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콜로라도를 거슬러 올라8(캐니언랜즈,콜로라도 준공립공원)

난해 2017. 8. 20. 19:31

 

8. 원시의 캐니언랜즈 그리고 콜로라도 준공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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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운전하는 임목사, 장거리 운전에

연상의 식구들 식사 챙기랴 보통일은 아닐 게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도 벌여놓은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교회에 대한 이슬람의 도전과

교회의 대책이란 세미나를 진행 중이었다.

종교관련 신문 방송의 일 만도 벅찰 터인데.

 

아치스공원을 빠져나올 때, 일전에 이 공원에서

불법체류자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던 일은

잊지 못할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때는

공원에 왔던 관광객들이 하객이 되어주었다고.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부인이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중절을 하려고 했었지만, 병원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워서 하는 수 없이 났고 말았더니,

다행히 아이는 잘 커주었다고 한다.

 

 

응접세트에서 담소하는 친구들을 보니

수염이 제법 자랐다. 예상 외로 많은 친구들이

수염을 기르면 자신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까,

남성미가 좀 돋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갖고 있는가보다. 세 사람은 모처럼 그 기회를

맞아 시도를 하고 있지만,

마나님들이 산 도적으로 변한 친구들을

좋아할지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이날이 1015일이니,

여행을 시작한지 열하루가 되었다.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할 즈음 캐니언랜즈

국립공원(Canyonlands National Park)에 입성.

아치스에서 42키로.

 

체구들이 좀 왜소해진 느낌.

 

 

입구를 지났는데도 공원의 길은 강원도

길 못지않게 돌고 돌았다.

 

 

그랜드 뷰 포인트(Grand View Point)에서 보는

캐니언랜즈의 전경은 광활하고 장엄하기까지.

그랜드캐니언은 두 번째 방문이어선지

큰 감흥은 없었는데, 캐니언랜즈는

가식 없는 원시의 자연이랄까 앞으로 펼쳐 있는

드넓은 광야는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전망대의 높이는 1,850미터.

 

콜로라도주 북부의 로키산맥에서 발원한

콜로라도강과 와이오밍주 서부 윈드리버산맥에서

발원한 그린강이 오른쪽 위에서 합류한다.

 

좌측에는 라살산맥(La Sal Mountain),

가운데 아바호산맥(Abajo Mountains)이 멀리 보였다.

하얀 사암으로 된 가장자리(White Rim

Sandstone)가 둘레를 이루고 있어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White Rim Road)이 있고,

자연의 침식작용에 의해 움푹 파진

분지(큰 웅덩이)가 모뉴먼트베이신(MonumentBasin).

 

오른쪽 중간 흰 부분이 옛날

우라늄을 실어 나르던 길이다.

콜로라도 강과 주변에는 은, , 아연, 납 등의

광산들이 산재했었는데, 상업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입증된 암석은 카노타이트이었다.

 

녹황색의 광석인 카노타이트는 라돈가스,

바나듐, 우라늄을 함유하고 있는 광석이다.

냉전으로 수요가 높아지자, 탐사작업은

이곳에 집중되었다. 떼돈이 왔다 갔다 했고

이것과 관련된 일화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는 채광이 아니라 광산권과

광산의 주식을 매매하는데서 나왔다고 한다.

 

 

유타 주 동남부에 있는 이 공원은 유타 주에서

제일 큰 공원으로 천하일품의 경치를 자랑하지만,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추운 황무지 중의 황무지.

길 만들기가 쉽지 않고, 식수 공급이 어려워서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여준다.

넓이는 1,366제곱키로, 서울의 두 배가 넘는다.

 

강들이 조각한 환상적인 수많은 계곡과 산들,

그 사이에는 황량함 만 떠돌았다.

자아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은

이곳에서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가 되어보면 어떨까 모르겠다.

 

 

오른쪽에는 콜로라도 강이 왼쪽에는 그린 강이 흐른다.

지도의 밑 부분에서 그린 강은 콜로라도에게

자기 이름을 내어주고 숨어버린다.

 

공원은 세 지역으로 나뉘는데 Y자형의 위가

하늘의 섬(Island in the Sky),

바른쪽이 뾰족한 봉우리들(The Needles),

왼쪽이 미로(Maze)이다.

 

세 지역을 모두 구경하려면 몇 백 키로를 달려야 하고,

메이즈(미로, 迷路)지역은 이름 그대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하이킹 코스의 하나이다.

물론 도로포장도 안 되어 있고.

 

남쪽 입구 가까이에 그랜드 뷰 포인트가 있다.

 

 

수직으로 된 절벽들 어디엔가 인디언들의

집이 있고, 인디언들이 괴성을 치며 말을 타고

달려 나올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이곳에 직선과 곡선을 그어 놓았다.

그러나 이곳의 그린 강과 콜로라도 강을

건너는 도로라던가,

캐니언 구역 간을 연결시키는 도로가 없다.

 

 

붉은 세상 너머 왼쪽에는 라살산맥이

조그마하게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콜로라도 강 주위에는 남북전쟁에서 오른 팔을

잃은 외팔이 포웰(John Wesley Powell)소령의

발자취가 안 미치는 곳이 없다.

 

그는 1869년 나무보트를 타고 그린 강에서

시작하여 캐니언랜즈, 글랜캐니언을 흘러

그랜드캐니언까지 무려 3개월 탐험을 하였다.

여행 도중 하도 고생이 극심해, 탐험대 일부가

탐험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인디언에게 쫓겨 몰살당하는 일도 있었다.

포웰은 진정한 모험과 탐험의 세계를 열었고,

에드워드 애비 등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스승이 되었다.

 

 

고도 1,800미터의 그린 강 전망대(Green River

Overlook)에서 내려다보니, 그린 강과 그가

과거에 만들었던 발자취가 깊게 패여 있었다.

지금은 오랜 가뭄으로 나약해 보였지만.

 

뒤쪽 가운데 봉우리가 에커(Ekker Butte),

그 왼쪽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이라테라이 버트(Elaterite Butte).

오른쪽 산등성이의 끝부분에는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의자가 있는데,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보고 싶었다.

 

그린 강이 메이즈(Maze)지역으로

흐르는 것을 보니, 그린 강이 콜로라도

강 보다는 더 와일드할 것이다

강의 길이로 보면 콜로라도 강은

그린 강의 1.3배인 2,330키로 미터나 되며,

그랜드캐니언을 지나 캘리포니아

만에 다다른다. 세계 4대 강의 하나인

미시시피강의 길이, 6,210키로 미터의

4/10도 안되지만.

 

캐니언랜즈는 태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기원전

12세기부터 서부에 살았던 아나사지

(Anasazi)족의 후손들인 프에브로인의

손자국(Handprints)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곳은 서부 국립공원의 종합선물세트.

 

 

이곳을 떠나 다음 목적지 콜로라도 준국립공원

(Colorado National Monument)으로 가는 길,

황혼이 붉게 타올랐다.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은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에서

관리하는 공원으로, 국립공원(National Park)

보다는 한 단계 낮은 등급의 공원이다.

 

 

우리는 유타와 콜로라도 경계에 있는

레스트 에리어(Rest Area), 콜로라도 웰컴센타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하루 유하기로 했다.

 

정부는 고속도로상에 차량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차들이 하루 밤 쉬어갈 수 있게 했다.

미국 내륙수송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화물차량들이 많이 이용한다.

방범시설, 화장실 등이 잘 구비되어 있고,

경찰들이 순찰도 돌고 있다.

 

우리는 요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일곱 명

전원이 차 안에서 자게 되었다.

차숙(車宿)인 셈.

 

나이들 먹어 대부분 코를 심하게 골았고,

나처럼 자다가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람은

여러 사람에게 불편을 주게 되었다.

텐트 안에서 자면 없을 문제들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차량의 수는 늘어났지만,

아침이면 언제들 떠나버리는지

공간이 텅 비어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여자 형제만 열두 분이셨다.

외할아버지는 한의사이셨다는데,

정력은 세셨는지 모르겠지만, 재주는 없으셨다.

 

끝에서 두 번째 이모님은 대학교 때까지

영어콘사이스 만 끼고 사셨는데,

미국에 오셔는 큰 트럭을 모셨다.

보수는 좋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모님의

성격을 보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다.

허지만 일본사람과 결혼해 잘 사셨다

슬하에 아이들은 없었으나 두 분의

금슬이 너무 좋았고, 이모님이 돌아가시자

바로 이모부님도 돌아 가셨다.

 

 

아침에 일어나니 웰컴센타 안은 완연히 가을.

비록 시 한 구절 볼 수 없는 센타였지만,

잘 가꾸어진 풍경 자체가 멋진 시 한편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중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휴게소나 모텔에서 시를 발견한다면,

불안전함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립된

장소에서는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

편안함이나 습관 또는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는 월남참전을 기념하는 공간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월남전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망신살이 뻗친 일이었는데.

이들의 국기 사랑은 알아줄 만하다.

 

 

1016일 오전, 우리는 콜로라도 주에 있는

콜로라도 내셔날 모뉴먼트에 안착했다.

이곳은 아치스공원에서 80키로 미터

동쪽에 위치해 있다 캐니언랜즈에서 2시간

거리, 178키로.

 

 

공원에서 내려다보면, 가느다란 콜로라도

강의 줄기가 보였다. 상류는 상류인가 보다,

물줄기가 가는 것을 보니.

 

 

절벽 아래로는 이곳과 연결되어 있는

잘 포장된 길이 보였다. 이곳의 도로도 주위의

색깔에 동화가 되었는지 붉게 물들었다.

설명을 안 들어도 이 도로를 건설하는데

얼마마한 힘이 들었고, 적지 않은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도로에 나타난 산양도 우리를 즐겁게 했다.

선한 눈동자를 보면 그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산양들은 바위투성이 깊은 산에 살며,

번식시기를 빼고는 암 수가 따로

무리를 지어 산다는데,

무리를 이탈한 놈인가 보았다.

 

 

이곳 공원의 한 가운데, 대표 명물인

인디펜던트 모뉴멘트가 서 있다.

 

 

이곳을 처음으로 등반했던 유명인사는

존 오토(John Otto)였다. 이곳 풍광에 반했던 그는

1907년부터 이곳이 국립공원이 지정되도록

꾸준히 노력했으며, 그 결과 콜로라도 내셔날

모뉴멘트가 탄생되었다.

 

1911, 그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던

뉴햄프셔 출신의 베아드리체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던 날, 인디펜던트 모뉴멘트에 올라

성조기를 꽂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두 달 만에 이곳을 떠났고,

그의 순애보는 그침이 없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930년 이곳의 공원지기를 은퇴하고는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베아드리체라는

이름은 자고로 사나이 가슴을 울리는 가보다.

 

결혼식 날 성조기를 꽂았다고 하니,

결혼기념일이면 집 앞에 태극기를

게양하여 주위의 찬사를 받는다는

선배 한 분이 생각나 공연히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마나 모뉴멘트들은 그의 애달픈

순애보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사목이 있는 풍경은 그림자마저 길게

늘어트려져 쓸쓸하고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존 오토의 마음이 이곳에 떠도는지.

 

 

한쪽에는 난장이들 집 같기도 하고 인디언들

집 같아 보이는 붉은 기둥들이 있는데,

코크 오븐스(Coke Ovens)라 불려진다

햇빛이 비추인 모양이 꼭 코크스를 태워

오븐을 덥히는 화덕 같았다.

 

 

우리는 아티스츠 포인트(Artists Point)

이동하여 절경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베아트리체가 그림을 그렸던 곳일까?

아마 다양한 바위들의 색, 그 색과 조화된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건너편은 이집트 분위기였고, 왼쪽 상단에는

미라가 누워 있었다. 이곳은 박쥐의 집단서식처

 

 

우리는 관광을 마치고 큰 뱀 길(Serpents Trail)

트래킹에 나섰다. 1950년대까지 사람들이

애용했던 몹시 길고 꼬부라진 길

(Crookedest Road). 이 길 위에서 경치를

즐기는 사람, 건각을 자랑하며 뛰는

육체파 여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길의 아래편에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후루이타(Fruita)마을이 잠자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마을.

후루이타는 기후가 좋아 과수원이 많고,

산악자전거, 트래킹 등 아웃도어의 천국.

 

 

공원을 빠져나오는 길, 주위의 바위들 모양과

잿빛의 느낌이 좋았다. 허지만 기막히게 좋은

공원들만 보아온지라, 이곳을 둘러보는 데는

너무 소홀했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제 웬만하면 보는 것들이

모두 시시해보이고 마음도 덤덤해졌다.

 

 

   

여태까지 보아온 대로 건조한

사막지대 풍경이 많았다. 그 넓은 대지가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미국의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만보면,

남한의 8배 넓이에 인구는 겨우 12백만 명,

인구밀도를 보면 1제곱키로 미터 당 15

(미국 평균 34)으로 우리나라 513명의

1/34이다.

 

에드워드 애비는 사막은 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주 적당하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물과 바위와 모래가 적당하게 유지됨으로

식물과 동물, 집과 마을, 도시의 간격이

충분하게 유지된다. 그럼으로써 건조한

사막이 미국의 다른 지역과 아주

다른 곳이 될 수 있다. 이곳에 도시를 세우지

 않는 한 물이 부족하지 않으므로 이곳은

도시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막의 웅덩이에는 많은 동식물이 사는데,

포유동물 간에 물을 두고 다툼이 없다고 한다.

사슴, 스라소니, 코요테, 여우, 토끼, 큰뿔양,

야생마 등 찾는 순서가 있고 이들 간에

휴전이 잘 지켜지고 있고, 그들은 물을

마시러 오는 것이지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애비 같은 자연주의자들의

주장이 잘 먹혀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한 서부가 없다면, 산업화에서 도피처를

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잠시나마

안식을 구하겠냐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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