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이야 가라 외치며 나이아가라로
-미국 동부로 2,531키로를 달리는 일정-
국립공원 순례를 마치고, 나이아가라까지의
횡단의 길을 나섰다. 대충 LA에서 콜로라도
주까지 우리가 온 거리의 두 배를 계속
달려야할 터인데, 걱정이 앞섰다.
길거리 풍경을 보면 콜로라도 주는 이웃
네브라스카 주에 비해 황무지가 많아 보였다.
이제까지의 여행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각기 특색이 있고 좋았지만, 데스벨리,
브라이스캐니언, 캐니언랜즈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멋진 사막의 색깔, 우아한 계곡의 손짓,
광활한 원시의 땅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곳들을 더 걷고 더 느껴보고 싶어진다.
자이언의 버진 강 트래킹도 해보고 싶고.
Canyon, Valley 모두 우리말로는
골짜기이지만 둘의 차이를 요번 여행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다.
Canyon은 천 길 낭떠러지, Valley는 아담한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는 완만하고
정감 있는 계곡이라 표현하면 될까?
Valley라는 단어가 더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중학교 때인가 애창했던 노래 ‘Down in the
Valley'가 생각이 난다. 미츠밀러 합창단의
바람소리 같은 노래가 마음을 적셔온다.
깊은 계곡에서 바람이 전해주는 소식을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세요.
장미꽃이 태양을 사랑하듯
제비꽃이 이슬을 사모하듯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음을
하늘의 천사도 알고 있어요.
내게 편지를 써서
버밍험 교도소로 보내주세요.
그대가 편지를 쓰는 모습 볼 수 있도록
높은 성을 쌓고 있어요.
아마 이 가사를 지은 사람은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는 죄수였던 것 같다.
그녀도 그를 사랑했었는지 모르지만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이제까지의 여행을 다른 의미에서 보면,
콜로라도강을 따라오르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이란 노래의 내용도 와 닿는다.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우리가 지나온 길의 햇살은 얼마나 눈부셨으며,
하늘은 얼마나 푸르고 심오했던가.
지도를 보면 그린 강, 샌환(San Juan) 강,
리틀 콜로라도 강이 합쳐지는 콜로라도 강은
콜로라도주 로키산맥에서 발원하여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를 거쳐
캘리포니아 만까지 2,330키로 미터를 흐른다.
그리고 로키산맥은 동서의 분수령이 되어,
서로 흐르면 콜로라도 강으로,
동으로 흐르면 옐로스톤 강, 플랫 강, 아칸소
강으로 흘러 미시시피 강으로 이어진다.
콜로라도 주의 넓이는 유타의 1.2배,
한국의 2.7배나 된다. 인구는 유타의 1.9배인
5.4백만 명이다. 이곳을 지나는 로키산맥은
대륙의 분수계를 이룬다.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공업이 주산업이며,
육류 낙농관계 식품가공 관광업도 활발하다.
강을 따라 초원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여행 중 미국이 더없이 부러웠던 것은
끝없이 넓은 땅 덩어리다. 그리고 어느 주를
가더라도 공업과 농업이 잘 어울러져 있다.
질 좋은 식품을 값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일단 잘사는 나라의 요건이기도 하지만,
상공업을 뒷받침해줄 수가 있다.
윌리엄 히트문이 쓴 여행기,
‘시골길로 가는 미국 여행, 블루 하이웨이’에서
어느 촌부는 지미 카터 대통령은 흙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줌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했다. 미국인들에겐 땅은 옹골참,
착함, 희망을 뜻한다고 한다.
옛날 미국 지도책에선 한가한 시골도로는
푸른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서양인과 인디언의 피를 받은 히트문
(Heat-Moon)은 직장을 잃은 후,
1978년 미국 전국일주 여행을 시작했다.
히트문은 수족 인디언 말로 ‘7월의 달’을
상징한다. 그는 블루 하이웨이, 말하자면
우리나라 옛날 국도를 따라 전국의
변방을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했다.
시골의 촌부, 옛 전쟁격전지의 사람들,
흑인 차별이 심한 남부지방의 흑 백인,
수도원의 신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펼치는 대화의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그는 여행자체를 즐기며,
인생의 답을 찾아 그는 돌아다녔다.
황금벌판 한편에 검은 소들이 보였다.
초지와 목장은 끝없는 미국 풍경의 하나.
미국의 암소 아홉 마리 중 한 마리는
맥도널드 햄버거 점에서 생을 마친다는
기사가 있었다는데 그만큼 햄버거가
식생활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
로키산맥국립공원을 출발하여 4시간,
네브라스카 주에 진입하였다.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인데,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 타이어가 두 개씩
붙어있는 큰 차라 다행이기는 했지만,
달릴 때는 차체가 불안하고 심하게 흔들렸다.
인근 조그만 읍의 수리점을 찾았지만,
운이 없게도 주말이라(10월 17일) 문이 닫혔고.
물어물어 고속도로 상에 있는
큰 휴게소의 타이어점을 찾았다.
점포는 큰데 타이어를 교체하는
모양새는 영 답답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바로 해치웠을 터인데. 미국에서 차량 고장이
나면 히스패닉이 운영하는 수리점을
찾는 것이 제일 낫다고 한다.
교포들은 고치기는 잘 하지만 바가지가 세다고.
장거리 여행에선 차량고장과
여행객을 노리는 강도가 제일 큰 문제.
타이어를 바꾸는 동안 인근에 있는
트럭운전사 휴게소를 찾았더니, 샤워장,
티비시청방 등 각종 시설이 잘 되어 있었고,
쉬고 있는 트럭 기사들은
미식축구 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이 날은 네브라스카(Nebraska) 휴게소
(Rest Area)에서 하루 밤 신세를 졌다
네브라스카는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 두 번째
부자, 워런 버핏의 고향이다.
그는 뉴욕 월스트리트를 외면한 채
이곳 오마하를 떠나지 않고 있다 한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한 반면에
순박하고 소박한 사람들로 정평이 나 있다.
네브라스카 주는 콜로라도 주 동부와 같이
미국 대평원(Great Plains)위에 있다.
네브라스카는 원주민 말로 플랫 강
(Flat River, 평탄한 강)을 뜻한다.
대평원지대라 역시 농축업이 번창하고,
관련된 식품가공업, 농기계업 등이 강하다.
우리 남북한과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2백만이 안 된다.
미국의 동서를 가르는 간단하고 명백한 구분법
중 하나는 미네소타, 아이오와, 미주리, 아칸소,
루이지애나 주가 연결되는 왼쪽 경계선을
기준으로 하는 것.
우리는 동서 분기점 네브라스카와
아이오와 경계선 가까이에 와있는 셈.
10월 18일, 8시쯤 되어 아이오와(Iowa)주에
들어서니, 평지에서 완만한 구릉지대로 바뀌었다.
사진 속에는 80번 도로는 인터스테이트
(INTERSTATE)도로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미국의 도로는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Highway), 지방도로로 구분된다.
인터스테이트는 국가가 관리하는
고속도로이고, 하이웨이는 주가 관리한다.
인터스테이트는 대체로 도로가 널찍하고
중앙분리대 대신 잔디밭 등이 조성되어 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시대(1953-61)에
고속도로가 구상되었고, 1950년대에는
하이웨이가 고작이었다. 아이젠하워는
2차 대전 참전 당시 독일 아우토반을 보고
이를 부러워했으며, 대통령이 되자
1956년에 고속도로법을 제정하여, 68천키로
미터의 인터스테이트 건설에 초석을 놓았다.
이도로의 건설에 40년이 걸렸다고 한다.
아이오와(Iowa)란 말은 이곳에 살던 이오와이즈
(Ioways) 인디언족의 말로 ‘졸린 사람들’이라는 뜻.
이런 완만하고 부드러운 구릉지대를 운전하며
통과하려면 사람들은 무척 졸릴 것이다,
너무나 평화로워서.
아이오와 주의 면적은 남한의 1.5배이나,
요번 여행에서 인디아나 주를 빼고는
가장 작은 주이다. 그렇지만 인구는
3.1백만으로 이웃 네브라스카 주의 1.6배.
콘 벨트의 목축지대로 유색인종이 적은 주의 하나.
아이오와는 1803년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땅이며,
대평원(Great Plains)의 중앙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미시시피 강의 본류와, 서쪽에는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미주리 강에 접해 있다.
아이오와 주 사람들은 소박하다고 정평이 나있고,
달걀, 돼지고기, 이곳 사람들의 인심이 주를
대표하는 상품이라고. 그러나 선거 때만 되면
미 대통령을 만드는 곳으로 떠들썩하다.
민주 공화 양당의 경선이 시작되는 곳이라
이곳에서 승리를 하면 기선을 잡을 수 있어
그렇다는데, 기선을 잡는 것이 인간사에서
중요하기는 중요한 모양이다.
선거인단 538명 중 아이오와 주의 비중은
1% 정도가 되는 6명에 불과한데.
이곳 사람들은 졸린 사람들이 아니라,
눈동자가 또릿또릿한 선거달인들이다.
중간의 휴게소에 있는 러브스(Love's) 체인점에서
점심으로 막대기 샌드위치를 먹었다.
우리는 로키산맥공원에서 36번 도로로 빠져나와
76번 도로를 타다가, 네브라스카에서 80번도로를
갈아타고 오하이오 주에 있는 이리호수를 만날
때까지 계속 직진했다.
계속된 캠핑차 여행은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책을 보기에는 눈이 피곤하고,
카드놀이 하기엔 이국의 정취를
느낄 기회를 잃어버리고,
블루 하이웨이(Blue Highway)를 지은
히트문은 고속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지만
지루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또 지루함은 여행자의 한정된 인식 능력과
깊게 탐색하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비롯한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는 여행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계획단계부터 횡단여행이란 목표가
좀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여행일자를 늘려
느긋하게 여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고.
디트로이트에서 설의철친구를 만나 며칠
주변 구경을 하다가, 바로 디트로이트에서
예약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대륙을 횡단하겠다는
친구들 의견을 따르기로 했었다.
차는 일리노이 주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뉴욕 주에 이르기까지 북쪽으로는 오대호가
자리 잡고 있다. 일리노이 북동부 미시간호
연안에 있는 시카고는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 큰 도시이다.
오대호는 서에서 동으로 슈피리어(Superior),
미시간(Michigan), 휴런(Huron), 이리(Erie)
그리고 온타리오(Ontario)호가 놓여 있다.
수면 면적이 남북한의 대략 2.5배로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
슈피리어, 미시간의 물은 휴런으로 흐르고
이물은 이리, 나이아가라, 온타리오를 거쳐
세인트루이스 강에 이르며 종국에는
대서양에 다다른다.
오대호 인근은 지하자원, 농산물이 풍부하고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산업 등 상공업이 발전되어
있는데다, 휴양산업, 어업 등도 활성화되어 있고
세인트로렌스 운하등 교통체계도 잘 구비되어있어
호수 주위에 3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상주한다.
4시 반이 지나, 도로에는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의 고향으로 가려면 56번 출구로
나가라는 주홍색 표시판이 있었다.
곳곳에 지역 또는 나라를 위해 힘쓴 인사들을
기리는 모습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우리는 그
사람이 일궈놓은 성과보다는 지역, 속해 있는 그룹,
또는 개인의 관점에서 헐뜯기만 하는데 말이다.
일리노이는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의 고향이며
버락 오바마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주,
이곳에 살았던 인디언부족,
Illini족의 프랑스식 표기.
이들은 이로쿼이족에 의해 1680년 몰살을 당했다.
일리노이 남서부 카호키아의 미시시피 강가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흙 피라미드
유적지, 카호키아 언덕(Cahokia Mounds)이 있다.
12-13세기 이곳에 살던 인디언의 정치, 종교
중심지로 멕시코 이북에서 가장 큰 원주민 거주지.
미국의 번성했던 인디언 거주지들은 남미와 같이
서양인들과의 싸움보다는 서양인들이 지니고 온
천연두 등의 전염병에 의해 파괴되어
유령도시화 되었다고 한다.
서양인들의 무분별한 버팔로 사냥에 의한
인디언들의 식량부족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고.
일리노이 주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공업과
콘벨트지역을 중심한 농업이 잘 어우러진 곳.
넓이는 이웃 아이오와 주와 비슷하지만,
인구는 아이오와의 4배인 13백만 명.
전국으로 보면 다섯 번째, 중서부에선
1위로 인구가 많은 주.
지나가는 길에 월마트를 들려 맥주를
사다가 우습지도 않은 촌극을 벌렸다.
맥주 한 박스 값을 계산하던 친구들이
지나가던 나를 불러 여권을 제시해
달라고 했다. 친구들은 모두 여권을
임목사한테 맡긴 터이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 종업원이 미성년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로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한 모양. 우리가
할머니한테는 무척이나 젊어보였나 보다.
할머니에게 내 여권을 보여주었더니,
맥주를 사서 남을 주는 것도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이웃 종업원에게 동의를 구했다.
옥신각신하다 해결은 했지만, 미국에서
원칙은 원칙이니까. 그러니 공무의 경우는
얼마나 답답할까 이해가 갔다.
이곳 월마트에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돕는 차원에서 이들을 고용한다
하니 다소 불편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10월 18일은 인디아나 주에 들어서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트럭운전사들은 자기네들 주위와는 떨어져 사는
사람들로서 그네들만의 특수한 언어를 사용한다.
동료끼리는 친절하고 조력을 아끼지 않는 것도
특색이고. 이들은 열렬한 라디오청취자이기도
해서 뉴스, 정치판 이야기에는 훤한 편이다.
또 사색(思索)을 할 여유가 많아 생각은 과거의
시간에서 미래까지를 수시로 왕래한다.
단 사색은 사색에 그치고 말지만.
그러나 이들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선원들처럼
휴게소 이외 그들이 다니는 곳과는
별로 접촉이 없다. 그러니 이곳저곳을
다니더라도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인디아나 주도 통과하는 구간이 짧았다.
인디아나는 일리노이와 마찬가지로
미시간 호수와 접해 있다.
통상 고속도로(highway)에서의 최저속도는
45마일(72키로), 최고속도는 80마일(128키로).
서부 쪽은 별도로 내는 통행료가 없으나,
인디아나, 뉴저지부터 요금이 징수된다.
도로가엔 유난히도 많은 갈대가 휘날려
가을의 색을 내보이고 있었다.
인디아나라는 말은 인디언 땅이라는 뜻.
이곳에 살았던 선사시대의 주민들은
미시시피 강 유역과 마차가지로
흙 피라미드를 쌓은 사람들, 마운드 빌더스
(Mound Builders)이었다. 이곳의 원주민은
대부분 마이애미 족이었으나, 동쪽 인디언들이
서양인과의 싸움에서 밀려 이들을 밀어냈고
결국 이들도 서쪽으로 밀려 나갔다.
인디아나 주는 요번 여행 중 면적이
가장 작은 주. 면적은 남한보다 조금 적으나,
인구는 아이오와 주의 2배가 조금 넘는
6.6백만 명. 아이오와 주의 면적은
인디아나의 1.5배이다. 동부 미시간호의
남쪽에 위치하여 교통이 발달한데다,
석탄, 석유, 석회석이 풍부하여 공업화가
상당히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
이웃 주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프랑스인들이
모피교역을 목적으로 처음 진출하였으나,
뒤를 이어 들어온 영국과 분쟁이 일어났으며,
프랑스가 패퇴한 이후 영국령이 되었다.
우리는 인디언이 서양인들에게 밀려
쫓겼던 길을 역행하고 있는 셈.
도로의 풍경이 붉은 단풍으로 바뀌었고,
우리들도 그때서야 가을의 무드로 젖어들었다.
미국 하이웨이 위를 달리려면 더 한 층의 정력,
통제력, 주의력, 족력(발의 힘)이 요구된다.
앞과 뒤 그리고 옆으로 화물선만한 트럭이
쌩쌩 지나가면 온몸이 움츠러들며, 백미러,
사이드미러 특히 교통표지를 주의 있게 보면서
가노라면 어깨, 목의 근육은 굳어지고,
엑셀레이터를 밟는 발은 쥐가 나기 십상.
그러니 초행자에게는 연도의 풍경을 볼
여유가 있을 수가 없다.
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유럽의 고속도로는 편안한 1등도로.
미국의 고속도로는 덜컹거리는 3등 도로.
그랜트 대통령의 고향, 오하이오(Ohio) 주에
진입했다. 고향사람들은 북군의 총사령관
으로서의 그를 기억하겠지만, 부패한 정권의
대통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뉴욕 리버사이드 공원에는 그의 기념관이
있고 어마어마하게 큰 돔 아래
그랜트 부부가 안치되어 있다. 이곳의 이름은
그랜트장군 기념관(General Grant Memorial).
그들은 장군으로서 그를 기리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는 독재자로서의 이대통령,
박대통령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공은 인정치 않고 있는데 말이다.
도로 연변에는 오하이오의 아름다운 강,
마우미 강(Maumee River)이 흐르고 있다.
이강은 오하이오와 인디아나 사이를
흐르는 강으로 이리호로 흘러 간다.
오하이오는 이로쿠아족의 말로 크다는 뜻.
그들 말대로라면 마우미 강은 오하이오강
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엄청나게 수량이
많은 큰 강이다.
이리호의 아래쪽에 위치한 오하이오 주는
풍부한 자원과 이리호로 연결되는
수송시설 덕분에 미국 초기에 가장 공업이
발달했던 곳. 더불어 주의 2/3가 농경지로
농축업도 활발하다. 면적은 남한의 1.1배
이지만, 인구는 중서부에서 1위인
일리노이보다 조금 못 미치는 11.6백만.
아이오와, 일리노이, 인디애나, 오하이오는
미국의 농업핵심지역이라 할 만큼 강우량,
토질조건이 좋은 지역.
또 한편으로 인디애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뉴욕, 매사추세츠 등의
동부지역은 제조업핵심지역.
양쪽이 겹쳐지는 인디애나, 오하이오는
복 받은 지역이라고 할까.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로 빠지는
길 안내판이 나왔다. 저 길로 바로 빠지면
우리가 귀향할 비행기가 뜨는 곳.
그렇지만 횡단을 마치고 뉴욕에서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이다.
80번 도로를 조금 더 가면 클리브랜드로
빠지는 출구가 있다. 클리브랜드는 오대호의
주요 항구이며, 오하이오 주 최대의 상공업도시.
오하이오가 일찍이 공업이 발달한 지역인지라,
이곳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외향적.
최근에도 이지역의 눈부신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나이야, 저리 가라’외치면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가는 길은 사람을 지치게 하는 길.
타고 먹고 타고 먹고 자고, 반복되는
3박4일의 일정은 시원한 맥주 한 모금 없이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마실 수 없는 두 사람 중의 하나.
클리브랜드를 지나니 차량은 이상하리만큼
소강상태가 되고 길은 전형적인 시골동네의 길.
클리브랜드가 얼마나 크며 중요한
도시인 줄 알 것 같았다.
오하이오의 하늘엔 양떼들로 가득 차있었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에 동화된 인디언의 시를 음미해보았다.
아메리카에서 전 세계로 유행병처럼
퍼져나간 담배에 관한 인디언 전설이 있다.
옛날 마음씨는 고우나 얼굴이 곱지 않은
인디언 소녀가 살았는데, 부모에게서 조차
따돌림을 당해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다.
죽기 전에, ‘다음 생애엔 모든 남자와
키스하고 싶어요.’하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져 그녀가 죽은
자리에 풀 한 포기 돋아났는데
그것이 담배라는 인디언 전설이다.
요즈음 그녀는 동성애도 마다않는지,
많은 여인들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양떼구름은 먹구름이
되어 몰려갔다. 오하이오의 바람은
세기로 유명이 났다. 북쪽에는 이리호,
동쪽에는 애팔래치아산맥이 자리하고 있어.
트럭이 넘어갈 정도의 강풍이 분다고 한다.
날씨가 거칠어야 좋은 재목과 인물이
나온다는데, 그래서 미국과는 달리 온화한
기후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인물이 없나보다.
곧 이어 바로 노란색의 가을 풍경화가 펼쳐졌다.
세계는 대륙이동설에 의하면 지구에는
하나의 대륙인 판게아(Pan Gaia)가 있었는데
어느 시기에 각기 떨어져 나가 아메리카,
호주가 되었다. 이에 따라 멀리 떨어진
유라시아대륙과 아메리카대륙의 생태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콜럼버스는 판게아가 갈라진 틈을
접합시켰다고 한다. 아마존의 고무나무,
안데스의 감자, 고추, 토마토, 담배 등이 대륙으로,
아프리카 원산의 바나나, 커피, 중동의 사과 등이
아메리카로 번져 나갔다. 이때 꼭 좋은 작물들 만
교환이 된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 미국은 토양의 훼손을 막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칡을 도입했는데 칡은
도리어 들녘을 잠식시켜 두통거리를 만들었다.
서양인의 아메리카 진출과 함께 말도
아메리카에 자연스럽게 퍼졌고, 이어 바퀴가
달린 운송수단도 도입이 되었다. 쥐도
청교도들이 타고 들어온 배를 통해 들어왔다.
1492년 이후, 과부가 한번 성에 눈뜨면
통제력을 잃듯이 아메리카대륙은
생태적 재앙을 맞았다. 인간에 의한 학살을
논외로 한다고 쳐도, 천연두 등 전염병으로
인디언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인디안 멸망에 따라 그들이 일구었던
환경농업도 파괴되었다.
그들은 안정적이고 융통성 있으며
재생력을 가진 농업을 해왔었다.
그들은 버팔로도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는 지혜를 갖고 있었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아마존 삼림에서도 인디안들의 화전을 통한
농법으로 인해 적절한 토양관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
오하이오에 들어선지 5시간 20분,
우리는 펜실베니아 주로 들어섰다.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표지판에는
독립의 주(STATE OF INDEPENDENCE)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1776년 펜실베니아의 최대도시
필라델피아에서 미국의 독립이 선언되었었고,
이곳에서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발발했다.
1790년부터 1800년까지 필라델피아는
뉴욕에 이어 미국의 수도였다. 또 링컨의
그 유명한 연설이 있었던 곳도
이 주 최남단에 있는 게티스버그.
게티스버그 전투는 미국 남북전쟁(1861-5)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였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남과 북의 경제구조의
차이에서 일어난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4년 동안의 내전에서 당시 인구의 3%인
103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투가 치열했었던 까닭은 돌격전 같은
나폴레옹 식 전술이 주였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참호가 등장했는데,
이 참호전술은 1차 세계대전으로
전파되었다고도 한다. 62만 명이 죽었다고
하는 이 전쟁에서는 관을 짤 목재가 부족,
교회에 있는 의자들도 동원되었다고.
격전 끝에 패한 남부가 연방으로
복귀하는데 10여 년이 걸렸다고 하니
아직도 그 잔재가 남과 북 사이에 은연 중
지역성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히트문의 여행기 중에 그가 남부를
지날 때 기록을 보면, 흑 백인 그리고
남인 북인 간의 갈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펜실베니아는 구릉성 지형이며
주의 한가운데로 애팔래치아 산맥이
달리고 있다.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일찍
중공업이 발달해왔으며, 농축업도 활발.
면적은 오하이오와 비슷하여
남한의 1.2배이고, 인구는 12.8백만으로
오하이오보다 앞섰고, 인구 순위도 한
단계 앞선 전국 6위이다.
우리가 여행한 주를 뒤돌아보면,
콜로라도 네브라스카까지의 서부는
스페인이, 아이오와 일리노이 인디애나
오하이오는 프랑스가 선점했던 지역.
펜실베니아는 좀 복잡해서 스웨덴,
화란, 영국 순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펜실베니아에 들어서자 곧 왼쪽에 5대호 중
네 번째로 큰 호수, 이리호(Lake Erie)의
푸른 수평선이 끝없이 나타났다.
저녁 모뉴멘트벨리의 지평선 위로
나타나는 푸른색 같기도 했다.
이곳에도 인디언들의 신비한 혼령이 나타나는지.
디트로이트 강이 북서부에서 이 호수로
유입되고, 호수의 북동부 쪽으로
나이아가라 강으로 유출되어 온타리오
호로 흐른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
이리 호 가운데로 지나며 연안 일대는
별장지가, 남쪽에는 사과 포도 등의
과수원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여행 중 처음으로 도로에서 교통위반차량을
적발하는 경찰차를 보았다. 경찰들은
위성으로 차량들을 감시하고 있어,
위법차량이 있으면 틀림없이 나타난다고 한다.
뉴욕 주에 들어섰을 땐 이미 어두워졌고
홀리데이(Holiday)모텔에서 오랜만에 휴식을.
널찍하게 자리를 잡은 조용한 숙소였다.
3박 4일의 차로 달리기만 하는 여행이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뉴욕 주의 도로는 참 예뻤다. 중앙분리대에
나무들을 잘 가꾸어 놓은 덕분일 것이다.
주 경계지역을 통과할 때마다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외부로 나타나는 모양을
보고 그렇게 느끼니, 주마다의 특성이 얼마나
다를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의 동북부에 있는 뉴욕 주는
대서양해안에서 오대호까지 걸쳐 있으며,
전반적으로 낮은 산과 구릉이 대부분.
온타리오 이리 호 연안과 허드슨 강
연안에 좁고 긴 평야가 전개된다.
인구는 전국 4위로 20백만 가까이 되나,
면적은 아이오와보다 조금 적고,
남한의 1.4배이다.
공업생산이 1위이고 근교농업도 잘
발달되어 있으며, 상업은 물론 문화의
중심지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주이다.
처음에는 네델란드 식민지였으나
1664년 영국이 점령하게 되었으며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거치며
미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1901년 공정한 정치가이며 강하고
부드러운 외교를 펼쳤던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때부터
세계의 최강국으로 미국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중립을 취해야
한다는 먼로주의의 영향으로 유럽 등
세계문제에 대하여는 방관자의 입장
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 말,
1917년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이후
미국은 적극적으로 국제분쟁에 개입하기 시작.
그 결과 세계 2차 대전, 한국전쟁을 거치며
뉴욕 주를 중심으로 국방 관련 산업은 활황을
맞았고 뉴욕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국이 여러 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강국이
된 것은 위대한 평화의 법, 미국의 헌법
때문이라고 말하여진다. 이법에는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 정신이 아메리카 문화를 형성시켰고,
미국 민주사회의 바탕이 되었다.
이 평등의 정신은 1789년 프랑스혁명에
도 영향을 주었다한다.
이 평등사상은 인디언 문화에서 왔다고도.
인디언은 무엇보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주요 결정사항은 부족민의 결정에 따랐다.
미국 동부에서 가장 진보적이었던
호데노쇼니 인디안 연맹은 유럽인들이
이로쿼이 연맹이라고 부른다.
평등사상은 이들로부터 배운 것이라 한다.
이들은 기원 전 1,000년 경 부터 이곳에
살아왔는데 세네카, 카유카, 오논다,
오네이다, 모호크, 투스카로라족이 그들.
미국은 고속도로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잘 해놓음으로 방문객이 도시에
대한 첫인상을 좋게 갖도록 하고 있다.
버팔로(Buffalo)로 진입하는 도로 또한
말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옛날 이곳에는 인디언들과 버팔로들이
자유롭게 뛰놀던 곳이었을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쓸모없는 닭 날개 부분을 소
금에 절였다 장작불에 구어서는 매운
소스에 찍어 먹거나 블루치즈
드레싱을 하여 먹었다.
이것이 버팔로 윙의 원조이다.
들소에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니고.
과거 인디언들, 특히 북아메리카 평원에
널리 퍼져 살았던 수족은 버팔로를 잡아
말려 가루를 만들었고, 이것에 골수기름,
야생딸기를 섞어 소가죽 가방에
보관하여 먹었다. 이를 페미컨이라고 한다.
저장성도 좋고 영양가는 신선한 고기의
열배나 된다고.
이들은 들소가죽으로 천막, 침구, 가죽신,
정강이받이, 방패, 배, 물통, 그릇 등을
만들었으며, 뿔과 뼈는 큰 못, 송곳, 칼,
도끼, 숟가락 등으로 이용하였다.
특히 갈비뼈, 턱뼈로는 아이들의 썰매를
만들었다. 들소의 발굽은 접착제로
사용했고, 심지어 들소의 영혼까지도
제사와 종교의식에 사용했다.
그러한 만큼 평원을 누빈 인디언 종족들은
들소사냥터 확보를 위해 싸움을 하였으며,
버팔로를 흉내 내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신성한
버팔로를 위해 죽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호수의 찰랑찰랑한 물이 보이고 나이아가라
주변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로키산맥국립공원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2,531키로. 3박4일의 자동차여행에서
해방되었다. 공원입구에서 폼들은 잡았지만,
키는 왜소해진 것 같았고, 팔을 들 힘도 없었다.
이곳에 나들이 나온 유대인 대가족
일행과 마주쳤다. ‘15년 여름 강원도 평창에서
칩거하면서 홍익희씨가 저술한 ‘세 종교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사이의
역사적 관계와 갈등이 깊어진 내력을
잘 얘기해주고 있다.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 자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이나, 모시는 신들이 다르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단지 선지자의
하나로 여길 뿐이며, 십자가나 사람의
형상 같은 것들을 숭배하지 않고,
사람들끼리의 절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돼지, 갑각류,
지느러미나 비늘 없는 생선, 조개류
등은 유대인의 금기음식이다.
요번 여행에서는 친구가 사는 동네가
유대인 동네였고, 친구네 집을
방문하였더니 마침 TV에서는 유대인을
교화시키고 있는 한국인 목사의 설교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 뉴욕에서 만난 이종사촌
동생은 유대인 며느리를 얻었다고 했다.
대단한 민족이지만 불가사의하고
우리에겐 친근감이 잘 안가는 사람들.
미국의 유대인은 인구로는 2%, 6백여만
명이 되지만 백만 명이 뉴욕에 살고 있다.
재미 한국인이 225만 명 정도 되니까,
교포의 2.7배 정도. 그렇지만 그들의 힘은
막강하다. 아인슈타인, 우디 앨런, 스티븐
스틸버그, 빌 게이츠, 워린 버핏, 헨리
키신저 등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있다.
50대 기업 중 17개가 유대인이 설립했고
아이비리그 교수진의 40%가 유대인이며,
미국의 파워엘리트 100인 중 절반,
고위 공직자의 15%가 유대인이라고.
참고로 말하면 유대인의 총인구는
16백만 명이고 그중 이스라엘
국민은 6백만 명이다.
나로서는 두 번째 보는 북미 제일의
나이아가라폭포. 어릴 때 보았던 학교
운동장을 어른이 되어서 다시 보는 느낌.
아주 커보이지는 않고, 이랬었나 하는 느낌.
고트(Goat)섬의 단풍이 한창이었다.
이 섬 때문에 강은 두 줄기로 나누어져
건너편 캐나다 쪽의 Horse Shoe폭포는
높이 53미터, 너비 790미터이고, 국경이
이 폭포의 중앙을 통과한다.
강물의 90% 이상이 이 폭포로 흐른다.
미국 쪽은 높이 25미터, 폭 320미터이다.
해마다 벼랑이 0.7에서 1.1미터 씩 후퇴한다.
화가이자 탐험가였던 프레드릭 처치
(1826-1900)가 그린 나이아가라폭포는
더 웅장하고 우렁찬 것 같다.
그는 나이아가라와 안데스산맥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강물 위로 무지개가 떴다. 나이가라폭포는
온타리오호수로 흘러가며, 나이아가라에서
발전되는 전기는 뉴욕에 공급된다.
일전에 이 발전소의 고장으로 뉴욕이
암흑세상으로 돌변했었는데, 흑인의
세상이 되어 무법천지였었다고 한다.
건너편 캐나다 쪽은 건물이 많이 들어선 반면,
미국 쪽은 49개 자연유산지역(National
Heritage Area)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어,
역사적 자연적 문화자원으로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개발이 안 되고 있다.
미국 쪽은 세네카족 자치구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계사회를 이루고 뉴욕 주 서부와
오하이오 동부지역에 살았었는데,
이로쿼이연맹 중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부족이었다. 현재는 나이아가라
남쪽에서 펜실베니아에 이르는 뉴욕 주
서부지역 전체를 포함하는
공화국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들 이로쿼이연맹과 델라웨어족
인디언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크고
세력이 있는 인디언이었다. 특히
이로쿼이어족은 그중 가장 진보적인 인디언.
미국 독립전쟁 중에는 영국과 협력하여
미국과 싸운바가 있다.
이들 인사말 중의 하나,
‘당신이어서 고맙습니다.’
정말 멋진 말이다.
우리는 안개의 하녀(Maid of Mist)라는
배를 타고, 요동치는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갑
판 위를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면서 사진 찍기에 정산이 없었다.
나이아가라는 거침없이 물살을
내리쏟아내고 있었다, 나이가 무슨 소용이냐며.
우리는 원더풀을 연속으로 외치는 안개의
하녀, 여승무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기념촬영을 하였다. 그녀는 열렬한 애국자였다.
하녀와 이별하고는 다른 승객들은
모두들 밖으로 나왔지만, 우리는 물벼락을 맞으며
하선장 뒤쪽의 바위 길을 올랐다가 공원으로
나오니 물벼락 맞은 몰골들이 말이 아니었다.
신발의 물을 쏟아내며 주위를 보니
공원은 너무 조용했고
가을은 한창 성숙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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