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낭폭포-화적연 트래킹(포천)

난해 2023. 12. 12. 13:27

올8월, 양떼목장에서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덤불과 돌은 모두 외롭고
수목들은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나의 생활이 아직도 밝던 때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 안개가 내리니
누구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가만히 격리하는
어둠을 모르는 사람은 
정녕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헤르만 헤세, 1877-1962, 안개 속에서)
 
 
 
 

12/9(토) 8:50분, 군자역에서 우리가 탄

버스가 떠날 때는 안개가 자욱.
 
친구들 하나 둘 떠나고
생로병사, 병 단계로 하나, 둘 진입.
우리 앞의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화사한 버스의 천장

미인이 모는 버스답다.
타본 버스의 여자기사 중 제일 미인.
 
대청봉대장이 이끄는 40-50 수도권 산악회,
이날은 포천 멍우리협곡 걷기.
비둘기낭 폭포에서 화적연까지, 9km.
 
아홉명 친구가 참여,
처음 있는 일.
 
이영선친구가 교외행사에 참여한 것도 처음.
뉴질랜드 오길수친구, 수원 전재혁친구도 참여.
 
강요한 것도 아닌데
코스가 마음에 들었나 보았다.
 
 
 
 

출발한지 한 시간 20분, 비둘기낭폭포 도착

포천고속도로 덕이 크다.
2026년이면 세종시까지 연결 예정.
 
 
 
 

이 폭포엔 흰 비둘기가 살았다 한다

 
 
 

기둥모양의 편마암 주상절리가 있고

하천 흐름에 의해 만들어진 하식동굴이 비둘기낭.
한탄강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하식동굴.
 
 
 

포천시 영북면 대회산리 비둘기낭폭포

왼쪽에 폭포가 흐른 흔적.
장마철에 와야 폭포를 볼 수 있겠지.
 
 
 

이날 우리가 걸어여할 길은 3번 비둘기낭폭포에서

6번 영북면, 자일리 소재 화적연까지 9km.
4번은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
 
 
 
 

하늘다리 입구에서

위에는 천병헌, 오길수친구
아래줄은 이영선, 류흥구, 전재혁, 소순영,
이재춘, 신영우친구.
 
9km내내 9명이 같이 걷기는 여려운 일.
 
 
 
 

40명이 넘는 우리 일행

9명은 제일 큰 그룹,
나이도 제일 많고.
 
 
 

2018. 4월에 완공된 보도현수교, 하늘다리를 건넜고

높이 50, 길이 200m.
 
전재혁, 신영우친구, 우리들과 여행하다 보니
어지러움증이 없어졌다.
 
 
 

다리에서 본 한탄강(漢灘江)

북한 평강군 장암산(1,052m) 남쪽계곡에서 발원,
평강, 철원, 포천, 연천군을 흘러 임진강에
합류하는 한강의 제2지류.
 
140km 길이중, 남한지역이 80km,
포천지역에서 40km를 흐른다.
 
한탄은 큰 강이라는 뜻.
6.25때 다리가 끊어져 후퇴하지 못한 사람들,
왕건에게 쫓긴 궁예가 한탄했던 강이었지만.
 
 
 

친구들과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인생을 뒤돌아보는 사색의 길인데
초장의 깔딱에 헐떡헐떡.
 
 
 
 

강을 오른쪽에 두고

겨울의 길이었지만 포근한 날씨로
을씨년스럽지 않았던 길.
 
 
'먼 산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제각기이고
통일이 없지만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면
달라지리라고
 
먼 산은 
애오라지 역사의 거물
우리 인간은
그 침묵에서 배워야 하리'
(천상병, 1930-1993, 먼 산)
 
 
 
 

두번째 고개를 넘어

어떻게 보면 우리는 편안한 70대.
 
 
'나는 70대
아들은 40대
어쩌면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
 
내가 힘이 부치는 일은
아들을 시키고
아들이 힘이 부치는 일은
내가 돕기도 하는
 
꿈꾸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야단칠 힘도 남아있는
어쩌면 지금이
우리 생애의 절정'
(유자효, 1947-, 父子)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있고(이재춘친구 사진)

돌이켜보면 우린 인생에서
수없는 고비를 넘어섰지.
 
 
 
 

낙엽을 밟으며

마음 편하게 인생의 길을
부담없이 걷는다.

 
 
 

길을 돌고 돌아

 
 
 

징검다리까지는 1.7km

화장실이 없다고 큰일이 날 것도 아니고.

 
 
 

목책길 그리고 겨울나무들

친구와 같이 걷는 길,
마음도 평안하고.
 
 
 
 

사색을 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도종환, 1955-, 처음 가는 길)
 
 
 
 

길은 강물따라 이어지고
 
 
 
'가는 곳 어디쯤일까
삶의 질곡 속에
때로는 알레그로
때로는 안단테로
여유롭게 연주하며
강물처럼 흐르고 싶다'
(김판출, 강물처럼)
 
 
 

단촐한 점심

앞섰던 일행들이 모두 뒤돌아 왔다.
자리를 잡으려 했더니 강바람이 너무 셌다고.
 
김밥 한줄에 따끈한 물.
 
점심후엔 우리친구들이 맨 앞장을 섰고.

 
 
 

하식동굴을 자주 볼 수 있고

홍수땐 하천의 물살이 엄청 쎄고
편마암은 각층이 서로 다른 광물로 구성되어
쉽게 해체되는 모양.
 
 
 

또 목책길이 나오고

 
 
 
 

돌길도 있고

 
지루할만한 하면 새로운 길이 또 나오고.
 
 
 

징검다리가 나왔다.
시간이 있으면 건너갔다 와도 좋으련만.
 
아직도 절반을 못 온셈.
 
 
 

각이 나고 둥근 돌이 드물다.
강의 상류에 속한다는 이야기.
 
 
 

잔잔한 강물이지만

보가 있으면 노래를 불렀고.
쏘가리도 살고 있을 텐데-
 
쏘가리회, 쏘가리 매운탕.
평창, 보은에서 잡아먹었던 큰 쏘가리 생각.
 
 
 
 

어데로 흐르느가

쉬임 없이 흐르는 강물.
 
 
 
 

뒤돌아보니 우리를 따르는 일행들이 점점이 보였고


'한 마리 뱀처럼
산 속으로 사라진 길
회색 장삼을 입은 수도승도
길과 함께 숲속으로 사라지고
저만 그들의 행방을 아노라
떠가는 구름이 벙글거리더라'
(최진연, 1953-2015, 산, 하나님의 병원)
 
 
 
 

도로 강으로 향하는 길

얼마나 멋진 길이냐.
 
이날은 내얼굴 표정이 무척 밝았던 모양.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이 나를 보더니
무엇이 그렇게 좋냐고?
 
이 좋은 길을 걷는데 왜 안좋겠냐고 답했지만
아홉친구가 모두 흡족했었던 트래킹,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멍우리 협곡

멍은 황금빛 털로 덮힌 수달,
을리는 을자처럼 흐르는 곡류.
 
멍우리는 수달이 살고있고
강물이 크게 굽이치며 흐르는 곳?
 
협곡이 험하여 넘어지면 멍우리가
진다하여 멍우리라 하기도 하고(소은맘)
 
멍하게 우둔하게 걷는 길이라도 좋다.
 
 
 

두번째 하늘다리, 멍우리교를 지나자니

흔들리는 느낌이 좋았고.
 
 
 
 

바로 밑은 가파른 절벽

 
 
 
 

잘 다듬어진 길이 나왔고

양지 바른 곳이라 파란 풀도 보였고.
 
 
 
 

다시 강가 길로

 
 
 
 

현무암 모난 돌과 움직임 없는 갈대

 
 
 
 

조그만 다리도 건넜고

 
 
 
 

구부러진 길도 돌아

 
 
 
 

목책에 달라붙은

애처러운 찔레나무 줄기.
 
 
 
 

한탄강 줄기는 넓어졌다, 좁아졌다

멍우리협곡은 가파랐고.
 
 
 
 

친구들아 쉬어가자,

또 언덕길이다.
 
 
 
 

뒤따라오는 대청봉대장과 우리 일행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자라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신석정, 1907-1974, 산으로 가는 마음)
 
 
 
 

제법 너른 밭과 농가

옛날에는 화전민?
 
 
 
 

또 하나의 하늘다리를 지났고

이름도 확인하지 못한
세번째 커다란 현수교.
 
 
 
 

또 한탄강으로 급강하

 
 
 
 

강물의 조화

곳곳에 하식동굴.
 
 
 
 

멋진 바위절벽도 지났고

길이 좀 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
 
 
 
 

또 목책길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진.
 
 
 
 

좁은 여울목 다음에

서서히 흐르는 한탄강.
 
 
 
 

쉬엄쉬엄 비경도 담고

 
 
 
 

한탄강은 곳곳에

하얀 모래사장도 만들고.
 
 
 
 

편마암의 특징을 보이는

겹겹의 바위들.
신기하기까지.
 
 
 
 

나무를 못살게 하는 가시박나무

북미원산 박과 한해살이 풀.
생태계 교란종.
가시 때문에 제거가 쉽지 않으며,
밀원식물이기도.
 
원래 박과식물의 접목용으로 들여왔다고.
 
 
 
 

두런두런 삼삼오오

 
 
 
 

운치있는 낙엽

 
포천은 인구 15만의 경기도 동북단에 있는 시.
국망봉(1,168m) 등 높은 산이 있고
포천천이 시 중앙을 흐르다 한탄강으로 유입.
 
구석기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
서기전 221년경 진한의 전신,
진국이 북방 경계.
 
 
 

은행낙엽을 밟고 잣나무 숲으로

 
475년 고구려에 복속되어 마흘군, 양골현.
통일신라때인 757년 견성군으로 개칭.
 
신라 하대에는 태봉국, 왕건 지지 기반.
고려초에는 포주.
조선초에는 영평현, 포천현.
 
1618년엔 영흥도호부였고
1914년에 포천군.
1954년에 완전 수복되었고, 2003년 포천시.
 
지석묘, 반월성지, 고모리성지가 있다.
이항복선생묘가 있고.
 
 
 
 

바늘잎 낙엽도 좋았고

좌측은 새롭게 조성된 넓은 공원.
 
 
 
 

부모님이 포항출신인 여인과

낙엽을 밟으며.
포항에 살고 있는 차건동, 김윤동, 최형락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화적연으로 휘돌아가는

긴 절벽을 오르내리는 길도 좋았다.
 
 
 
 

드디어 목적지 화적연(禾積淵)

강이 연못을 이루는 곳.
좌측 바위가 볏단을 쌓아놓은 것 같다
하여 화적연.
 
영평팔경중 으뜸.
조선초에 포천지역은  영평현과 포천현으로 
나뉘어 있었고, 많은 선비들이 금강산 유람시
포천지역을 지나며 한탄강 명승에 감탄했다.
 
함경도로 가는 경흥로가
포천지역을 지나갔고.
 
 
 
 

이곳에서 사진 한 장

영의정을 지낸 허목(1596-1682)은 
화적연기를 남겼고,
 
겸재 정선(1676-1759)은 금강산을 가는 길에
명승을 그린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에
화적연을 남겼다.
 
최익현(1894-1907)은 볏가리 바위를 용에
비유하는 시를 썼고.
 
'신룡이 돌이 되어 깊은 못에 들어가니
쌓인 볏단 높아 별천지를 이루었네'
 
 
 
 

화적연은 기우제 터

나라에서 정승을 보내 제례를 지냈던 곳.
국행 기우제중 12번째로 마지막 기우제를
이곳에서 올렸다고.
 
 
 
 

화적연 기우제문

오른쪽은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
 
옛날 한 늙은 농부가 화적연에서 3년 계속된
가뭄을 한탄하니 용이 나와 하늘로 올랐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나.
 
이때부터 화적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08이 비둘기낭폭포,

06이 화적연.
지도상으론 우리가 걸은 거리는
1cm가 될까.
 
 
 
 

차량에 붙어있는 먼지털이

진화하는 관광버스.
 
 
 
 

버스로 인근에 있는

샛강가든으로 이동, 민물매운탕에 맥주, 소주.
20천보를 걸은 후인지라 맛이 없을리 없지.
술도 달고.
 
오대박님의 소주 드는 모습도
분위기를 돋구었고.
 
참게 한 마리 추가에 오 천원.
양식이 안되었던 그시절엔 한 마리, 만 원.
 
 
 
 

올 때와 마찬가지로 1시간 20분만에 귀경

헤어지기 아쉬워 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정말 좋았던 트래킹,
날씨도 좋았고.
이코스가 개방된지도 얼마 안되어
더욱 좋았고
 
무엇보다 자리를 마련한
40-50 수도권산악회, 대청봉대장님과
이경옥총무님께 감사.
 
열심히 참여해준 친구들에게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