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기차여행,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홀로 지내는 친구를 찾아가는 여행.
지하철을 이용하면, 돈은 안들지만,
지루함을 덜기 위해 기차를 탔다.
역시 기차여행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프랫홈에서 마중나온 친구와 만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고.
정든 수원의 뜰은 여전했다.
옛 캠퍼스 동네엔 아파트가 들어서고.
역에는 자전거주차장도 생기고,
여행객 한 사람, 기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빌려타고 씽 달려갔다.
도시보다 지방살기가 더 좋아졌다 할까.
점심때도 되고, 한 시간 달려
서산 동부시장 어물전을 들렸다.
단골 아줌마, 여전히 건재했고. 이만원에
삼식이 다섯 마리, 홍어 한 마리 사가지고,
또 하나의 단골, '맛있게 먹는 날'로.
삼식이 탕과 홍어무침을 주문.
못난이 삼식이는 삼세기의 사투리.
지방에 따라서는 삼숙이라 하기도 하고.
푸짐하게 먹고도 남았는데,
음식점에 준돈이 삼만 이천원이었던가.
배꼽이 더 컸지만, 아까웁지가 않았다.
오고 싶어하던 두 사람 데리고 왔으면
금상첨화였는데.
그건 그렇고 우리친구, 식당아씨 먹던
산 낙지 접시채로 빼앗아 왔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아씨 화도 낼만 한데 웃기만.
충청도 아지매들 맘은 푸짐하고
한없이 넓다. 됐슈?
배는 불렀지만, 호떡 할머니집에 들려
오백원짜리 호떡 한개씩.
꿀맛이 흘렀다.
그리곤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공세리 성당으로.
이곳은 인근 들녁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했던
공세창(貢稅倉)자리.
공세리의 어원이 이창고에서 왔다.
1895년 드비즈신부가 사들여 성당으로 사용했고,
1922년 고딕식 붉은 벽돌 성당이 지어졌다.
입구엔 24m 높이의 팽나무가 문을 지키고 있고,
32분의 순교자의 영혼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충청남도 지방에 카토릭 성지가 많은 것은
서양선교사들이 서해를 통하여
중국에서 오기 쉬웠기 때문이리라.
성당 주위에는 아름다운 수목들이 많지만,
굵은 아카시아나무가 눈길을 끈다.
드비즈신부는 프랑스식으로 고약을 만들어
이곳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이명래고약.
성당내부는 조촐하여 마음을 편케했다.
옛날 어렸을적 분당의 조그만 교회를
생각나게 했고.
화려하지 않은 교회의 창문도 그렇고.
십자가 고난의 길을 한바퀴 도니
불쌍한 세 사람을 어여삐 여기셨는지
30분간의 폭우를 내리셨다.
단비로고.
앞 마당에 쳐진 햇빛가리개 그늘막 아래
식탁에 앉아, 카메라는 식탁 밑으로 감추었지만
온몸은 흠뻑 졌었고, 바들바들 떨기 시작.
지탄친구 비속을 뚫고 차에서 우산 하나
가져왔지만, 우리 옆에는
비 흠뻑맞고 오들거리는 젊은 여인 둘.
그녀들 먼저 구원하는 친구,
우산 하나에 비에 젖은 여인 둘
양옆에 끼고 비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소낙비 흠뻑 맞은 것은 난생 처음.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영인면 아산리
영인 초등학교 앞에 위치하고,
옛날 아산현 관아 입구에 서있던
여민루(慮民樓)에 들렸다.
1415년(태종15년)에 건립되고
1834년에 복원된 루.
이름은 백성을 위하는 뜻을 취하자는
하륜대감의 뜻을 좇았다고.
토정 이지함(1517-1578)이 한때
이곳 현감을 지냈다.
여민루 인근에는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1851-1894)선생의 유허지가 있다.
우리는 바로 온양온천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감기를 예방하고.
지탄친구, 여인의 향기가 씻겨나감을
한탄했다.
온양의 맛집, 현대갈비에서
갈비탕 한 그릇하고
서주가 앞가슴 자랑하는
서주당구장에서 한 께임.
그리고 그리운 친구네집에서
정담을 한참이나 나누었다.
다음날 5시도 안되어 아침밥짓는
친구의 덜거덕 소리에 잠이 깨었고.
새로한 밥에 된장찌개, 김치, 돼지고기볶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친구가 부럽다,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언제나 나는 생존능력을 보유할까?
베란다에서 본 새벽 풍경.
충청도의 산, 정말 부드럽다.
그래서 양반골이 되었나.
우리는 7시, 왕복 6.5키로 광덕산행을 시작.
광덕산(廣德山, 699.3미터)은 천안 광덕면과
아산 배방읍, 송악면의 경계를 이룬다.
풍부한 덕을 베푸는 산이라, 전란, 불길한 일
이 있을 때는 운다는 전설이 있다.
아산, 천안에서 제일 높은 산.
강당리에서 오르는 길, 1키로 정도마다
벤치가 있는 쉼터가 있다.
천안 광덕면 광덕사에서 산을 오르면, 순조때
여류시인, 김부용(1820-1869)의 묘가 있다.
그녀는 평안감사 김이양대감의 소실.
사후에 김대감 묘 근처에 묻혀있다.
둘이 같이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김대감이 77세때 그녀는 19세.
사람들은 김대감 묘보다는 그녀의 묘를
많이 찾고, 근처에서 시화전도 연다.
정상 1키로 앞두고 넓은 쉼터.
쉼터의 누드비키아 한 송이.
김부용의 혼이 깃든 것은 아니겠지.
'낮은 길고 산이 깊어 푸른 풀 향기로운데
봄날 가는 길이 아득하여 분별하기 어렵네요
물어 봅니다, 이몸은 무엇과 같이 보이나요
석양녁 하늘 끝에 보이는 외로운 구름이지요'
-운초 김부용-
정상에 오르니, 시야는 흐리고.
광덕사쪽에서 오른 풍세마을
이쁜 아줌마를 기다려, 사진 한 장.
원나라때 고려사신 유청신이 충렬왕16년
(1290) 호두나무 씨앗과 묘목을 가져와,
씨앗은 천안 고향집에 심고,
묘목은 광덕사 입구에 심었다고.
이 산에는 산딸나무가 많았는데,
꽃이 작고 대부분 져가고 있었다.
여름의 잎들은 싱그러웠고.
강당사로 내려오는 길, 이마당.
이곳에서 약수 한 모금 마시고.
하산하니 강당리에는 관선제(觀善齊)가 있었다.
외암 이간(1677-1727)선생이 1707년
유학을 강론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했다.
강당리라는 지명도 이것에 연유하고.
외암문집을 새겨놓은 목각판이 관선재내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다.
선생은 외암 민속마을에서 출생했고
성리학 양대 학맥의 하나인
기호학파의 중심인물.
강당사 대웅전.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모면하려고
이곳에 불상을 모셔, 강당사의 시원이 되었다.
사찰은 한 여름 속에 있었고.
그리고 외암리 산야들이에서
자연밥상 한 상을 받았다.
배불리 점심먹고 찾은 곳은
신창맹씨 비림(碑林).
그중의 하나가 고불(古佛)맹사성 비.
맹사성의 강호사시가.
사철이 임금의 은덕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신창맹씨 행단의
높은 담장과 고택.
1330(고려 충숙왕17년) 최영장군의 부친,
최원직이 건축, 실제로 최영장군이 살았던 집.
이성계 위화도 회군이후 최영장군 사후에
맹사성(장군의 손녀사위)의 부친, 맹희도가
정난을 피해 이곳으로 거처를 옮김.
고려시대 귀중한 건축물.
고요하기만한 뒷뜰.
이웃에는 두문동 72현인 맹유와 맹희도,
조선의 명정승 맹사성의 위패를 모신
세덕사가 있다.
두 그루 은행나무가 보호수인데
1380년 맹사성이 심은 것.
뜻있는 사람들과 강학하던 곳이라
행단(杏檀)이라 했다.
입구쪽에 있는 맹사성기념관을
들렸더니, 경기도 광주에 있는
그의 소무덤 사진이 있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이소도
슬픔을 못이겨 굶어죽고 말았다고.
이소를 타고 피리불던
맹정승의 모습.
맹사성(1360-1438)은 황희정승과 함께
조선 최고의 재상. 낮은 사람에게도
예를 다하고, 손님에게 상석을 권했다.
그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보면,
역성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종시대의 우여곡절
세종대의 명재상으로 거듭나다.
예악의 정비에 앞장서다
압록강 여진 정벌을 주도하다
청백리의 자취를 남기다.
다음은 현충사방문.
친구가 폰을 맹사성기념관에 두고와
그곳을 다시 갔다왔는데
여직원 얼마나 친절했는지.
친구가 사례로 사탕 한웅큼 주었더니
호두과자를 접시째로 내왔다.
우리아들 생각해 친구가
결혼했냐고 물었더니 기혼자라고 했다고
현충사 안에는 능소화가 많이 피어있었고,
여기저기 예쁜 모과열매를 볼 수 있었다.
목백일홍은 아직이고.
또 명품 소나무가 많았고.
현충사는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잡았다.
이순신(1545-1598)장군이 혼인하여
살던 집과 사당이 이곳에 있다.
장군은 이곳에서 무예를 연마,
32세(1576, 선조9년)에 무과에 급제.
입구에서.
장군의 영정 앞에서 분향하고.
요즘 난세에 장군같은 인물이 절실하다.
돌아서서 충의문을 바라보니
정말 더운 날씨.
장군의 고택을 한 바퀴 돌았다.
기다란 지붕이 마음에 든다.
뒷곁의 장독대 눈에 들어오고.
장군께서도 이곳을 잊지 못하시겠지.
온양온천역에서 친구가 끊어준
기차표를 찾고 커피 한 잔.
옛날 시골가면 큰 아버님
차표를 끊어 주셨는데--
요번 여행은 광덕산행도 좋았지만
훌륭하신 선인들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친구 배낭 속에
넣고 그냥 놔두고 온 우산생각이 났다.
친구가 뭐 잊어먹은 것 없냐고
확인까지 했는데.
추억이 있는 우산이라 잘 보관하라고
카톡을 했더니,
이틀, 우리들 덕에 즐거웠는데
집에 돌아가니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고.
어이쿠 큰 일이네.
고맙고, 미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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