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갈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아산친구 애마를 타고 봉화로.
봉화 그리고 청량사를 들릴 때마다
청량산을 올라야지 했던 게 몇 번인지.
금년 여름 봉화 구마계곡에서 한여름을
보낸지도 얼마 안되었지.
출발한지 두 시간 반만에 봉화읍 도착.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운전하는 양반, 말을 알아듣는 내비에게
"아가씨 시간 있어요?" 하니,
"왜 그러세요."라고 말대답.
건물 위엔 봉화의 심볼, 송이버섯.
한편에는 고추, 버섯을 말리고 있어
사진을 찍었더니, 코사마트 여주인이
뛰어나와 사진을 보여달란다.
그녀의 고추라고.
시골아낙네들도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있구먼.
옆집에서 여행중 먹을 김치를 샀고.
배도 고팠고, 맛있었다.
옆에 있던 잉어빵 사장 친구도
500원이면 값을 너무 올린 게 아니냐고.
10년 전 버스를 타고 이곳에 내려
봉화에서 춘양까지 외씨버선길을
걸었던 것이 생각나고.
이날 저녁거리를 사려고 농협하나로를 들렸더니
계산하는 친구 둘, 모두 남직원.
친절하고 일솜씨도 빠르고.
국화과의 태양처럼 뜨거운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 아메리카원산 한해살이 식물.
그리스 호수의 신의 딸, 두 자매가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구애를 하는 중,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동생을 죄수로 만든
언니는 그만 한 포기 꽃으로 변했다고.
(국립중앙과학관)
올여름 들렸던 본가한식으로.
여사장이 중광스님의 친척이고
음식이 깔끔했던 집.
입구에는 이식당의 손님이었던
정현종시인(1939-)의 시 등이 걸려있었고.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으니 조동진, 최헌의 노래가 흐르고.
우연이지만 조동진(1947-2017), 최헌(1948-
2012) 모두 우리동문.
조동진은 우리들 동기이고
최헌은 1년 후배.
이어 차중락(1942-1968)의 노래도 흘렀고.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말아야지.
여기저기 놓여있는 모과 등
상냥한 여주인의 품격을 말해주는듯.
친정이 구미라고.
청국장+갈치조림+경주법주쌀막걸리.
한식 1인분이 8천원, 값은 종전 그대로.
인구 38천의 산골지역인데
젊은이들이 바글바글.
교육청직원들이라고.
봉화 명호면 도천리 소재.
조선 고종때 통덕랑 강영달이 범을 잡은 바위.
통덕랑은 문신 정5품 상계, 요즈음 서기관쯤 되는.
정1품 상계의 봉작은 대광보국숭록대부.
오른쪽에 이나리출렁다리가 보인다.
여행을 떠나기전 김주혜의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Beasts of little land)'을 보기 시작.
한국계 미국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
사냥꾼의 호랑이 사냥으로 시작되는 소설.
이곳은 래프팅 명소.
예던길은 옛날 선비들이 다니던 길이란 뜻.
청량산(870m)과 문명산(894m)을 마주본다.
만리산 아래 관청폭포와 갈골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고.
만리산 기슭에 조그만 사찰,
향적사가 있다.
춘양 서곡에서 시작하는 운곡천이
태백 황지에서 시작되는 태백천과 만나
(낙동강 시발점)
청량산 12봉우리를 도는 이나리강이 되어
안동댐으로 흘러들고, 영남 중앙저지를
통해 남해로.
낙동강은 압록강, 두만강 다음으로
긴 강, 525km. 가락의 동쪽이란 뜻이 있고.
가야, 신라 천년의 애환과 정서가 녹아있고
근대화, 산업화의 동맥.
가을사나이 다섯.
옻나무과. 10월부터 붉은 단풍을 자랑하는 나무.
갓끈 등을 만들고 여러가지 병을 고치는데
유용, 천금목이라고도 불린다.
칼륨이 많은 열매는 소금대용으로.
열매를 먹어보면 짠 맛.
진딧물 벌레집인 오배자는
치질, 피부병 등에 약효가 있고.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북한 말로는 푸른 산국.
7-10월 연한 자주색꽃을 피운다.
개미취와 구분이 어렵다. 개미취는 꽃대에
개미처럼 생긴 작은 털이 있고,
잎이 약간 넓고 잎의 톱니가 가늘고.
구절초는 국화 잎에 흰꽃이 피고.
향내가 진한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9-11월 개화. 꽃송이가 작고
옹기종기 피고.
바닷가에 자라는 감국은
꽃송이가 크고.
가을이 수북히 쌓였다.
우리들의 발걸음도 가을에 젖고.
이퇴계선생이 이곳을 방문, 시를 남겼고
사람들은 관청폭포계를 조직,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정자를 세웠다.
'높은 벼랑 큰 절벽을 어느 해에 뚫었는고
거센 천길 물줄기 흰 비단을 걸었네
바위 숲에 떨친 소리 산 귀신 달아나니
이곳의 사물들은 모두가 신선일세'
정자 지붕엔 낙엽, 수북히 쌓였고.
비교가 되지않는.
퇴계선생이 한 수 읊을만한.
깊은 산속의 폭포,
처음 느껴보는 신선한 느낌이 들었고.
곱새기며 걷는 길.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카페의 유혹.
재혁친구왈 속지말라고.
가본 친구의 말이 맞겠지.
'당신의 맑은 미소.....
햇살 속에 또 하나의 햇살을 만들고
길 위에 또 하나의 길을 만들고
이젠 당신이 만든 그 길을 따라
내길이 된 당신을 따라
햇살 속을 걸어갑니다'
(김하진, 햇살 속을 걸어갑니다)
*시인은 교사직을 그만두고 봉화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명상수행, 작품활동을 한다.
입석에서 청량사까지 산길을 걸었고.
왕복 2.6km.
청량사를 가려면 이길로 가던가
절 아래에 차를 세우고 급경사를 오르던가.
절이 산중턱에 있어서.
생강나무가 많고.
노란단풍의 주인공.
계단길도 오르고,
시발점에서 300m 오르면 응진전 갈림길.
이곳에서 1km 더 가야, 청량사.
산꾼시인 김성기시인의 집이 나오고.
'바람이 분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움이
되고 싶다' 등의 시집이 있다.
어렴픗이 이곳을 들린 기억이 나고.
'숨'을 가지고 가서
내세에 바람으로 오시게나.
기억에 있는 청량사보다 훨씬 단촐.
맨앞의 건물은 범종루.
주차장에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
일주문을 거쳐 절에 왔던 기억도 나고.
청량산 12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창건.
당시 연대사 중심으로 26개 암자가 있었다고.
이곳에서 하늘다리까지는 30-40분,
응진전까지는 20분 걸린다.
정유리세계(淨琉璃世界, 유리와 같은 칠보로
이룩된 청정한 세계)에서 불전이름이 왔다.
불전 안에 있는 건칠약사여래좌상은 보물로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건칠불(乾漆佛).
8세기 후반-10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작품.
건칠불은 삼베 위에 옻을
두텁게 발라 만든 불상.
또한 보물로 지정된 목조지장삼존
(1576년 제작)이 있고.
오층탑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고
청량산 기운이 모인 곳.
소나무에는 원효대사의 설화가 깃들어 있다.
대사는 뿔이 셋달린 소를 데리고 논을 가는
농부를 만났는데 소는 말을 안듣고 날뛰었다.
농부에게 시주를 권하니 소를 쾌히 시주.
절에선 소는 고분고분 재목을 나르고,
절의 준공 하루 전에 죽고 말아,
삼각우송자리에 묻었더니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랐다고.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다 한다.
건칠약사여래좌상이 있고.
좌에는 지장보살, 우에는 문수보살.
공민왕(1330-1374)의 친필이라고.
왕은 친원세력을 물리치고 개혁정치를 폈다.
1365년 노국공주가 산고로 죽자 정치도 소홀.
그는 고려의 대표적 화가의 한사람이었고
글씨에도 능했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황족출신으로 공민왕의
정치적 동반자였고 왕에 대한 사랑과 열정도
대단했지만 예술적 감수성도 뛰어났다고.
단풍, 담장, 장독대 등.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9-10월에 흰색꽃이 핀다.
다육성식물이고 꽃이 피고나면 죽고.
녹색이지만 종종 붉은 빛을 띠고.
청량사 주지, 지현스님의 시.
동자승이 이곳 저곳에 있고.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모두 끊을 것입니다.
그러면 웃음이 있느니라.
이퇴계선생님은 청량사를 가보지 않고서는
선비노릇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이날의 숙소 '청량사에서 하루팬션'에서
좋은 하루를 끝내고.
갈비탕+햄소세지 볶음+막걸리(참소주)+
oneglass wine(산지오베제 토스카나)
이날밤 방이 너무 뜨거워 자는둥 마는둥.
풍경소리는 계속 들렸고.
(숙소에 달아놓은)
팬션은 청량산 도립공원내 위치.
밀성대는 공민왕이 군사훈련시 명령을 듣지않는
군졸, 백성을 이곳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곳.
청량산성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2차난(1361년)을
피해 머물며 쌓았다는 산성.
밀성대 아래에서 축융봉을 거쳐 구축된
내성과 경일봉-자소봉을 잇는 산성.
장대와 건물터, 성문터가 있다.
공민왕은 이곳에 머물다 환도한 후
비운으로 사망.
첫날과 같이 입석에서 출발,
300m지점, 웅진전 삼거리에서 웅진전으로.
3살 연하 친구와 한참 같이 동행했는데
상처를 했다고. 중동고 출신.
주로 산행을 즐긴다 했고.
응진전 옆 무위당.
응진전삼거리에서 600m.
분별, 망상이 끊기고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소멸된 상태가 무위.
아무것도 안하는 무위도식이 아니라.
유리보전있는 곳이 내청량이라면.
원효대사가 16나한상을 모시고 수행한 곳.
카우보이 같은 금강역사가 있고
저승판관, 저승사자가 있는 등
지장전이 더부살이 하는 모습.
응진은 불교수행자 중 높은 경지에
오른 아라한을 말함.
응진전 안에 노국공주상이 안치되어 있다는데-
자세히 볼 것을.
대숲 바람 소슬하고
항상 서늘한 바람이 불어
최치원선생(857-)이 독서, 바둑을 즐겼던 곳.
풍혈대 바로 밑에는 통일신라시대 명필,
김생(711-791)에 버금가는 서예가, 요극일이
공부했던 극일암터가 있다.
치원암터가 있고,
최치원이 마셔 더욱 총명해졌다는
총명수가 있다.
뒤로 청량사가 내려다 보이고.
금탑봉 중층에 위치.
내청량과 외청량을 연결하는 요충지.
돌덧널무덤이 있다.
삼국시대 만들어진 무덤.
격자모양의 토기편이 수습되었고.
굴앞에 김생이 암자를 짓고 10년간 공부,
김생필법을 확립하였다고.
공부 9년만에 자신감을 갖고 하산하려 하니
청량봉녀가 나타나 길삼솜씨와 글씨솜씨를
겨누자고 하였던바 봉녀가 승리하였다.
이에 김생은 1년 더 공부하여 하산했다고.
오산당(청량정사)에서 바라보면 천길 높은
곳에서 흰줄기가 장관인 김생폭포도 있고.
'종요나 왕희지 필법만을
추앙하지 말지어다
천년만에 우리나라에서
솟아난 몸일세
기이한 그 필법 폭포수
틈 바위에 남았으니
그의 뒤 따를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노라'
(이황, 1501-1570, 김생굴)
긴 계단을 또 올라
오랜만에 제대로 간 등산.
한 걸음 한 걸음, 위는 쳐다보지 말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던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엉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1908-1967, 행복)
나무뿌리 대문에 오르기 힘든 언덕길도 지나고
뒷실고개 지나
또 까마득한 길을 오르나니.
해발 800m지점,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길이 90m의 다리.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위치한
다리라지만, 계속 다투어 놓아지는 다리들-
알 수 없지.
장인봉(丈人峯)으로.
장인이 계신 봉우리?
청량산에서 제일 어른인 어른바위란 뜻이겠지.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산의 주축인 12봉우리 이름을 지었다고.
유부초밥과 주먹밥에 사과.
이곳서 장인봉까지 350m.
장인봉갈림길에서 청량폭포까지는 1.5km.
장인봉을 가서 다시 돌아와 갈림길에서
청량폭포로 하산할 예정.
정상은 언제나 밋밋.
이곳에서 본 산하.
청량산은 혹서기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하며
자연경관, 기암괴석에 역사이야기가 있는 곳으
경북도립공원이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23호.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오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세계로 가고싶네'
(주세붕, 1495-1554, 정상에 올라)
주세붕은 유교이념 보급에 앞장 섰으나
도교 냄새가 난다.
다리는 휘청거리고.
불가사리 모양의 붉은 꽃받침에
1케롯 크기의 사파이어 보석.
전체 모양이 브로치.
(박상진 교수)
폐가 한채가 나오고
'산에서 볶은 커피 차 카페' 안내판.
도보로 198보.
우리는 갈 힘이 없다고,
공짜로 주어도.
두들갈림길이 나오고
지리산둘레길 돌 때
하동입구에서 마신 캔맥주보단 못했지만
시원시원.
명호면 북곡리 소재.
철인 아산친구는 입석에 놓아둔
차를 가질러 서둘러 갔고.
대단한 친구이다.
보기는 좋으나 너무 적고 달지도 않고
약용으로 쓰나보다.
아스팔트길까지 내려와
청량폭포를 보니 별로, 수량도 적고.
소요시간 5시간 반.
6.4km를 걸었고.
하루 전 차창으로 보았으나 아쉬워서.
은행나무는 2억년 훨씬 전에 나타난 나무로
은행나무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넓은잎나무가
아니고 바늘잎나무에 속한다.
나무세포의 종류, 모양, 배열로 보아.
(박상진교수)
무대아래는 막춤이 한창이고
명호초교 입구는 차량행렬이 길었고.
외제차도 보였다.
돌아다니다보면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텐트마다 사람이 가득.
고도성장기에는 봉화는 낙동강 오리알이었으나
태백산 정기, 태백산 호랑이가 포효하는
경북 행복 1번지라고.
이곳에서 낙동강의 긴 여정이 시작되고.
친구들은 이곳의 오리알이 낙동강 하류로
떠내려가면 발효가 되어 송화단(松花蛋)이
된다고 떠들었다.
왼쪽의 춘양 서곡에서 흐르는 운곡천,
오른쪽 황지에서 시작된 태백천이 만나
이나리강(낙동강상류)이 흐른다.
이나리는 두 내란 뜻.
봉성면 봉성리 시장 안,
봉성면 사무소 자리에 있던 봉화현 관아건물
일부를 구한말에 현위치로 옮긴 것.
중진 유현들이 집회, 교류하던 곳.
말하자면 옛날에는 봉성
이 봉화의 중심지였다.
봉성은 숯불로 구운 돼지고기로 유명.
알려져 있는 청봉숯불구이는 휴업이고
그나마 영업중인 솔봉숯불구이에 자리를 잡어
돼지숯불구이에 참소주(금복주).
맛도 썰렁했고.
옛날 그맛은 어디로?
고양이는 어데 갔어요 했더니
퇴근했다고.
용인 수지에서 왔다는 여주인
자연농법으로 밀을 직접 재배
직접 천연효모빵을 굽는다고.
이런 한가한 농촌에서
손님이 있을까.
빵을 사고
아랫집 슈퍼에서 아침용으로
물과 라면을 사고.
블라인드를 걷으면 밖의 픙경이 들어오는
숲속의 집, 원추리.
봉성면 우곡리 문수산 기슭.
지은지 얼마 안되는 시설로
등산로도 만드는 중.
문수산 축서사 가는 길
사과밭이 많았다.
(병헌친구 사진)
좀 더 있어야 맛이 들겠지.
외씨버선길 걸었을 때 각화사 근처에는
고목이 된 사과나무가 많았었다.
사과 씨알도 굵었고.
주위에 스므나무가 우거진 곳.
위장, 피부병, 소화불량에 특효라고.
옛날 사람들은 5리마다 오리나무,
20리마다 스므나무를 심었다 한다.
축서사는 문수산자연휴양림의 반대쪽 기슭,
물야면 개단리 소재.
문수산은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은 형상이며
문수사가 자리잡은 터는 독수리가
짐승을 낚아채는 형국.
수리취(鷲)자인데 축자로도 읽나보다.
눈부시고 신선하고.
축서사는 673년(문무왕 13년) 의상대사가 창건.
문수산 아래 지림사의 스님이 개단초교 앞산에
빛이 있고 한 동자가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곤
구름타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동자는 문수보살. 소식을 들은 의상대사가 불상
모실 곳을 현재 대웅전터로 정하고 창건했다고.
맨뒤 소백산 능선이 부드럽게 뻗쳐있고.
독수리(지혜)가 사는 절, 축서사는 큰 지혜를 가진
문수보살이 나타난 절이라는 뜻이 내포됨.
부처님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중국에서 만든 탑 같기도 하고
하여간 여기저기 돈을 많이 들인 것 같다.
보광전에 있던 석조비로자나불상과
후광배는 보물급.
경내에선 부지런한 보살들만이 보였다.
신라말기나 고려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경북 문화재재료.
이번 여행은 봉화군 명호면 중심으로 봉성면,
물야면을 돌아본 다음 물야면과 이웃해있는
영주 부석사(영주시 부석면 북지리)로 이동.
범종루 현판엔 봉황산 부석사.
부석사는 태백산 자락에 있고
절집을 품고있는 봉우리 이름이 봉황산.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에 있는 고치령을 기준,
동쪽은 태백, 서쪽은 소백.
부석사는 소백산에 가까이 위치하지만
태백과 연결되어 있다.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
무량수는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
의상대사(625-702)가 부석사 창건시
지었다고 추정. 기둥은 아래와 위로 가며
가늘어지는 배흘림기둥에 주심포양식.
현판글씨는 공민왕이 쓴 것이라고.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
나무로 앉아있는 모습의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진흙을 붙여가면서 표현한 불상.
우리나라 소조불상중 가장 크고 오래됨.
아미타불 한분만 모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니라 서쪽에 모셔져
동쪽을 바라봄. 서방정토에 있기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통일신라불상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초기 불상양식을 알려주는 불상.
일몰이 명품.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깨달음을 얻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 뒤늦게 알은 선묘라는
여인,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 무사귀국하게 하였고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할 때 많은
이교도들이 이를 방해.
선묘신룡이 나타나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고.
다음으로 통일신라시대 탑, 삼층탑도 돌아보고.
무량수전 동쪽언덕에 위치한.
삼층석탑에서 본 모습.
오른쪽 건물이 무량수전.
선묘각도 들여다보고.
육회비빔밥 한 그릇.(영주시 가흥동 경북전문대 앞)
병헌친구가 쏘았다.
손님이 많아 우리 대기번호가 11번.
권사장은 봉화읍 닭실마을(충재 권벌의 고향)출신.
안동에서 봉화로 이주한 선비들의 후손.
졸업 50주년 수학여행시 이곳에서 목회활동
하던 우리동기, 박흥기목사가 참여토록
후배가 알리고 종용했다고.
지금은 딴곳으로 이주했다 한다.
단양팔경휴게소(춘천방향)에서
남한강을 내려다보고.
단양적성(赤城)을 올랐다.
휴게소에서 볼 수 있는 유적이 있다니.
단양적성은 사적 265호.
신라가 고구려 영토인 적성을 점령한후 세운 비.
545-550(진흥왕 6-11)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
민심을 안정시키고 신라의 새영토임을 확인하며
복속된 고구려인들을 흡수하려는
국가의지가 들어있다.
이름없는 정자에서 휴식을 취했고.
새마을호로 귀경.
3일 동안 12, 14, 13천보를 걸었다.
여러면에서 알찼던 여행.
운전, 취사를 즐겁게 하여 우리를 편하게 한
아산친구, 여행기획을 세밀히 세운 재혁친구
그리고 병헌과 경희친구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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