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인생길따라 해미,옹도 여행(2017.7.11)

난해 2017. 8. 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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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공세리성당에서 폭우를 맞을 때는

단비라 했는데, 금새 장마에 지치고 

7/11(화) 또 길을 떠났다.

 

장마는 휴식을 취하는 중인지

잔뜩 흐리기만 했지, 비는 오진 않았다.

 

 

행담도에서 오뎅 한 꼬치 먹고

 

 

서산 해미면에 있는 해미읍성에 도착.

 

수십 년 전만해도  아름다운 바닷가였는데

지금은 개간으로 바다와 멀어진 곳.

 

고려말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1417(태종17)-1421(세종3) 이성이 축성되고,

종2품, 충청병마도절제사가 주재했다.

 

1652(효종3)에는 그 기능을 다하고,

 이후는 해미현감이 이성에 터를 잡았다고.

 

 

성벽은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느낌.

 

 

진남문과 성곽은 옛모습이 남아 있다.

 

성밖에는 해자가 있었고,

성곽둘레가 1.8키로인 산성이 아닌 평성. 

 

1578(선조11)년에는 이곳에서 이순신장군께서

군관으로 10개월 근무하셨다.

 

 

성안에는 싱그러운 나무들이

성하(盛夏)를 알려주고.

 

 

왜구들의 피가 이곳에 뿌려졌는지

해바라기는 난장이 키다.

 

 

이렇게 여유있게 해미읍성을

한바퀴 돌아본 것은 처음.

 

 

모처럼 본 초가집이 정겨웠다.

무궁화도 그렇고-

 

 

오래되었지는 않았지만

소나무도 잘 가꾸어져 있고.

 

 

국궁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지성정(枳城亭) 앞에는

호랑이, 멧돼지 표적판이 있다.

 

 

성 주변에는 적이 쉽게 접근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심어 해미읍성을

지성(枳城)이라고도 했다.

 

枳는 탱자나무 지자.

 

 

정자 옆에는 탱자나무가 도열해 있다.

우리가 옛날 보던 가시투성이의

울타리는 아니고.

 

 

이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청허정(淸虛亭) 앉아 마음을 비우니,

 

님이 저길로 걸어와

 내 곁에 사뿐히 앉을 것 같기도 하고.

 

 

이곳도 화사한 자귀꽃이 한창.

 

자귀나무는 야합수(夜合樹)라고도 하는데

밤에 서로 마주보는 잎사귀가 합친다.

 

부부금실을 위해 집안에 이 나무를 심었다.

 

 

자귀나무 옆에는 톱풀이 있었다.

잎모양이 톱과 같아서 톱풀.

 

서양에서는 '목수의 약초'라고 하는데

다친 상처에 잘 듣는 약초.

 

 

동헌 안으로 드니,

앉았던 청허정이 보였고.

 

 

병마도절제사는 비상사태가 일어났는지

서서 무엇인가를 숙의하는 중.

 

 

동헌 밖으로 나오니 가톨릭 성지라

 이를 나타내는 그림도 있고.

 

 

기품 있는 소나무 한 그루.

 

 

200년 된 느티나무라는데

너무 나이를 줄인 것은 아니겠지.

 

 

옥사와 형틀도 있다.

 

 

나리,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소.

 

 

300년된 회화나무(충청도 사투리로는 호야나무).

 

구한말 가톨릭신자의 머리채를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민가에는 볏짚 공예품 등 옛 생활용품도 있고,

부엌에는 새악시가 불붙이고 있었다.

 

 

해미읍성은 동학농민전쟁시 동학군집결소,

체포된 죄인의 처결장소였으며

항일의병의 자취도 남아있는 곳으로

 

1866-1882년  잡아온 신자를 고문,처형했다.

수많은 신도를 생매장하기도 했고.

 

2014년 프란치스코교황이 이곳을 방문했다.

 

한참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와 비교해

해미읍성은 푸른 잔디가 잘 가꾸어진

평화로운 성으로 변해 있었는데,

 

순교와 관련된 유물들은 성 인근에 있는

성당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우리는 성 밖을 나와 11시쯤 우렁된장에

쌈밥을 먹었고.

 

아침 6시20분에 집을 나오니

여유있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옹도 방문을 위해 신진도로 이동.

태안 근흥면 신진도에 안흥외항이 있다.

 

안흥은 옛날 풍랑으로 세곡선의 침몰이

잦았던 곳으로, 무사항해를 바라는 마음에서

안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곧장 옹도로 가서는 한 시간 정도 머물고

가의도, 독립문바위, 사자바위 등으로

한 바퀴 도는 일정.

 

배도 떠나고,

새우깡을 좇아 갈매기도 날고.

 

 

옹도 위치도.

옹도는 신진도에서 12키로, 가의도에서

4.5키로 떨어져 있고, 장축이 500미터인

등대만이 홀로 외로운 섬.

 

 

 섬은 가의도에 속해 그 주소가

태안 근흥면 가의도리.

 

충남 유일의 유인등대섬으로 2013년,

106년만에 개방이 되었다.

 

 

배는 가의도를 지나

 

 

옹도에 상륙하니 가운데

등대가 조그마하게 보였다.

 

 

물결은 잔잔한 편.

 

 

우리가 타고온 배가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우측 아래 선착장에서 올라

좌상 섬의 끝부분까지 돌아볼 예정.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

 

 

등대를 방문했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 (The Light

between Oceans)에 나오는

1차대전 참전용사 톰과 그의 아내 이자벨.

 

이자벨은 폭풍우치는날 유산을 한다,

남편이 지키고 있는 등대를 기어 오르다.

 

1903년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인천팔미도에 첫 등대가 점등한 이후,

유인등대 37개, 무인등대 4,476개가 있다.

 

  

우리는 섬의 끝부분으로 내려갔다.

이섬 꼭대기 전망대에선 우리나라 서쪽

끝섬 격렬 비열도가 보인다고.

 

 

내려갈 때는 동백터널로.

터널 안에서는 큰 천남성을 볼 수 있었고.

 

 

배로 귀환하니 바닷물도 출렁거리고

내 마음도 출렁거렸다.

 

 

옹도와의 아쉬운 이별.

 

 

섬은 누운 도자기 같기도 하지만,

물을 뿜는 고래모습 같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이섬 근처에서

돌고래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다.

 

 

복터진 갈매기 방황을 한다,

어는 것을 취할까 하고.

 

 

독립문바위를 지나고,

 

 

서해의 작은 섬에서 울었다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는

섬의 마음을 보고 울었다

 

그대가 저기 파도로 밀려오고 있는 작은

길이라는 알고 눈이 시리도록 울었다

밀려와 그대 이제 이섬의 작은 바위가 되어라

 

떠나지 않는 섬이 되어라

 

(원재훈의 섬에서 울다)

 

 

하늘은 잔뜩 찌프렸고.

 

 

사자바위도 지났다.

 

그러고 보니 많이 본 바위들이다,

4년전 마도 낚시와서 유람선 타고.

 

마도는 신진도에서 짧은 다리 지나면

닿는 작은 섬.

 

2007년 이섬 앞에서 주꾸미 잡던 어부가

수중유물을 발견했다,

고려청자, 고려시대 귀중한 유물을 비롯

많은 보물들을.

 

 

선진도 부둣가의 한 낚시꾼 조그만 고기

한 마리 올렸다, 배의 아줌마들 환호를 지르고.

 

 

(사진; 핑크고래 브로그에서)

 

우리는 귀경길에 서산동부시장에

 한 시간 가량 머물렀는데,

 

단골집 '맛있게 먹는 날'에서

연포탕+소주 한 잔.

 

낙지가 하도 커서 남은 걸

싸가지고 왔다.

 

집에 오니 9시반.

 

갑자기 걷고 싶을 때, 어데로 떠나고 싶을 때

걷기모임 '인생길따라 도보여행,을

이용하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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