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까치복 여행
지리산 계곡탐방이 올해의 마지막 여행이려 했더니, 떡집에서 명퇴한 정성익군이 가만 놓아두지를 않았다. 12월 9일 안양거사 백학천군의 화물차로, 전재혁대장의 지휘 하에 홍성복 군을 모시고 1박 2일의 복(swell fish) 여행을 떠났다. 2차 약수여행 때 하조ㅅ대 정지형군 어부인께서 복 초대를 하겠다는 약속을 앞당긴 결과이지만, 재혁군이 어부인을 노래방에서 잘 모셨고 설거지를 잘한 결과였다. 물론 정성익군의 거간 역할도 경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예정대로 10시 넘어 인덕원을 출발하여 영동 고속도로 새말IC를 빠져나와,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 곱빼기와 소주 그리고 돼지고기를 시켰다. 젊음이 되살아나는지 음식이 남지를 않았다. 태기산, 운무산을 옆으로 하고, 홍천 서석의 용오름 계곡을 들어서서 서봉사(瑞峰寺)에서 차를 내렸다. 계곡의 소(沼)는 하도 맑아 초록색이었고, 지난여름 먹다 남은 소주병들이 그대로 굴러다녔다. 다시 길을 떠나 을수계곡 칡소를 들려 구룡령(1063미터)에서 커피 한잔 하니,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하도 따뜻한 겨울이 되다보니 서울에선 얼음 구경 못하였는데, 오는 길 음지 곳곳에 잔설이 있고, 얼음길이 미끄러웠다. 정성익군 매끄러운 운전 솜씨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길이었다.
오후 5시 하조대 지형군의 별장에 도착하니, 차린 상이 그득하였다. 복 회, 오징어, 도미 회 등. 백세주 병과 두꺼비 병의 주둥이를 맞대어 50세주를 만들었다. 실험 결과, 밑의 병을 백세주로 하면, 대류 현상이 안 일어나 술이 섞이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달콤한 맛의 두터운 복 회 실컷 먹어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 하면서 권하거니 마시거니 하니, 술은 오르고, 술이 오르니 복 지리, 복 매운탕이 올라오고, 드디어 복 초밥이 올라왔다. 술들이 취하니 서울에 전화들을 걸었다. “우리, 복 회 안 먹었다. 우리, 복 초밥 안 먹었다.”
지형군 부인은 지난해 그리고 올 겨울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닭 값은 떨어지지, 사료대로 한 달에 수천만 원 까먹지, 부채는 목까지 찼지. 서방님은 고집피우지----” 그때 농장을 찾았던 우리 친구들의 말이 고마웠다고 했다. 독이 되었던 조류독감이 올해는 닭과 계란 값을 올려, 지형군 식구를 살리었다. 그런데 식후 고.스톱을 하는 도중 우리의 성복군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복이 복을 과식한 결과라고 본인은 말했다. 복은 공격을 받을 때나 흥분했을 때 배를 불룩하게 하는데, 성복군은 큰 코를 벌름벌름한다.
2. 하륜, 조준대감이 노닐던 하조대, 그리고 귀경길
이튿날 아침, 뜨는 해를 기대하며 지형군의 차를 타고 하조대로 향하였다. 먼저 어항을 들렸다. 해수욕장과는 상당히 떨어진 거리였다. 이미 두 번이나 방문하였지만 모래사장에서만 어정거렸다는 얘기다. 어항은 아침 들어온 물고기들을 시멘트 바닥에 펴 놓으면서, 경매 준비하느라 떠들썩했다. 어린이만한 대구, 향수를 일으키는 도루묵, 흐무러지는 물 메기 등이 가득했다. 경매 전에, 작은 대구 한 자배기를 삼만 오천 원에 사서 여섯 명이 나누었는데 서너 마리씩 돌아갔다. 어항은 고기 냄새보다는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 차있었다. 다음 개국공신 두 대감이 명퇴 후 청유(淸遊)하던 기암절벽과 노송들을 즐기려니, 저 밑 바다로 낙하하여 자연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다는 언제나 뒤척이고 한숨짓고 몸부림친다.
상승과 추락, 승리와 패배, 욕망과 좌절,
그 두 사이를 일상의 우리들처럼 반복한다.
밤마다 고민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바다 -손광성의 바다-
11시 헤어진 후 얼마 안 되어, 양양으로 막국수 먹으러 오라고 하는 지형군의 전화가 걸려왔다. 싱거운 녀석인지, 찐한 녀석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하여튼 우리는 복 대접받은 답례로 이번 달 14일부터 나흘간 지형군의 병아리 입식을 돕기로 했다.
진부에서 담배사려고 내렸더니, 앞 음식점 이름이 ‘고추장에 빠진 돼지’였다. 지형군의 냉장고에 남기고 온 오삼 불고기(정성익군 부인 작품)를 가져올 것을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옛날 술이 솟는 샘이 있었다는 영월의 주천으로 들어서서, 판운2리에 차를 세우고, 흔들거리는 섶 다리를 건너보았다. 세 아줌씨가 벌써 나물 캐는데 심심한 눈치이었다. ‘그냥 가면 섭하지요, 섭천 군고구마’집을 들렸더니, 주말이 아니어서인지 문이 닫혔다. 다시 길을 떠나, 부드러운 장충약수를 마시고, 수주면에 있는 사자산 법흥사를 들려 적멸보궁을 찾았다. 전국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다섯 절중의 하나이다. 영월에서 마지막으로 무릉면(수주면) 도원리에 있는 유선정을 들려 절경과 마애여래좌상의 미소를 음미했다.
원주 신림면의 황둔 막국수 집에서 늦은 식사를 하였는데, 모두들 새말 보다 맛이 낫다고 했다. 지난번 치악산 산행도중 이곳에 놓고 간 모자를 찾은 전재혁대장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배탈 난 성복군은 점심도 건너뛰면서도 아무소리 없이 여행 끝마무리를 하였는데, 과연 우리의 성보기였다. 6시 날이 어둑해져 학천군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문수, 동원, 종호군 등 술꾼이 대기하고 있었다.
3. 체험, 삶의 현장, 한신 부화장
복 여행에서 돌아 온지 6일후인 16일 새벽, 핸드폰 소리에 잠이 깼다. “이씨, 나 정가요”성익군의 전화였다. 품팔이 나가는 마당에 ‘이씨’라는 말이 거슬리다니. 9시에 농장에 도착하기로 약속했는데, 그나마 성익군이 깨워서, 민경희군을 봉화산역에서 태우고 차를 달려, 이천 백사의 정지형군의 농장에 도착했을 때는 10시 가까이 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성익, 재혁군과 함께 부발농장으로 이동하였다. 두 친구는 이틀 전부터 꼬박 나흘을 지형군의 침대를 점유하면서 까지 삶의 현장을 체험했다. 혹시 모른다, 별도의 품값을 받았는지.
먼저 성익군과 함께 계사 밖에 보온 비닐 막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선임 근로자가 시범을 보이는데, 어디 가서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 민백수, 이백수는 성익군이 부러워졌다. 콤프렛셔를 동원하여, 권총 스테이플러를 쏘는데, 처음은 힘만 들어갔다. 성익군 의기가 양양하여 말로만 일하고, “조수, 조수!”하며 불러대기 일수였다. 어영부영하니 점심시간이다. 두꺼운 돼지고기와 입 맛 돋구는 시골김치, 그리고 소주 한 잔.
오후는 작업대장 재혁군과 함께 큰 계사 내의 보온 막을 비닐로 설치하는 일이었다. 병아리 때는 면적을 작게 차지하기 때문에 막을 설치하였다가 점점 그 면적을 늘여주는 모양이다. 재혁군 역시 입만으로 일한다. 천정으로부터 비닐을 내리는데, 수평이 되니 안 되니, 오른 쪽을 더 내려야 된다느니, 어쩌구 저쩌구. 같이 일하는 친구 하나가 중국 한족이었다. 잘생긴데다 표준 중국어를 구사한다. 사다리를 둘이 붙잡고는 중국어 실습을 하였다. 얼마 안 되어 성익군, “커피 가져오라, 호빵 쪄오라” 주문이 많다. 그러나 저러나, 겨울 해가 왜 이렇게 긴지, 시간이 통 안 갔다. 어둑해져 우리는 백사농장으로 귀대하여, 지형군 내외와 조촐한 저녁을 한 후, 둘은 남고 경희군과 나는 귀경길에 올랐다.
다음날 병아리 도착시간에 맞추어 10시 넘어 부발 농장에 도착하니, 이어 학천군과 성복군이 새 일꾼으로 뒤따라 당도했다. 병아리 입식 전에 사전 준비가 미리 되어 있어야 했는데, 꾀가 나서 그런지, 늙어서 그런지, 지쳐서 그런지, 늙은 농부 지형은 작업지시도 맥이 빠졌다. 병아리는 도착했는데, 물 먹이 관을 설치하고, 겨를 피고 했다. 점심 식사 후 상자에서 병아리 한 마리 한 마리 꺼내어 숫자를 세어 가면서, 병아리 눈에 백신 액을 떨어 뜨린 후 사육장에 풀어놓았다. 온 동네가 병아리로 채워져 갔다. 병아리를 손으로 잡으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놈이 있고, 찬 놈이 있었다. 백신을 떨어 뜨리면, 눈을 뜨고 있는 놈, 죽어도 눈을 안 뜨는 놈, 여러 가지이었다. “뿅 뿅 뿅----” 병아리 세상, 누구라도 동심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혼자 천 마리 이상 예방접종을 했다. 손이 파랗게 백신액으로 물들여져 갔다.
저녁 망년회 약속도 있고 해서, 5시쯤 경희군과 농장을 떠났는데, 작업 종결 전이어서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역시 농장일은 많고 끝이 없고, 지형군 내외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얼마 후 경희군의 부인을 만났는데, 이틀 농장 일 후 파김치되어 돌아온 경희군이 얼마나 불쌍해 보였던지 나를 원망하는 눈치였다. 우리 집사람은 무관심이었는데, 경희군은 행복한 친구이다. 까치복과 병아리행사에 참여한 동지들, 그리고 대목회 친구들, 을유년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시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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