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콜로라도를 거슬러 올라7(아치스)

난해 2017. 8. 20. 19:29

 

7.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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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캐니언에서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까지는 430키로 미터, 5시간소요.

산길이라기보다는 평탄한 길이었다.

 

 

가는 길에는 목장의 소떼도 보이고,

나무들에 둘러싼 유타의 전형적인 농가와

초지도 보였다. 초지에 둥그런 줄이 난 것은

이동식 스프링클러가 낸 자국들.

농가 옆에는 보통 나무 몇 그루가 서있다.

 

우리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달려, 그린 강

(Green River)지역의 모텔에 자리를 폈고,

저녁은 근처에 있는 KFC에서 닭요리.

오랜만에 느긋하게 샤워도 했고.

 

 

아침에  버짓(Budget)모텔 주위를 한 바퀴 도니,

거리 한모퉁이에서 총잡이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모텔의 간판 밑에는 아침은 공짜(Free Breakfast)'

라는 작은 간판도 달려 있었다.

그래서 모텔이름이 버짓인 모양이다.

 

여행 중에 아침식사가 제공되었던

유일한 모텔. 오랜만에 샤워를 해서 좋았지만,

카우보이모자를 쓴 사장님은 꽤 잔소리가 많았다.

 

말라비틀어진 빵에 버터와 잼을 바르고,

우유 한 잔에 콘 후레이크를 타서 먹었는데,

한 숟가락으로 여기저기 쑤시지 말고 음식그릇

옆에 있는 숟가락들을 각기 사용하라고

잔소리 하더니,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해도

못 알아듣는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치스를 향해 출발하니 그린 강이 자주 스쳐갔다.

 

그린 강은 1,175키로 미터나 되며,

와이오밍 주 윈드리버산맥에서 발원하여

유타 주 남동부에 있는 캐니언랜즈에서

콜로라도 강의 본류와 합류한다.

 

그린 강은 본류와 함께 콜로라도 강의

2대 원류를 구성하는 길고 긴 강.

 

 

1014일 아치스 국립공원에 진입했다.

 

유타주 모압(Moab)에는 아치스,

캐니언랜즈가 있고, 이 작은 도시는 지프로

암벽타기, 산악 오토바이, MTB, 콜로라도 강

급류타기 등 어드벤처 스포츠의 메카이다.

모압 역시 모르몬의 도시이며,

따라서 이곳에서는 독한 술은 팔지 않는다.

 

 

아치스는 3억 년 전 바다가 융기해서 밑에 있던

모래바닥이 올라 온 사암층.

1억년 넘게 침식된 사암 아치들이 즐비하다.

이 아치들은 광활한 공원에 여기저기 흩어져 

이들을 찾아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공원의 면적은 브라이스캐니언의 두 배가 넘지만,

자이온의 절반 정도인 309제곱키로 미터.

콜로라도 대 고원 위에 놓여있다.

 

모래바닥의 소금성분이 바위를 부식시켜

연어빛깔, 담황색을 띠우고 있고,

여름에는 40도까지 오르지만

겨울은 영하 10도 안팎이다.

일만년 전부터 이곳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곳 바위에는 복잡한 사연이 쓰여진 것 같았다.

 

시인이며 자연주의자였던 헨리 소로아는

돌로 된 최고의 작품은 구리나 철로 된

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너그러운 용인에 의한 것이라고 했.

 

 

뉴욕 고층건물을 연상시키는 파크 애비뉴 포인트

(Park Avenue Point),

 

 

멀리 라살산맥이 보이는 코트하우스타워

뷰포인트(Court House Tower Viewpoint)

두루 둘러보았는데,

 

 

오른쪽에 서있는 균형을 이룬 바위

(Balanced Rock)는 왠지 균형이 맞아

보이지 않고 불안해 보였다.

 

 

마침 근처 바위에서는 젊은이들이

아슬아슬하게 바위를 타고 있어

관광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고.

 

 

 

이어 윈도우 트레일을 걷기 시작하여

10분 정도 언덕길을 올라서,

도자기 창문(Pothole)을 아래에서 바로 위로

쳐다보았더니 아름다운 황금색 아치의

속살이 눈부셨다. 크기도 어마어마했지만.

자연의 풍화작용은 대단하다.

올라온 바다 밑 사암층에서 큰 아치만을 남겨놓았으니.

  

 

항아리를 옆으로 누인 모양의 도자기

창문(Pothole)은 왼쪽 바위의 주황색과

하늘의 파란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도자기 속 친구는 양손을 번쩍 올리고 

환호의 몸짓을 보였다.

 

사진에서는 타인을 들여다보는 창문과

내 모양을 비춰보는 거울이 중요하다는데,

도자기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창문이었다.

 

 

아치의 오른쪽, 골리앗의 팔뚝과 같이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사람은 더욱 왜소해 보였고.

 

 

터릿(Turret, 작은 탑, 망루의 뜻) 아치로 가는

길에는 물개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고,

 

 

터릿(Turret)아치는 보는 각도에 따라

창문의 개수도 모양도 틀렸다.

 

 

창문이 두 개 있는 아치는 흉측했고

앞에는 죽은 시다(Cedar)나무가 뒹굴고 있었다.

 

 

이중 아치(Double Arches)의 모양도 볼만 했다.

아치스의 하늘은 어쩌면 그렇게 파란지.

    

중국의 영향으로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든

우리나라, 옛날의 우리 가을하늘도 저랬는데.

 

 

차로 되돌아가는 길 숲 속에는 솜꼬리토끼

한 마리가 숨어 있었다.

토끼는 시다(Cedar)나무의 열매나 잎을 먹는지,

이들 나무가 번식하는데 큰 공로자로 되어 있다.

 

겁을 먹고 있는 토끼는 감정을 갖고 있을까?

동물들은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슬렘이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것과 같다.

코요테가 달을 보고 울부짖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

돌고래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면 단세포동물이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에드워드 애비의 생각이.

 

 

차 속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 후,

우리는 공원의 북쪽에 있는 악마의 정원

(Devil's Garden)에서 시작하는

3시간짜리 트래킹에 나섰다.

지팡이를 짚고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아치스공원하면 에드워드 애비(Edward Abbey,

1927-1989)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신문기자, 사회복지사, 바텐더, 작가,

애리조나대 교수,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경력을

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다.

 

대자연을 일터로 삶의 터전으로 살다,

자연을 사랑하는 병에 빠진 사나이, 애비.

그는 아치스를 발가벗은 나를 맡길 낙원이라

표현했으며, 이곳 어디에 묻혀 있다고 한다.

묘비에는 노 코멘트(No Comment)’라고

써 달라 했고, 관 대신 침낭에 싸서 코요테가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바위의 틈에

묻어달라고 한 괴짜사나이였다.

 

그는 선비와는 거리가 있는 에너지 충만형인

사람으로 주위에 항상 여자들이 많았으며

에코타지의 정신적인 보루였다.

에코타지(Ecotage)는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회사나 주택가 등을 상대로 벌이는

환경보호단체들의 파괴행위, 환경오염을

유발하거나 가속시키는 시설물 등을

상대로 벌이는 환경보호단체의

파괴행위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그는 항상 총기도 소지하고 다녔으며,

성차별적 발언도 서슴없이 내쏟았다.

서부의 헨리 소로우로 불리는

그의 대표적 저서는 사막의 은둔자.

 

 

              (에드워드 애비의 모습)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마주친, 아치스공원에서

규모가 제일 큰 랜즈케이프 아치(Landscape Arch)

길이가 88.4미터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길은 자연아치.

자연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자연에 의해 부식되어 가면서,

아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우리는 마지막 피치를 올려 바위 위에

난 좁은 길을 올라, 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섰다.

 

에드워드 애비는 그곳에 서서 그 괴상하고

기이한 이국적인 바위와, 구름과, 하늘과,

공간의 장엄한 경관을 바라보노라니

우스꽝스런 욕심과 소유욕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소유하고 싶었다. 또한

한 남자가 한 여름다운 여인을 욕망하듯이

그 모든 경치를 깊고, 완벽하고, 친밀하게

포옹하고 싶었다. 정신 나간 소망일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와 소유권을 다툴 사람이나 그

무엇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라고 했다.

그는 형이상학은 개에게나 던져 주어라.”

라고 말했듯이 자연의 일부인

여인을 포옹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멋진 풍경의 일부가 되어 노란 고양이

(Yellow Cat)라는 이름의 드넓은 광야를 보며

역시 잘 왔다하면서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악마의 정원 건너편에 있는

라살(La Sal)산맥에게 윙크를 했다.

항시 눈이 덮여 있는 라살은

콜로라도와 유타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이곳을 여행하다 보면, 라살은 항상

여행자를 뒤쫓아 온다.

 

라살산맥은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32키로 미터 떨어져 있으며, 높이 3,600-

3,900미터의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드디어 오늘 트래킹의 목적지인 더블 오

(Double O)에 도착하여, 위쪽에 있는 커다란 원에

오르려고 했지만, 위험하기도 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 애비는 1956년 봄부터

아치스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공원 본부에서 살면서

근무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공원 안으로

 32키로 미터 들어가 있는 1인용 초소와

정부 소유의 주택형 트레일러에서 삶을 꾸려나갔다

 

그때의 미국은 지금과 비교할 때 놀기 좋고

유쾌하고 양지바른 땅이었다.

토종 야생동물의 서식지였고, 원시의 오지였으며

원초적 공간과 정적, 깨끗한 공기가

그대로 보존된 지역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변화와 발전이 아치스

국립공원에도 찾아와, 공원의 자연을

가만 놔두지 않고 그 희생물로 만들었다.

 

그는 아치스에서의 경험과 그가 쓴 일기를

바탕으로, 19681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원제목:Desert Solitaire)'를 출판하였다.

Solitaire는 반지에 한 개 박혀진 보석을 말한다.

 

 

돌아오는 길, 칸막이 아치(Partition Arch)에 들려,

아치를 통해 이쪽에서 저쪽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한쪽 세상 끝에는 악마의 정원의 악마들이

눈 덮인 라살산맥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산이 아름답구나, 저곳에 언제 가볼까.’하며.

 

 

음영이 짙어지니 악마의 정원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아치스공원 관광을 마치고 모압(Moab) 시내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도시는 훨씬 크고 번화했다.

큰 마켓 두 곳을 들려 소고기, 과일 등을 쇼핑했다.

식료품 값, 특히 고기 값은 정말 쌌다

 

그리고는 모압의 개인 캠프장, 강변의 오아시스

(Riverside Oasis)에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는 등

오랜만에 푸짐한 저녁을 들었다.

모압에서 구입한 소고기의 맛은 정말 훌륭했다.

 

 

1015일 아침, 일찍 일어나 캠프장 언덕에

오르니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아침 햇살에 붉어진 산은 강물에

그 몸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패스화인더 옆에는 부모를 따라 캠핑을 온

어린이 서너 명이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리다, 싫증이 나면 잔디 위에서

축구도 하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집에 있으면 일어날 시간도 안 되었을 텐데.

 

 

자전거 두 대가 야무지게 묶여 있는 차량. 

후면 창에는 해골도 붙여져 있었고.

주인은 보나마나 야무진 친구일 것이다.

 

 

아침 식사 후 아치스로 다시 돌아가니광장에는 

붉은 석인들의 아침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불타는 용광로 (Fiery Furnace).

 

 

아침 나들이 나선 여인은 주변 산세에 압도당한듯.

멀리 밋밋하게 이어진 산맥이 있고, 메사

(솟아 있는 넓고 평평한 바위)가 중첩되어 있었다.

저들이 책 절벽(Book Cliff), 강도들의 둥지

(Robbers' Roost)일게다.

 

 

또 한 여인은 용광로의 열기가 뜨거웠는지

걸음아 나살려라 하며 달아나고 있었다.

불타는 용광로(Fiery Furnace)

석탑이 촘촘히 밀집된 곳으로,

위치로 보아서는 아치스공원의 한 가운데.

 

 

우리는 1800년대 말, 남북전쟁 상이용사 죤

웨슬리 월후가 살았던 목장(Wolfe Ranch)에서

델리킷 아치(Delicate Arch)로 가는 트레킹을 시작.

2시간 정도 걸리는 좋은 코스이다.

 

 

모리슨 언덕으로 명명된 붉은 큰 바위 언덕에는

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오르고 있었다.

길의 진행방향으로 군데군데 작은 돌들을

탑 모양으로 쌓아놓아 가는 길을

쉽게 알 수 있게 해놓았다.

동양의 불교신자들이 쌓아놓았는지.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정말 왜소하다.

이런 느낌을 가질 때면 사람들은 겸손해지고

선한 마음을 갖겠지.

 

 

낭떠러지 바위 길을 가면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적셨다.

 

가족을 따라나선 서양 어린이들은

바위 비탈을 겁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우리들 부모 같으면 나무라기 일수 일 터.

서양인들은 자유롭게 놓아두는 편이었다.

사실 어린이들의 몸은 유연하고, 순발력이

어른보다 낫다.

 

 

150미터 높이의 절벽 가장자리에

차려진 원형극장을 지나, 목적지 델리킷 아치

(Delicate Arch)에 도착하니

온통 주변이 황금색으로 눈부신 세상.

 

 

아치스의 최고 명물. 델리킷아치의 거대한

두 다리는 벌써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자연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사암을 멋지게 조각해 놓았다.

 

델리킷 아치와 같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자연물은

우리에게 저 밖의우리의 세계보다 훨씬 오래되고

더 크고 더 심오한 다른 세상,

인간의 작은 세계를 둘러싸고 떠받쳐 주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은

오른쪽에서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아치의 폭은 15미터, 높이는 20미터.

아치를 통해서 드라이 메사의

가장자리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라살(La Sal)산맥의 봉우리들이 보인다.

 

 

거인의 오른쪽에는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붉고 큰 바위에는 인디언들의 그림도 남아 있었다.

 

또한 이곳에는 수백 수천 년 전 누군가가

쪼아내어 날카롭게 날을 세운 돌조각들,

아나사지족 인디언들이 만든 돌연장이 발견된다.

드물게는 온전한 화살촉이나 아파치의 눈물이란

별명을 가진 반투명의 흑요석으로 만든

도구들도 눈에 뜨인 적도 있고,

 

협곡지대에는 석화된 나무들도 흔하다고.

나무의 모양, 결 등이 세세하게 보전된 돌은

무지개가 박힌 사막의 보석,

귀하고 비싼 보물이다. 이런 것들을 발견하면

사람들의 눈빛이 변한다고.

 

암벽에 남겨진 그림은 돌을 쪼아 새긴

암각화(petrograph)와 물감을 사용해 그린

암벽화(pictograph)가 있다.

그림들은 새와 뱀, 사슴 등의 짐승, 인간,

반 인간, 초인의 형상, 그리고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암각화와 암벽화들은 오랜 시간에 걸친

서로 다른 문화의 소산이다. 사진의 그림에는

말을 탄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남서아메리카에 스페인사람들이 도착하고

난 이후의 그림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메리카에는 말이 없었으니까.

 

아치스의 인디언들은 700년 전에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 뱀처럼 길게 늘어진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려고

일찍들 올라왔다 가서인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의 집이기도 한 패스화인더(Pathfinder)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데려다주고

잠자리가 되어줄 뿐 아니라,

때로는 우리에게 시원한 쉼터를 제공해주었다.

 

 

우리는 아치스를 뒤로 하고 또 길을 떠났다.

 

아치스의 에드워드 애비(1927-89)요세미티의

존 무어(1838-1914)를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있다.

두 사람 모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

함께 거론되는 자연주의자, 환경운동가이다,

 

무어는 인디언을 싫어하고, 천렵을 가증스러워한

반면, 애비는 인디언과의 생활과 천렵을 즐겼다.

그만큼 무어는 순수파라고 한다면

애비는 괴팍한 본능의 소유자.

 

관련 작품들을 읽어보아도 무어의 나의 첫여름

잔잔한 글인 반면, 애비의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는 그의 개성이 톡톡 튀는 글이며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글이다.

아치스 레인저로서의 일상적인 생활 외에,

콜로라도 강을 보트로 탐험한 경험,

캐니언랜즈 메이즈지역 탐사, 하바수파이,

투쿠니키바츠 등 야영 등에 관한 글들이 실렸다.

 

비는 친절한 공원지킴이는 아니었다.

바보 같은 선글라스를 벗어 버려라,

빌어먹을 카메라를 내던져버려라,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고 쭈글쭈글해진

그 젖통에 햇볕을 쬐라,

어린애들을 답답한 관 속 같은 자동차에서

내보내라는 등 그의 머리 속에는

항상 이러한 말들로 들끓고 있었다.

 

코카콜라 어디서 팔지요?”하면

물 한잔 마시겠습니까?”하고,

도로는 도대체 언제 포장하지요?”하면

제가 이곳을 떠나기 전날 할 겁니다.”하고,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죠?”하면

방금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오신 길로

나가야 합니다.”하고.

 

그는 무분별한 공원의 도로포장으로

자연이 훼손되는 것에 반대했다.

큰 주차장까지는 차로 오고,

다음에는 자전거, 도보 등으로 공원을

이용하자고 했으며,

공원직원들을 사무실에서 끌어내

내방객들을 안전하게 안내하고

위기탈출관리법 등을 인지시키는

공원내 리더로 육성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