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그리운 섬,굴업도(2016.10.11)

난해 2017. 8. 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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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을 떠날 때

어울리기 시작한 돼지들의 모임,

10/11(화) 9시, 고속훼리를 타고

인천항을 떠났다.

 

그러고보니 칠순여행이 되고 말았다.

 

덕적도에 10시 넘어 도착,

섬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고, 나래호를 타고는

11시 20분 굴업도로 떠났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색이 눈에 뜨이고.

 

 

착하기로 소문난 우리의 나회장,

어느새 노란 여인과 붙었다.

 

 

여인의 눈엔 파도가 일고,

우리의 마음도 출렁인다.

 

우리는 갑판에 깔개를 깔고

소주에 오징어를 씹어댔다.

 

 

 떠난지 한시간 안되어

그리운 섬, 굴업도가 나타나고.

 

완쪽이 목기미해변,

가운데가 연평산,

오른쪽이 덕물산 줄기.

 

해안선 길이가 12키로,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3키로

지점에 위치한 섬.

 

 

그리고 이어지는 섬들.

바다 위는 태양이 작렬하고.

 

오른쪽이 백아도.

 

 

이섬을 드나들려면주민들의

경운기나 타이탄 신세를 져야 한다.

 

우리는 배에서 내려

전이장의 차로 고씨민박에 짐을 부렸다.

 

 

그리고 전이장댁에서 점심들고

고개를 넘어 목기미해변을 찾았다.

 

숙소는 고씨민박으로 정하고,

식사는 부인의 음식솜씨가 알려진

전이장댁에서 했다.

 

손님은 많은데나, 이웃집에 손해를 끼칠까봐

이장부인 난처해 했었다.

 

 

반대편의 바닷가

색이 화려했다.

바다의 그리움도 더했고.

 

 

외롭게 죽어나간 복어

한 마리

 

 

그리고 외로운 길손

 

 

고깃배도 외로히 떠있고.

 

 

우리는 굴업도의

서어나무 숲을 지나

 

그들은 얼마나 바람에 시달리는지

몸이 배배 꼬였다.

 

 

우리의 박장로가 낑낑대며

험한 비탈길을 올랐다.

 

몇년전 아들을 잃고도

신앙생활로 잘 버티고 있고,

사진에 푹 빠져 여행을 즐기고 있다.

 

 

연평산(128m) 건너의 또 하나의 바다

 

 

역전의 돼지띠 용사들,

모두 평생직장에서 30년 이상을 보낸.

 

이곳에서 연평도가 보인다고

연.평.산.

 

산의 형세가 사마귀처럼 생겼다고

단.개.비.여.

 

 

연평산에서 본 굴업도

일하는 사람의 모양이라지만,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섬이다.

 

 

 

 

꼬끼리바위 주변은 조용했다.

일전 Virtuosi챔벌오키스트라

단원 몇이 연주를 했던 곳.

 

 

이어 우리는 덕물산 정상(138.5m)에 올랐다.

굴업도에서 제일 높은 곳.

덕물도(덕적도)가 보인다해서 덕물산.

 

 

중간 봉우리에선

우리대원 세사람이 손짓하고.

 

 

다시 합치니, 한사람이 없었다.

 

매사에 너무 여유가 많은 박선수도 있는데.

박선수는 상처의 아픔을 딛고,

요즈음도 직업전선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이곳서 내려다본 목기미해변

 

 

또 하루가 져간다.

 

 

합천촌놈 허박사, 촌티를 낸다.

그는 노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

 

자연의 동식물에 대해 도통하고

백두대간을 달리는 등산애호가.

 

  

마침 낚시하고 돌아오는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타이탄 뒤에 올라타,

우리의 숙소 고씨민박으로 돌아왔다.

 

이날은 물때가 좋은 때라고.

 

 

6월중순 이섬을 찾았을 때도

이집에서 신세를 졌다.

 

 

지붕 위에는 늙은 호박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고.

 

 

깔끔한 전이장네 저녁밥상.

이날의 특식은 한접씨 5만원, 홍어회

 

맛있는 식사후

밤낚시 떠나려고 부인 눈치보며

 설것이 하는 전이장을 도와,

빈접시들을 날랐다.

 

식후 허전하다는 나회장의 뜻을 좇아

숙소에서 2차.

 

그리고 동네 앞 백사장에 나가니

반달은 배가 많이 불렀고,

파도들의 외침만이  쓸쓸히 들렸다.

 

 

다음날 일출 보려고

마을 앞 고개를 오르다가

오른편 오솔길로 빠져

선착장으로 갔더니

 

하늘은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이날의 해뜨는 시각은 6시 38분.

 

어제는 박선수가 허리가 아프다하여,

또 오늘은 내가 그러하다 하여

임박사가 안마서비스를 하였다.

 

그는 침뜸과 안마가 수준급이라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마나님이 문제가 있어 시작했지만

이젠 상당한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가 하루전 배에서 내린 선착장

 

 

드디어 10/12일의 해가 떴다.

앞에 보이는 섬은 문갑도.

 

 

햇살에 홍조를 띤 목기미해변.

 

 전이장댁에서 조반을 들고

다시 트래킹을 나섰다.

 

 

여섯사내, 개머리언덕 오르기전

 마을앞 해수욕장에서 폼을 잡았다.

 

맨앞쪽 새까만 세기둥은 선단여.

굴업도 남쪽 백아도 앞에 위치하며

덕적 4경의 하나이다.

 

백아도에는 늙은 부부와 남매가 살았다.

부모 사후에 마귀할멈이 여동생을 납치하고.

 

장성한 오빠가 이름 모를 섬의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보니 이들은 남매.

 

이들이 남매사이를 부인하자,

노한 하늘은 마귀할멈, 남매를

번개로 죽게하자,

세개의 기둥이 솟았다고.

 

 

오른쪽은 굴업도의 유일한

새끼섬, 토끼섬.

 

물이 빠지면 본섬과 연결된다.

이섬의 해식와(노치)는 연구대상.

 

침식작용으로 해안절벽 아래부분이

좁고 깊게 120m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개머리언덕을 올랐다.

민둥산 오르듯이.

 

 

억새가 정취를 더했다.

 

 

6월엔 노루귀잎 닮았던 잎은 떨어지고

열매만 남은 큰천남성.

열매는 빨갛게 익고, 독성을 갖는다.

 

 

금빛물결, 수크령

섬바람에 시달려 키가 작다.

 

 

개머리언덕의 끝엔

젊은이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사슴들은 사람을 피해 변방으로 겉돈다.

 

 

되돌아 오는 길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은 안다

섬이 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것인지

떠나간 사람을 기다려본 사람은

백사장에 모래알이 왜 그리 부드러운지 안다.

섬은 그리움의 모래알

거기에서 울어본 사람은 바다가 우주의

작은 물방울이라는 것을 안다.

 

바다갈매기는 떠나간 사람의

잡을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원재훈의 '섬에서 울다')

 

 

개머리언덕에서 내려오는 길,

우리는 바닷가로 내려오지 않고

동네 뒤의 능선으로 올랐더니,

거기에도 서어나무군락.

 

 

보리수나무 열매를 따먹었는데,

열매는 바람에 시달려 너무 작았다.

무척 달콤했지만,

 

 

그림같은 동네, 7가구가 산다.

모두 민박을 하여 생계를 꾸려나가며,

6가구가 타이탄을 갖고 있다.

 

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언덕을 넘어 선착장에

갔으나 배가 20분 이상 늦게 도착했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여행객들의 대부분은 동호인클럽이나

여행사를 통해 이곳에 온다.

복잡한 배, 숙소예약을 피해.

 

우리와 같이한 많은 사람은

독신자여행모임의 회원이었다.

 

나도 독신자가 되어볼까?

 

 

덕적도의 능동자갈마당.

 

우리는 나래호로 다시 덕적도로 돌아와,

어제 예약한 바지락칼국수집에서

준비된 광어물회와 칼국수를 먹고

바로 덕적도 일주를 했다.

 

부지런히 길을 서둘렀지만

배가 늦어졌고,

인천가는 뱃시간이 30분 빨라져

수박겉핥기식이 되고말았다.

 

 

서포리해안에서 굴업도가 보였다.

 

두번 왔어도 다시 가고싶은 섬.

 

덕적도는 이곳에서 소정방이 김유신과

만나 백제를 치기로 한 곳이라는 둥

 

옛부터 알려진 큰 섬이며

이곳은 일찍부터 주민들이 머리를 깨우쳐

이곳출신 명사들이 많다고.

 

 

덕적도에서 4시배를 타고 인천에 내려

그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칠순여행인데.

 

인천 신포시장에서

민어회, 민어매운탕으로 멋졌던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회장, 특히 송총무에게 감사를 드리고,

못나온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

어찌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