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늦가을의 남쪽여행(2016.11.4)

난해 2017. 8. 2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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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실이가 나라를 끓일 때

하동의 안대감에게서 초청이 왔다.

 

작년 가을 미횡단여행 이후

잘 있는지 궁금도 하고.

11/4(금)일 8시 남부터미널을 떠났다.

 

구례, 화개, 악양을 거쳐가자니

정다운 강, 섬진강물이 여전히 반짝였다.

 

 

그리운 친구만나

송담추어탕에서 걸죽한 추어탕 먹고

하동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삼성궁으로.

 

삼성궁은 1983년, 10만평의 땅에

한풀선사 강민주씨가 선도(仙道)

수행자들과 공들여 지었다.

 

삼성은 고조선건국설화의 환인, 환웅, 단군.

배달민족의 혼을 일으키려고,

배달민족의 성전을 건립했다.

 

 

청학동은 최치원의 은거지였고

푸른 학들이 노닐던 곳.

 

 

이들이 만든 인공호수에는

오후의 햇빛이 반짝였다.

 

 

친근감을 주는 돌조각

 

 

얼굴모형

 

 

건국전 안에는 삼성을 모셨다.

 

 

단군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께서

아들 환웅을 이세상에 내려보낼 때

천부인 세개를 주었는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리라는

홍익인간이화세계(弘益人間理化世界)의

뜻이 담겨져 있었다.

 

 

벽의 여러가지 문양이 보기좋다.

 

 

장독대도 늦가을의 냄새를 풍기고.

 

 

한바퀴 도는라고 수고했다고,

부침개에 이곳에서 담근 쌀막걸리

한잔.

 

 

이웃에 있는 서당마을로 가니

감나무 한 그루 호젓하다.

 

 

친구는 훈장할아버지를 불러내

감식초 한병을 샀다.

 

 

하동읍으로 돌아오는 길,

하동호도 돌아보고.

 

 

우리집 오리에서

콩나물을 겻들인 오리고기 먹고

브람스(Brahms)에서 커피 한 잔씩.

 

그림도 있고 클라식도 있는

오래된 카페였다.

 

 

그리고 읍의 뒷동산을 넘어

섬진강이 흐르는 하동명물,

송림의 산책길을 한 시간 넘게 걸었다.

 

 

순실이 때문에 잠 설치고

다음날 아침, 나 홀로

안개 자욱한 산보길을 걸었다.

 

 

재첩을 잡는 배가

섬진강 철교 밑을 돌고 돌았다.

 

 

소나무들도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산보에서 돌아와 하동의 맛집,

여여식당에서 재첩국 먹고,

광양, 순천, 보성, 장흥을 거쳐

강진으로 달렸다.

 

대감이 싸온 발효된 달걀도 좋았지만,

무공해로 기른 뉴질란드 사과,

엔비(envy)는 부사가 시새움할만큼

맛도 좋고 향도 있었다.

 

 

강진의 탐진강하구에서의 갈대축제는

이미 끝났지만

 

 

갈대는 건재했다.

탐진강은 장흥 국사봉에서 발원,

장흥 강진 52키로를 달려

이곳에서 남해로 흘러든다.

 

탐진은 강진의 옛지명.

강진은 옛날 탐라 때부터 제주와의 통로.

 

 

바닷가라 바람은 셌다.

다리를 건너다 한장.

 

 

강진맛집 해태식당에서

한상 받았다.

다행이도 예약을 할 수가 있어서.

 

 

식후 읍내에 있는 김영랑생가로.

영랑(1903-1950)은 이집에서 45년 살았고

49년 공보부 출판국장이었는데,

9.28수복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오래된 동백나무와 대나무숲

그리고 봄이면 모란이 어우러지는 집.

 

 

우리는 강진만 8개 섬 중,

유일하게 30여명 사람이 살고있는

가우도로 달렸다.

 

 

출렁이지 않는 출렁다리를 건너

 

 

가우도 청자타워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말없는 바다

 

 

청자타워에서 짚트랙으로 하강하는 여자 둘.

 

1인당 25천원, 연령제한 없고.

두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육지로 나와, 번잡한 마량포구를 지나고

고금도로  연결되는 다리를 건너

고금도(완도소속) 전망대에 도착하여,

마량포구를 보았다.

 

마량은 강진의 아름다운 항구이다.

임진왜란 요충지였고,

탐라의 사신과 말들이 쉬어가던 곳.

 

강진의 청자가 이곳에서 배편으로

개성으로 운송되었었다.

 

 

고금도는 5천명이 넘게 사는 큰 섬.

 유자, 김, 흑염소, 굴 등이 많이 난다.

 

선사시대 고인돌이 있고, 이순신유적지이다.

 

 

우리는 또 다리를 건너

완도의 약산도로 갔다.

 

약산도는 2.5천명이 살고

희귀약초, 흑염소가 많으며

김, 미역, 다시마 등의 양식을 한다.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회귀하는 길,

가우도 못미쳐 고바우전망대가 있는

분홍나루카페에서 커피 한잔.

 

이곳은 강진군 대구면.

장흥에는 부산면이 있다.

 

 

전망대에서 본 오후의 바다.

 

 

 

마량에서 회를 먹는니 하다,

결국 광양에서 하동으로 진입하여

섬진강포구에서 생선구이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7시에 기상,

하동시장을 기웃거리다,

우정식당에서 소고기국과 명태지리.

하동에서 제일 맛없는 집.

 

 

마지막날 첫 일정은 피아골 등산.

임걸령까지는 가야겠지만

일정상 삼홍소까지로 했다.

 

오르기 전에 800미터 높이에 있는

농평에 들려 산닭백숙을 예약.

 

 

단풍은 별로였다.

철도 조금 지났고.

 

피아골은 피밭골이 변해서 된 말.

빨치산아지트가 있어 피에 물들었던

 골짜기라고 하기도 했지만.

 

구례 토지면에 속하는 피아골은

반야봉에서 발원하는 연곡천 계곡이다.

임진왜란, 여순반란, 6.25 등 큰 난 때마다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단풍, 계곡물, 술잔이 홍색이라는

삼홍소에서 사과, 빵으로 간식을 하자니.

젊은 친구 하나가

우리 넷의 다정한 모습이 좋다며

맥주를 권했다.

 

내려오는 길, 차 한대가 내 발 옆을 스쳤다.

스마트폰으로 차번호를 찍으니,

운전하던 여자, 미안해 하는데

한 경상도사내 내리더니

뭐 그런일로 그러냐고?

 

남편이었으면 같이 사과할텐데.

폼잡는 것을 보아하니-

 

 

 다시 차를 타고 연곡사를 지나

당치 비탈길을 올라

농평에서 산닭백숙을 들었다.

 

명이나물에 싸서 먹는 쫄깃쫄깃한 그 맛.

하동대감 소주에 취하기 시작했다.

 

농평(弄坪)은 노호농골(老狐弄骨) 명당

옆에 있는 평평한 곳이라는 뜻.

그러고 보니 산꼭대기의 꽤 너른 땅이다.

 

 

다시 비탈길을 내려와

거꾸로 연곡사를 가려니

공원직원들이 차를 못가게 했다.

일요일이니 얼마나 차가 많았던지.

 

하동대감 누이가 위에 산다며

기어이 연곡사로 차를 몰게했다.

 

연곡사는 신라때 창건한 유서깊은 절로

국보 보물이 많은 절이지만,

고즈넉함은 없는 통상의 절이었다.

 

조선말기 수백명의 의병이 싸운 곳으로

의병장 고광순의 순절비가 있다.

 

 

이어 화개장터에 들렸는데

마침 찐빵집을 하는 안대감 후배를 만나

배부른데도 빵을 먹을 수 밖에.

 

 

우리는 쌍계사계곡을 오르니

피아골과는 달리 호젓해 좋았다.

 

삼거리에서 벽소령가는 길로 달려

차길의 끝 의신마을까지 갔다가,

다시 악양면 평사리로 향했다.

 

 

최참판댁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동네 뒷산을 돌아갔는데

언덕 위에서 보니 섬진강은 말이 없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의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하동 악양면 평사리 들판

 

 

박경리(1926-2008) 기념관

 

 

최참판댁.

최참판이 나무 아래 앉아 있다.

 

토지는 한 집안의 몰락과 재기라기 보다는

동학혁명에서 근세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근대사이다.

 

우리는 하동 안대감집 앞에서

친구와 이별하고,

하동터미널 앞 국수나무에서

국수 한 그릇씩 하고는

7시차로 상경.

 

12시 가까이 서울에 도착,

택시타고 귀가하니, 다음날이 되었다.

 

 

3일간의 빡빡한 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안규철친구의 환대에 감사하고,

동행했던 손재완, 전재혁친구에게

감사한다,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을

남기게 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