪽 벼랑, 넓은 바위에 해운대를
음각한데서 지명이 유래.
최치원의 자가 해운이기도.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 국제컨벤션 중심지
(BEXCO, 우동).
국제영화제도 열리고.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101층 랜드마크타워를 포함. 2020년 완공.
한때 비리가 진동했던.
요즈음 평당 1억이라고.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1972년 발표된 조용필 노래.
1976년 조총련계 재일교포 고국방문이
허락된 해, 재판이 나왔다.
모래축제 준비가 한창.
경희와 이곳에 유할 때는
호텔도 적고 정말 멋있었는데-
큰 건물들이 조망을 가리고 난개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만해도
도시미관을 우선시하는 건축규제가 있는데-
대도시에 이런 조그만 항구가 있다니.
멋지지 않은가.
주위에는 횟집.
아줌마들 바빠지기 시작.
모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수중에 방파제 설치.
선박 통과시 위험 방지를 위해
조형등표 설치.
여인상은 민광식작가의 조형물.
가을에만 문을 여는 여인.
발전해가는 대도시의 모습은
생각한 것보다 아름답지 못했다.
예상외로 사람들이 때가 되자
이곳을 찾기 시작.
24시간 운영점.
정치 모리배들에게.
대패삼겹살집.
다시 버스로 범어사입구까지.
한번 오고 싶었던 곳.
20년이 되었을까?
용인경찰서장이 상을 당해 마나님과 같이
해남으로 문상 갔던 일이 생각나고.
마침 주말에다 일용직 기사를
부릴 수도 없었고.
문상을 끝내고 해남을
한 바퀴 돌았었다.
동원친구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친한 친구가 동행해서 좋았고.
범어사는 부산에서 가장 높은 산 금정산(802m)
자락에 있다. 서울의 백운대(836m)보다는 낮은 산.
언제 기회가 된다면 오르고 싶은 산.
어제만 해도 서울보다 기온이 낮고
춥게 느껴졌는데.
1703(숙종 29년) 금정산성이 축조되었고
범어사는 승군사령부가 됨.
모양이 독특하다.
범어사(梵魚寺)는 금정구 청룡동 소재.
678(문무왕 18년) 의상대사 창건.
산 꼭대기에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는 금빛
우물이 있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가 놀았다고.
그래서 금정산의 범어사.
해인, 통도와 함께 영남 3대 사찰.
백년 노송에 둘로싸인 경관을 자랑하고
수많은 고승을 배출.
신라 화엄 십찰의 하나이고
왜구를 진압하는 비보사찰의 하나.
대웅전, 3층석탑, 조계문 등이 보물.
일제때 한용운이 범어사에서 공부하던
학생들과 독립운동을 하였고
전국에서 쓸 태극기를 제작.
조계문은 보물로, 첫째문, 산문, 일주문이라기도.
자연암반 위에 돌기둥 4개를 세워 한국사찰에
유례가 없는 문.
나즈막하고 자연과 조화된 조형미가 돋보임.
1614(광해군 5년) 창건, 1718(숙종 44년)
돌기둥을 교체.
조계(曹溪)는 중국 선종 제6조
혜능을 가르킨다고.
불이문(해탈문)은 부처님과 중생은 본래
둘이 아니며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근원은 하나라는 뜻.
친구와의 이별과 만남,
근원은 하나라고.
이절은 상, 중, 하 3단의 가람배치.
상단에는 대웅전, 중단에는 보제루 주위 당우,
하단에는 일주, 천왕, 불이문 등.
대웅전은 전형적 다포맞배지붕.
1613(광해군 5년) 중창되었고
1680(숙종 6년) 다시 지은 것.
석가여래 중심으로 미륵보살과 제화
갈라보살(과거불)을 모심.
통일신라 전형적 3층석탑.
9세기 건립 추정.
뒤에는 왼쪽부터 관음, 비로, 미륵전
그리고 영주선재(瀛洲禪齋) 편액을 달은
금어선원.
당간지주는 사찰의식때 당(불화를 그린 기)을
걸기 위해 세운 깃대.
무슨 특별한 날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경상도 신자들이 더 열성적.
금강계단은 보제루 뒷편의 편액.
설법이 이루어지고 계를 받는 곳.
절이 지탱될 수 있을까?
팔상도와 불상을 봉안한 팔상전.
깨트릴 팔(捌)자를 쓴 이유는
숫자 八을 표시할 때 함부로 고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같은 발음의 복잡한 자를 썼다.
다시 전철을 탔고.
부산전철 노인석은 네 칸.
노인표를 끊기도 서울보다 쉽다.
신분증을 발급기 아래에 넣으면
500원 동전도 필요없고,
바로 발급이 된다.
서울노인보다 더 대접을 받고 있는 셈.
오직 정직 하나로!
국회에 달았으면 좋을 것을.
자갈치시장에 눌러앉아 회를 점심으로.
따로 생선을 사서 차림비를 낼 필요도 없었고.
우리가 갑오징어가 비싸니 어쩌니 했더니
사진의 여인들이 갑오징어회 몇 점
나누어 주었다.
부산의 대선소주도 한 병 했고.
회는 다먹지 못해 남겼고.
마침 곽신열친구가 전화를 했다.
쾌활한 목소리.
친구와 같이 했으면 좋을 자리.
폐를 더 끼치고 싶지않아
되었다 했더니-
집으로 택배로 부쳤고.
서울에 비하면 무척 싼 가격.
오륙도 해맞이공원으로.
열차가 어느 역에서 오고 있는지를 알리는
전철표시가 재미 있고.
맨끝이 스카이워크.
해파랑길 1코스는 오륙도 해맞이공원부터
해운대 미포항까지.
해파랑길은 이곳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10개 구간 50개 코스, 750km.
1코스중 이기대 해안산책로(오륙도-동생말)는
4.7km(2시간)로 가장 경치가 좋은 곳.
오른쪽은 달맞이공원.
좌측의 방패섬과 솔섬은 썰물일 때는 우삭도
1개 섬이 된다.
그래서 오륙도. 다섯개도 되고 여섯개도 되고.
국가명승 24호.
부산국가지질공원이기도.
위치, 방향에 따라 오륙도가 되기도 한다.
뒤의 선 끝에 등대섬의 등대가 희미하게 보이고.
이곳은 동해, 남해의 경계이기도 하다.
밑으로 바위와 파도가 보이고.
분다버그, 생강맥주.
맥주는 아니고.
오륙도 홍보관에서 해설사한테
이기대를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시간이 없으니 짧은 길을 가르켜 달라고.
화살 표시 끝이 오륙도 공원.
이기대가 정확히 어디인지 표시가 없고.
우리는 공원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왼쪽 아래 이기대앞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물어물어 이기대성당까지는 제대로
갔으나 이곳부터 헤매기 시작.
이기대(二妓臺)는 오른쪽 산책로 해안가에
면한 2km가 넘는 기묘한 바위 암반.
공룡발자국 흔적이 있는.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경상좌수사가 두 기생과 풍류를 즐겼다 해서
임진왜란때 기녀가 왜장을 안고
떨어져 죽었다 해서 이기대라고.
즉 세 가지 설이 있다.
이기대를 찾지 못했다.
지역사람도 모르는 이기대.
사전 지식없이 바위에 이기대라는 글씨가
있으리라는 추측 속에 찾았으니.
전설따라 삼천리.
기차시간에 맞게 부산역에 도착하여
18:00 발 KTX를 타고 상경,
집에 오니 10시가 다되었다.
걸음수로는 첫날이 14천보,
둘째날이 16천보.
좋은 길벗이 되어준 임광진친구에게 감사.
동원친구 가족의 안녕을 빌고.
달맞이고개가 잘못그려져 있다.
해운대해수욕장과 송정해수욕장
사이에 있어야 할 텐데.
'지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아도
지난 계절은 돌아오고
시든 청춘은 다시 피지 않아도
시든 꽃은 다시 피고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아도
빈 술잔은 채워지고'
(주병권, 1962-,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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