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콜로라도를 거슬러 올라11(세븐레이크스)

난해 2017. 8. 20. 19:40

 

 

 

11. 곱게 물들은 세븐레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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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종착지, 뉴욕을 향한 675키로 미터,

7-8시간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나는 길은 서부에서 사막을 달리는

것하고는 너무 틀렸다.

넘칠 것 같은 강물이 흐르고,

사막에서 메말랐던 우리의 감정도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능이 정지되어 있지만 대서양과

이리호를 연결시키는 이리운하가 있다.

 

이 운하는 길이 584키로 미터, 깊이 12미터,

너비 12미터의 운하로, 허드슨 강 연안의

올버니에서  출발하여 허드슨 강의 지류인

모호코 강의 계곡을 통과한 다음, 버팔로

부근에서 이리 호에 이른다.

이리운하는 1827년에 완성되어 1837년까지

운하의 전성시대를 구가했었다.

대서양 연안의 뉴욕 시와 북서부,

5대호가 해운으로 연결되어 문물이 오감으로

뉴욕 시티가 대서양 제일의 항구가 되었다.

 

부유한 사람들은 고급 선실이 있는 정기선을

 타고 운하를 건넜고, 가난한 이주자들은

값 싼 소형 기선을 탔다.

이 운하가 개통되고 10년 후 버팔로, 로체스터,

시러큐스의 인구는 3백 퍼센트나 증가했다.

10년 동안 제 몫을 다해낸 운하는

북서부 지방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1850년부터 철도가 발달되고

운영상의 문제들이 도출됨에 따라

1882년에 그 기능이 정지되고 말았다.

요즈음 이운하의 서쪽 끝은 스케이트장,

빙판 자전거 타기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래는 나이아가라에서 하루 유하고 가는

것으로 되어있던 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임목사도 세미나관계로 바빴고, 우리도 그렇게

되면 뉴욕에서 하루를 더 머무를 수 있으니까.

 

 

보조기사 유수종친구가 마지막 핸들을 잡았다.

우리 중에서 제일 젊은 피를 갖은 친구이다.

아들의 간을 이식받아서 그런지,

피부도 뽀얗고 이젠 완연한 젊은이가 되었다.

 

나도 이 친구가 수술하게 된 원인 행위를

조성하는데 일조를 했다. 19년 전 동창 산악회를

같이 조직하여,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었다.

산이라는 구실을 만들어 친구들을 만났고,

토요일마다 모임을 갖았다. 식구 부양하는 라고

눈 코 뜰 새 없던 사회생활에서 여유를 갖기

시작한 때였고, 그때만 해도 각기 사회조직의

중추역할을 할 때이라 돌아가며

술을 살 여유도 있었다.

 

유교감은 여행 떠나기 전에 몇 번의 모임을

갖았었는데도 이런 험악한 여행일 줄은

생각을 못했다고. 호텔에서 자고 제대로 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인 줄 알았는데,

햇반, 인스턴트 짜장밥, 카레밥, 우동,

핫도그, 샌드위치 등이 다반사고,

더군다나  침대에서 낙하훈련도 받았으니.

 

그래도 운전솜씨는 변함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다.

 

 

우리는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90

인터스테이트 도로를 힘껏 달렸다.

 

 

그러다 마지막 주유를 하고는 만면에 희색을

띠우고 만세를 불렀다. 여행이 끝나간다고.

다 죽어가던 모습들이 홀리데이 모텔에서

때를 씻어내더니 말끔한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패스화인더를 타고 길을 나섰던 우리들은

어떻게 보면 개척자라 할 수 있을까?

조금 있으면 칠십의 길에 들어서겠고

새 길을 모색하여야 할 때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 것이니까.

 

어차피 인생은 탄생으로부터

죽음으로의 여행이 아니겠나.

임목사도 이차를 몰다 몰다 보면

새로운 도의 경지를 찾게 되겠지.

 

 

   "그 옛날에도 살아남었어.

    그러니 지금도 다시 해낼 수 있을거야.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니

    다시 한번 할 수 있어.

 

    폭풍우와 곰, 늑대와 백인을 물리쳤지.

    그러니 늙는 것도 물리칠 수 있을거야.

 

    아무리 상황이 열악해도

    나는 양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어.

    그러니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하던 일을 계속할 거야."

 

나바호족의 시는 우리의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늙는 것도 물리치고,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거고.

 

 

짐을 정리하는 중, 차 속 테이블 위 술병을 보니

술은 이번 여행 중 실컷 들었을 것 같다.

 

값도 헐한 편이었고. 보드카 한 병에 7,

몬다비 포도주 9, 밀러라이트 맥주 12병에

12. 때로는 필스너우르켈 맥주 24병에

56불을 치르기도 했다.

 

물론 술은 실수요자 부담의 원칙을 적용해

친구들은 불만이 좀 있었겠지만.

사실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이 원칙을 적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밤늦게 뉴욕 후러싱(Flushing)에 있는

한인촌 민박집에 도착하여, 임목사의 기도로

5,080마일, 8,128키로 미터의 캠핑차

대장정을 끝냈다. 무사히 안착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차량 안에 있었던 소지품을 정리하다 보니,

안대감의 약과 세면도구가 개인

사물함 한 구석에서 나왔다.

 

위 수술을 받은 지 10년이 넘은 친구,

그래도 술병을 놓지 않는 친구는

어이가 없는 듯 웃었지만, 다 술 탓이라.

먹는 것도 제일 시원찮았던 친구,

정말 고생이 많았다.

 

 

다음날 아침 손재완친구의 룸메이트였던

주대감은 왕 코골이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친구들은 저는 어떠하면서 하고 픽 웃고

말았지만, 어느 세계이던지  1인자가 있는 법.

 

아침은 인근 함지박에서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LA를 떠나기 전에

북창동순두부집에서 식사를 한 이후 처음

제대로 먹은 한식이었다.

안대감의 얼굴이 오랜만에 제대로 펴졌다.

 

 

식사 후 편의점에서 인도친구가 파는

1불짜리 커피 한 잔씩 들고, 산보 길에

나섰는데 편안한 얼굴에 햇살마저 따뜻했다.

어제와는 얼굴들이 완전 딴판이었다.

한식 덕분인가?

역시 먹는 것은 잘 먹어야 할 것 같다.

 

 

주택가는 조용하고 산뜻했고 오랜만에 보는

프라타나스는 키만 멀쑥하고 지저분한 것이

서울 동네의 말끔한 그 모습과는 틀렸다.

 

 

한 사람 당 하루에 30불씩 주고 얻은 방은

이층 침대에다, 한 방에 세 사람이 사용.

생활비가 비싸게 드는 뉴욕에서는

감지덕지 하는 수밖에.

 

뉴욕에서 혼자 생활하려면,

미니차를 굴리는 경우

최소 한 달에 3천불은 든다고 한다.

 

 

산보 후 근처에 사는 박영철친구의 집을 찾았는데,

벽에는 그 옛날 이북에서 선교사 하시던

부친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성경책을 끼고 계신 부친과 천방지축

뛰어노는 아이들, 세발자전거도 보였다.

그때 농촌에도 세발자전거가 있었나보다.

 

 

친구와 같은 노인아파트에 살고 있는

샌드위치 달인은 서울에서 귀한 손님들

오셨다고 베이컨을 몇 겹으로 넣은

예술 같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것을 세븐레이크(7 Lakes)에서

먹기 시작하여 뉴욕을 떠날 때까지 맛있게

해치웠다. 덕분에 식비도 많이 절약하였고.

 

 

내려올 때 들린 노인들의 휴게실은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관리비가 엄청나게 싼 이 아파트에

당첨되는 것은 보통의 행운이 아니라고.

물론 소득에 따라 관리비가 다르기는 하지만.

 

 

세븐레이크스로 가는 길에 친구가 봉사하고

있는 퀸즈한인교회를 들렸다.

친구부부는 두 자녀 모두 결혼시킨 후

마음을 비우고 교회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뉴욕은 섬의 도시이며 대서양을 향하여 있는 항구.

맨해튼, 퀸스, 브롱크스, 브루클린 그리고

스태튼 섬, 모두 다섯 개 지역으로 나눠진다.

뉴욕의 중심지 맨해튼은 기타 지역과

다리와 터널로 연결된다. 브롱크스는 대륙과

붙어 있으며, 맨해튼 사이에 할렘 강이 흐른다.

이곳에 양키스타디움과 식물원이 있다.

퀸스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다.

우리 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후러싱은

퀸스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JFK공항이 가깝다.

퀸스 아래지역 롱아일랜드, 긴 섬은 뉴욕이

뻗어나갈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브루클린은 독립 당시 하나의 도시였었고,

스태튼섬은 주택가, 공장지대로 되어 있으며,

이 섬은 뉴욕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뉴욕은 인구가 8백만이 넘는 미국 최대의

도시이며, 1790년 이전에는 미국의 수도.

세계의 100대 기업 중 50개 본사가 이곳에

있고, 세계 금융, 무역, 문화의 중심지.

 

1626년 이곳은 화란의 식민지로 

뉴암스텔담으로 불리다가, 1664

영국함대가 이곳을 점령하여

당시의 왕의 동생 요크공의 이름을

따서 뉴욕으로 개칭했다.

영국은 화란에게서 이곳을 얻는 대신

남미의 수리남을 주었다.

 

독립전쟁 당시의 수도였던 만큼

이곳은 최대의 격전지였다.

 

 

우리는 브롱크스에 있는

그 유명한 양키스타디움을 지나,

 

 

교포들이 조다리라고 부르는 조지 워싱톤

브릿지(George Washington Bridge)를 건넜다.

 

이 다리는 허드슨 강 위를 지나

맨해튼과 뉴저지 주를 연결시키는데,

차량이 하루 평균 30만대가 지나가는

세계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다리 중의 하나이다. 길이는 1,067미터.

 

 

다리를 건너 허드슨 강기슭에서 쉬어가며

맨해튼을 바라보니, 대도시가 다 그렇듯이

옅은 회색의 실루엣을 보이고 있었다.

저 속에서 팔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무어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지만

좋다고 북적이고 있을 것이다.

 

 

허드슨 강(Hudson River)은 뉴욕 주 북동쪽,

애디론댁(Adirondack) 산맥에 있는 마시 산

(Mt. Marcy, 1629미터)에서 발원하여

뉴욕 주의 주도, 올버니를 거치고 맨해튼을

지나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간다.

 

애디론댁은 이곳에 살았던 나무껍질을

먹는 인디언을 말한다. 1609년 화란 배

하프문(Half Moon)을 타고 온 사람들은

웨이브 힐(Wave Hill)근처에서 이곳의

인디언들과 처음으로 만나 모피와

유럽산 물건들을 물물교환 하였다.

그때 당시 이배의 선장 헨리 허드슨

(Henry Hudson)의 이름을 따서

강 이름을 허드슨이라고 했다.

 

허드슨 선장은 업적과는 별개로

성품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2년 뒤 그는 항해 도중 배 안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사살되었는데,

폭동의 이유는 그가 부하에게 주었던

선물을 도로 뺏었기 때문이라고.

 

 

세븐 레이크스 가는 길은 꼭 우리 금수강산의

가을 길 같은 정취를 보이고 있었다.

 

세븐 레이크스(Seven Lakes)는 뉴욕 주

록랜드 카운티(Rockland County)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에 걸쳐 있는

일곱 개 호수들이다.

해리만(Harriman)주립공원과

베어마운틴(Bear Mountain)주립공원에 속한다

.

베어마운틴까지 이어지는 28키로의 Seven

Lakes Drives는 뉴욕 주를 대표하는 명소.

특히 단풍철에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베어마운틴은 허드슨 강 양쪽 기슭에 놓여 있는

오렌지카운티의 허드슨 하이랜즈에서

가장 알려진, 높이 391미터의 산봉우리.

 

 

세븐 레이크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들린

티오라티 비치 호수는 빨간 단풍 빛을

물속에 드리우고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그 정적을 뚫고 한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는 우리의 눈길을 끌려는지

이 호수의 가을 속을 돌고 또 돌았다.

 

 

카나와우크(Kanawauke), 세바고, 웰치 호수로

가는 길은 정말 한적했다. 주말이었으면

단풍놀이 온 차량으로 붐볐을 텐데.

 

 

우리는 티오라티 비치에서 몸을 풀고

샌드위치 달인이 만들어준 명품을

맛보며 가을 속을 산책하였다.

수염파의 세 사나이는 영락없는 산도적.

 

 

손재완친구는 요번 여행을 만끽하고 있었다.

유난히 수염에 애착을 가지고 여행 후에도

계속 기를 것 같았으나 여권에

결국은 눌리고 말았다.

운전, 분위기 잡기 그리고 남을 위한 배려

등 모든 부문에서 모범이다. 교보

영풍문고에서 잔뼈가 굵은 서적계의 원로.

 

학교 다닐 때는 짱구하면 모르는 친구가

없을 만큼 축구부의 대표선수였다.

선생님들하고 몸싸움도 하던 친구가

어떻게 책을 좋아하는 점잖은

친구가 되었는지.

친구들과 요즈음 족구를 하면

그도 역시 헛발질 선수이다.

 

 

호수는 눈부신 황금색 가을이 한창이었다.

 

일곱 개 호수는 우리가 이미 방문한 티어라티

(Tiorati)호 이외 세바고(Sebago), 카나와우크

(Kanawauke), 스칸나타티(Skannatati),

아스코티(Askoti), 은광산(Silver Mine),

퀸스보로(Queensboro) 호수가 있다.

 

 

카나와우크 호수는 빨간 가을에 푹 담겨있었다.

이 호수는 상, , 하 세 개로 되어 있는데,

위에 있는 호수를 빼고는 인공 호수.

인공호수는 1915-6년 윌리암 A 웰치

(William A Welch)의 감독 하에 건설되었다고.

 

 

이들 호수의 색색가지 단풍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고향의 가을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날 세븐레이크스 나들이가 끝나고

후러싱에 있는 중국집 송산에서

뉴욕 친구들 다섯과 함께 뭉쳤다.

 

앞줄에는 남미로 이민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온 김정희 목사, 어제 학교에서 본

것만 같은 쾌활하고 젊어 보이는 원광우 친구,

이번 여행의 프로모우터 박영철 친구,

물에 빠져도 입만은 둥둥 뜰 임진구 목사.

 

뒷줄의 이경구 친구, 이 나이에도

사업을 잘 운영하고 있어, 고맙게도

이 날의 스폰서가 되어주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50년이라는데,

성격들은 옛날이나 변함이 없었다.

입심 좋은 임목사, 쾌활한 광우, 과묵한 김목사,

항상 친구들을 생각하는 영철, 경구 친구.

 

김목사를 통해 사업이 부도난 후 행불된

장억근친구 소식을 들었는데,

자금부족으로 부도난 사유는

형이 자금을 빼돌려서 그렇다고.

 

장억근친구 한번 보고싶다.

 

귀국후 손사장의 노력으로

원광우친구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아쉬운 작별하고 민박집에 돌아와 자세히 보니

온 벽이 주의사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샤워시간, 체크아웃시간, 주방출입시간,

드라이 사용법, 조용해라, 요리 만들지 말라,

계단에서 뛰지 말라 등.

 

다리를 저는 집주인에겐 이곳에서

민박집을 하는 사연이 있겠지만, 하여튼 말로서

싫은 소리를 하기는 싫어하는 모양.

그리고 이곳에 숙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예의가 없는지를 알 수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