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9. 19일까지 열리고 있는
뭉크전을 관람했다.
중배씨가 빠졌네.
독일 표현주의 발전에 기여한 19-20세기
노르웨이 화가이며 판화 작가.
노르웨이 최초의 인상파 화가이자
유일한 인상파 화가.
19세기 자연주의 회화의 경직된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었고,
20세기 표현주의의 선구자.
인간적인 미술을 탄생시켰다.
(다음백과)
명문가 출신(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어렸을 때
부모, 동생이 죽어 평생을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에 사로잡힘.
크리스트아니아 왕실미술학교 입학,
작업실을 마련하고 자연주의자들과 교류.
1889년 첫 개인전.
1892-5년 베를린 이주, 생의 프리즈 작업.
1896-7년 파리 이주, 채색석판화, 목판화 제작.
1898-1900년 부유한 상인 딸과 교제, 결별.
독신으로 지냄.
1909년 노르웨이 귀국, 작업실 마련.
1916년 에켈리에서 영구 거주.
1927년 베를린, 오슬로 국립미술관측
뭉크 대규모 회고전 개최.
말년에는 판화 제작을 중지하고 오슬로
근처 집에 칩거하며 계속 그림.
1895년, 종이에 석판, 손으로 채색.
20세기의 상징같은 작품.
그가 해질 무렵, 두 친구와 같이 길을 걷는데
하늘이 갑자기 피처럼 붉게 물들었고,
피로감을 느껴 울타리에 기댔다.
불길이 검푸른 피오르 위에 뻗어있어
공포에 떨었고 자연의 거대하고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고.
1896, 종이에 석판
1894, 드라이포인트
그의 초기작품은 악의에 찬 세계, 자신의
정렬에 희생당하는 묘사로 자기소모적,
내성적이었으나,
후기작품은 삶의 기쁨과 자연의 풍요로움,
인간과 자연의 친화를 그림. 자연과 접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자유롭고 대담한
화풍을 보여줌.
**다음부터는 연도별로 그림을 소개하겠음.
1881, 유화
1888, 유화.
80년대 후반엔 인간의 기분과 감정을
투영하는 그림을 그렸고.
1888, 유화.
1888-89, 유화.
물감의 투명성을 파괴적으로 이용,
자연주의와 구분.
노르웨이 자연주의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
(1852-1925)가 뭉크지도.
1889년 첫 개인전.
":나는 숨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즉 살아있는 사람들을 그릴 것이다.
사람들은 이작업의 신성함을 이해할 것이고
교회에서 있을 때처럼 모자를 벗을것이다"라고
26세 젊은 나이에 말했다.
1891, 유화.
1891, 유화.
1891, 목탄화.
1892, 유화.
불타오르는 사랑의 절정을 상징.
생의 프리즈 시리즈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모티프.
1880년대에서 사망 직전까지
키스라는 주제에 전념했다.
1892년은 뭉크가 베르린으로 이주한 해.
1892, 유화.
1893, 유화.
실의, 슬픔, 우울감 표현.
1893-6, 판지에 구아슈.
구아슈는 고무를 수채화물감에 섞어
그리므로 불투명한 효과를 얻음.
뱀파이어는 흡혈귀.
뭉크는 작품의 형태, 재료및 색상에 있어
관형적 예술규범을 무시했고,
개인적 경험을 모더니티의 상징으로.
1893, 연필, 크레용.
1894, 에칭, 드라이포인트.
이해에 뭉크는 판화를 시작했고.
에칭은 끝이 뾰족한 도구로 동판에 인쇄될
형태를 직접 새기는 판화 기법.
드라이포인트는 동판면에 그라운드를 입히고
뾰족한 도구로 밑그림을 그린후 동판을
부식액에 넣으면 동판에 선형태가 새겨짐.
이에 잉크를 발라 압착시켜 종이에 옮기면
판화가 된다.
1894-5, 드라이포인트, 에칭.
1895, 에칭.
1895, 판지에 석판, 수채물감, 구아슈
손으로 채색.
뭉크는 750개 주제에 30천장의 판화를 제작.
판화작업 실험의 일환으로 수정작업을 이
어갔고, 목판화에 나무결을 남기기도.
1895, 에칭.
1895, 종이에 석판, 손으로 채색.
팜므파탈, 연약한 여성을 하나의 그림에 결합,
여성상을 종합한 마돈나라는 주제로 삼았다.
1896,
종이에 목판.
뭉크가 파리로 이주한 해.
1896,
종이에 목판.
1896,
종이에 석판, 수채물감, 파스텔
손으로 채색.
1896,
종이에 석판, 수채물감, 손으로 채색.
1896,
종이에 석판.
1896,
종이에 석판.
1896-7,
종이에 석판, 수채물감, 손으로 채색.
근심 가득한 사람들.
홀로 서있는 뭉크 자신.
1896,
종이에 목판, 손으로 채색.
1896,
종이에 석판, 손으로 채색.
사랑의 재.
성적 행위가 끝난 후의 장면.
1896,
종이에 석판, 손으로 채색.
뱀파이어 모티브에 대한 개념이 모호.
"이것은 경고다-- 여기 이그림은 사랑이 죽음과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한다"라고 그는 표현.
40년 후 "사실 이것은 여성이 남자의 목에
입을 맞추는 것 뿐" 그가 말했다.
1898,
종이에 목판.
1898-1900년 뭉크는 부유한 상인의 딸과
교제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에게는 세 여인이 있었다고.
1898,
종이에 목판
1898,
종이에 목판
1899,
종이에 석판
1899,
종이에 목판.
1902,
종이에 석판.
만남은 남성이 여성에게 유혹당하는 것으로
시작. 성적 매력은 남자머리를 감싸고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
에로틱한 만남은 항상 실패와
그에 따른 이별.
1902,
종이에 목판
1902,
종이에 석판과 목판
1902,
종이에 목판
1903, 뭉크 나이 만 40세.
석판.
1903,
종이에 석판.
1906,
유화.
판화에서 다시 유화를 그리기 시작.
인간의 감정과 마음상태를 투영하는 공간풍경을
종종 인간과 관련시켜 그들의 감정을
강조하는 반면, 종종 풍경만을 묘사.
1909,
유화.
1908년 코펜하겐에서 신경쇠약을 겪음.
1909년 신경쇠약에서 회복, 노르웨이로 귀국.
야외 스투디오 설치.
해안선, 바위, 피오르를 그림.
1911,
유화.
1911,
유화.
1912,
유화.
1912-3,
종이에 석판, 손으로 채색.
1915,
종이에 목판.
1915,
유화.
1910-20년대 초, 움직임, 소실점에 대한
영화적 표현. 작품변화는 영화의 발전과 유사.
에켈리에 집을 산뒤 주위환경을 탐험했고
겨울테마를 다룸.
1915,
유화.
1916,
유화.
1916-17,
유화.
1917,
유화.
반복적으로 그림으로 이중 노출 효과.
그림 위에 투명한 다른 그림.
1918,
종이에 목판.
1918,
유화.
1919,
유화.
1902년 베를린으로부터 돌아온후 작품의
장르로. 여러가지 버젼의 울고있는 누드를 그림.
여성은 그의 삶에서 작은 부분이 되어갔지만
누드 작업을 계속했다.
1919-20,
유화.
1923,
유화.
1926-30,
유화.
1927년 베를린, 오슬로 국립미술관,
뭉크 대규모 회고전 개최.
1930,
유화.
1916년 오슬로 근처, 에켈리로 이사한 후
고독과 노화.
머리카락 없는 대머리.
그림이외에는 자식이 없다고 말한 뭉크.
1930,
종이에 석판, 손으로 채색.
1932-5,
유화.
1940-3,
유화.
그리고 1944년, 81세로 타계.
사망 1년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니
대단한 예술가 아닌가.
뭉크하면 절규, 죽음의 방, 병든 아이 등을
연상했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다양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밝고 자유롭고 힘찬 그의 후기 작품을
볼 수 있어서.
**뭉크 전시회를 둘러보고 이층으로.
10. 27일까지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
자유로워지겠다는 선언.
스페인 말라가 출생.
체조를 하다 25살에 미술 시작.
증조부는 피카소의 첫번째 미술선생.
젊은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하고,
작품판매대금은 작가에게 전액 귀속.
예술의 전당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재료는 세라믹, 파덕.
재료는 월넛, 세라믹.
여러점이 팔려 있었다.
예향에서 맛있는 점심.
마음을 담은 클래식, 토요콘서트, 11시 코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
하늘은 푸르고
가을에 들어서 있었다, 9월 1일.
테라로스, 파리 크로아상 모두 만원.
예술의 전당 건너, 여자같은 남자의 비상.
에어콘은 시원찮았지만
9월 초하루 뜻있게 보낸 것 같다.
중배친구, 여기에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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