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연백, 개풍을 바라보며

난해 2024. 10. 7. 00:44

9/26(목) 08시 중곡역에서 네 명이모여 강화로 출발

여의도 파크원타워를 지났다.
 
63빌딩의 명성은 옛일이고,
빨간 세로줄의 파크원이 눈에 들어온다.
 
 
 
 

가양대교 지나고

마포구 상암동, 강서구 가양동을 연결하는
2002년 준공된 다리.
 
최초로 전방향 전출입이 가능한 다리.
 
오른쪽엔 방화대교.
 
 
 
 

강화대교 지나 강화읍 진입

강화도는 제주, 거제, 진도 다음으로 큰 섬.
940년(태조 23)에 강화란 말이 처음 등장.
 
강하(江下), 여러강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
강 아래의 아름다운 고을, 강화(江華)로.
 
원래 김포반도의 일부였으나
바다,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섬이 됨,
 
강화군은 강화도와 십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짐. 구석기 유물이 나왔고.
고구려의 혈구군, 신라의 해구군.
인구는 69천 명.
 
 
 
 

첫방문지는 연미정(燕尾亭)

코스모스가 우리를 맞았고,
앞은 월곳돈대의 성벽.
 
고려시대에 세워진 정자.
월곳돈대 앞 물길이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
 
 
 
 

연미정 오르는 길, 황협(1459-1520)의 택지

황협은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중종 7년 함경도 야인의
반란을 진압했다.
 
벼슬은 공조판서에 이르렀고.
왕은 그의 공을 치하, 연미정을 하사,
월곳에서 만년을 보냄.
 
월곳진 설치후 이곳을 관아로 사용.
 
 
 
 

이곳의 수세미꽃과 벌

평화스러운 가을.
 
 
 
 

월곳돈대는 월곳진에 속한 돈대

과거 서울, 인천, 연백으로 교통할 수 있는
월곳나루가 있던 곳.
 
남으로는 염하(김포, 강화 사이의 해협)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조강을 통해 서해로.
 
조강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져 황해로 
흘러드는 강. 썰물때 갯벌이고
밀물때는 사실상 바다.
 
청년의 한강이 바다에 다다를 때는
할아버지강, 조강이 된다.
 
조강은 휴전선이 설정되지 않은 중립지역.
이지역에선 해군함정이 UN군기를 단다고.
 
 
 
 

연미정

곁에는 520년 넘은 느티나무.
 
옛날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는
정자 밑에 닻을 내리고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
 
 
 
 

정자 곁에 있던 500년 넘은 느티나무

또 한그루는 2019년 태풍,
링링으로 쓰러졌고.
 
 
 
 

조강 너머는 개성특별시 개풍군

앞의 섬은 유도.
오른쪽에선 염해가 흘러들고.
 
오른쪽 위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모여
흘러들어 온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산맥에서
발원, 황해북도 판문군과 경기도 파주시
사이에서 한강으로 유입.
 
 
 
 

다음은 평화전망대(강화 제적봉)로

양사면  농특산물직거래 판매장에서
언덕을 넘어.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
 
연미정에서 전망대까지 15분 정도 소요.
 
 
 
 

가는 길에 핀

백단심 무궁화, 하얀 바탕에 가운데는 붉은.
아욱과 Hiviscus Sysriacus.
7-9월 개화.
 
원산지는 우리나라 서해안 지방, 랴오둥반도.
요동반도는 원래 우리땅이 아니던가(고구려).
 
 
 
 

평화전망대(2008년 개관) 위치

이북과의 최단거리는 2.3km.
(강화도와의 최단거리는 1.8km)
 
전망대에서 개성공단까지는 18km.
 
전망대 좌측은 북한 최대곡창지 연백평야,
전망대 정면은 송악산(만수산, 488m),
그 아래는 개성시, 개성공단 위치.
 
 
 
 

통일염원소도 있고

일주일 전쯤 EBS 한국기행에서
교동도 해안에서 90대 노인이 이북을 향해
그리운 어머니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었다.
 
 
 
 

전망대에서 본 황해도 해안

타지역에서 전망하기 힘든 북한의 독특한
문화상태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망원경을 통하여)
 
 
 
 

전망대(빨간 표시) 건너는 황해남북도

좌측 황해남도 연백평야(배천군), 우측 황해북도
개성시 개풍군 사이를 예성강이 흐른다.
 
예성강 입구에 고려시대에 가장 번성했던
벽란도(예성항)가 있었고.
 
고려와 송나라가 교류할 때 배를 띠워
예절있게 맞아들이고 바래다 주었던
강이라 하여 예성강.
 
 
 
 

요즈음 각광받고 있는

희토류의 북한 매장량이 세계 2위.
남북통일이 아니더라도 북한과의 경제교류가
남북한을 살찌울 터인데.
 
 
 
 

북한땅 조망실에서 영상과 더불어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와,
금강산 노래비 앞에서 황해도땅을 관망.
 
 
 
 

차를 달려 2014년 개통된 교동대교를 거쳐

교동도로.
전망대에서 30분 정도 소요되었고.
 
 
 
 

교동도 초입, 고구저수지를 지났다

8월에는 연꽃 명소.
 
 
 
 

작년에 개통된 화개산 모노레일을 타려고

표를 끊고 20분쯤 대기,
그 사이에 차 한잔.
 
노인 할인이 없다.
 
소재지는 교동면 고구리(古龜里).
용비어천가를 보면 고구려의
원래 발음이 고구리.
 
 
 
 

모노레일을 타고

화개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로.
 
화개산(華蓋山, 260m)에는 화개산성이 있고
산이 솥뚜껑을 닮았다 하여 화개산.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내리는데
40분이 소요된다.
 
목련과 튤립나무가 레일 옆에 도열해 있고.
고종때 신작로에 심기 시작한 나무.
 
북미가 고향이고 튤립꽃 모양의 꽃이 피고.
키는 30m되고 자람 속도가 빠르다.
인디언이 통나무배 재료로 사용.
(박상진교수)
 
 
 
 

정상에서 본 풍경

고구저수지가 보인다.
북쪽 바다 2-3km를 끼고 황해도 연백군. 
 
 
 
 

멋진 화개산 전망대

교동도는 교동면에 속한 섬. 인구 2.7천 명.
높은 곳에서 예성강 하구도 보이고
맑은 날엔 송악산도 보인다.
 
실향민들이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
 
삼국사기에 달을참, 고구려때 고목근,
신라 경덕왕때 교동으로 바뀌었다고.
 
경지정리가 잘되었고 어항발달에 불리.
옛날 3개 섬이 하나가 되었다고.
 
고려중엽-조선말기 유배지.
화개산성, 철종잠저소, 교동향교, 봉화대
등의 유적이 있다.
 
 
 
 

전망대 한바퀴

 
 
 
 

앞에 펼쳐진

넓은 황금빛 평야와 아담한 교동 중심지.
 
 
 
 

이 높은 곳에도 유포르비아 밀로티(설악초)

마다카스카르 원산으로 
인테리어식물로도 쓰인다.
 
튤립나무, 설악초 등 모노레일 설치시
인공적으로 식재되었으리라.
 
 
 
 

모노레일 타고 내려오다 본

입구 근처의 연산군(1476-1506, 연산군 12)의
집터(유배지).
 
 
 
 

교동시장의 좁은 골목

서강화농협 교동지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골목 한바퀴. 시장골목은 사람들로 붐볐고.
 
10년전쯤  이곳을 찾았을 때는 한산한
거리였는데-
새로 놓은 모노레일 덕분이 아닐까.
 
이북식 강아지떡, 이북식 만두가 눈에 띄었고.
팥소를 넣은 쫄깃한 인절미떡을
콩가루에 묻혀 만든 떡이 강아지떡.
 
일제때 곡식이 통제될 때 강아지를 준다는
명목으로 떡을 만들었다고.
사람도 못먹을 때인데?
 
 
 
 

교동이발관도 보였다

옛날에 왔을 때는 제법 넓은 길로 기억되는데-
 
 
 
 

황금들판을 달려

이미 수확한 논엔 초록색 새싹이 돋아났고.
 
내가면 황청리와 상산면 석모리를 연결하는
석모대교를 건너 석모도로.
2017년 개통된 다리.
 
배로 석모도를 건넜을 때는 주유소도 없고
기름차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말이다.
 
석모도는 외포리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섬. 인구 2천명.
 
교동도에서 차로 30분 거리.
교동도보다 면적, 인구가 적다.
 
 
 
 

3시 넘어 보문사 입구, 뜰안에 정원에서 점심

밴댕이무침에 돼지고기 요리.
 
 
 
 

그리고 이층, 전망 좋은 곳에서

공짜 커피 한잔.
 
 
 
 

멀리 보이는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낙가산(洛伽山, 267m) 눈썹바위 밑에 있는.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승려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와 함께 조각.
높이 9.2m.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
법회때 천명이 앉을 수 있다고,
 
석모도 최고봉, 상봉산(316m), 해명산(309m)
보다 낮지만 보문사 덕에 사람들이 많이 찾음.
 
낙가산은 서해 낙조 일번지.
 
 
 
 

황단심 무궁화?

평화전망대에선
백단심 무궁화를 보았는데.
 
두 무궁화꽃 모두 때깔이 고왔다.
 
 
 
 
 

보문사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마애불로 가는 길.
한적함이 얼마나 좋았던지.
 
 
 
 

용왕전을 지났고

삼산면 매음리에 있는 보문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3대 해수관음기도 도량중 하나.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와 함께)
 
635년(선덕여왕 4) 삼산면 어부가 그물을 던지니
22개 돌덩이가 걸렸다, 버려도 또 나왔고.
 
꿈에 노승이 나타나 명산에 돌덩이를
잘 봉안해줄 것을 당부하여
현재의 석실에 모셨다고.
 
 
 
 

이절의 주불전, 극락보전

고려초기 22존중 삼존불과 18나한은
보덕굴에 송자관음은 관음전에 봉안하고
낙가산 보문사라 했다고.
 
 
 
 

보문사 석실

635년(선덕여왕 4) 회정대사 건립.
1812년(순조 12) 다시 고쳐지은 석굴사원.
 
천연동굴을 이용했고 무지개모양의 문.
석가모니불을 비롯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고.
 
 
 
 

석굴안의 두 신자

 
 
 
 

석굴 앞 큰 바위 틈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 기념물로 지정됨.
나이는 7백세, 높이는 20m.
용이 용틀임하는 모양.
 
 
 
 

와불전

부처의 누워있는 모습.
2009년 천인대 바위에 새겨 조성했다고.
 
 
 
 

너비 13.5m, 높이 2m

 
 
 
 

동자승의 미소가 제일 좋다

 
 
 
 

해는 저물어 가고

 
 
 
 

석모도에서 쓸쓸한 외포항으로 나왔다

석모대교가 없었을 때는 붐볐던 항구.
외포항 수산물직판장도 돌아보고.
 
 
 
 

외포리 강화 함상공원

 
 
 
 

옹기종기 갈매기들

옛날부터 인연이 있었던 천서리횟집을 들렸다.
나이들은 사장은 골방에서 잠을 자고 있고,
미남의 젊은 아들이 나를 반겼다.
 
 
'이태 만에
강화 갯벌에
서본다
물결 가까이에서 날아올랐을 새의 발자국이
외롭게 찍혀
바다로 간다
 
다 지난 흔적을 물고 놓지 않는 갯벌!
 
붉은 석양이 그 발자국을 딛고 간다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
(신용목, 1974-, 강화도, 석양)
 
 
 
 

외포항 길 건너 돈대회센타에서

대하 버터구이.
 
이날 여행의 시발점, 중곡역으로 돌아와
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집에 오니 9시.

내가 속한 연안이씨의 본향, 연안과 연백평야를
돌아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실향민 생각에 짠했다.
 
흥구친구 덕에 즐거웠던 강화도 여행.
이날 12천보를 걸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