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토) 추석연휴가가 끝나갈 무렵,
북유럽 가을여행을 시작했다.
북유럽은 여름여행이 적격.
겨울옷을 준비하라는데,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고.
KE923편으로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출발.
중국을 거쳐가는 항로인지라 뻑하면
항로가 붐빈다고 브레이크를 건다나.
북유럽관광 비수요기 철이라
넉넉히 자리를 잡고 갈 수 있어 좋았다.
비지니스석이 안부러울 정도로.
앞의 넓은 자리에 앉아가니, 앞 임시좌석
잠시 쉬고 있는 예쁜 승무원의
날씬한 다리가 어둠 속에서 아른거렸다.
추운 나라를 들락거리니, 코를
훌쩍거렸고, 식염수로 매일
코를 소독하라고 귀뜸해주었다.
9시간이 지나, 넓은 땅덩어리,
러시아 모스크바 위를 날았다.
'The Big Sick'라는 영화 한편 보고.
파키스탄 출신 코미디언 쿠마일과
에밀리의 사랑 이야기.
둘의 사랑은 철저한 이슬람교도인 쿠마일
부모로 인해 벽에 부딪치지만,
에밀리가 큰 병을 얻고, 쿠마일의 열성적 간호는
에밀리가족을 감동시키고.
정신과 의사 하지현의 심리 에세이
'심야치유식당'을 읽었다.
결벽증에 걸려, 씻고 또 씻고하는 마나님과
일상을 무언가에 쫓기어 강박감에 사는 나,
여행 끝나면 심리치료를 받아야할 것 같다.
첫 방문지 모스크바의 이즈메이로보
알파호텔에 투숙. 2014 소치동계올림픽때
선수촌으로, 알파 베타 감마 등
같은 형태의 건물이 여러개 있다.
도시락라면 끓여먹고 주변상가 들렸더니,
청어 등을 파는 생선가게가 있었고.
생맥주집에서 흑맥주 한 병.
가격도 쌌고 맛도 그만.
애기초코렛도 사먹고.
가게주인들 서민적이고 모두 친절했다.
버거킹 한개에 245루불.
1루불은 20원. 말은 안통하고.
상품과 가격 화면이 바뀌는데,
원하는 상품의 화면이 나올때
손가락질하여 구매했다.
모스크바의 새벽은 밝았고.
러시아의 인구는 145백만, 크기는 한반도 77배.
러시아정교 15%, 이슬람 10%
유럽러시아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바이킹 후손, 류리크가 기원이 된 러시아는
동스라브족과 다툼 속에 9세기에 역사가 시작,
블라디미르 1세(958-1015)때 영토가 확장되고
동방정교회가 도입되었다.
1237년 징기스칸 손자 바투가 침입,
모스크바공국 이반 3세(1440-1505)때
몽골지배가 종식되었고,
14세기만 해도 스웨덴, 독일기사단에도
시달리는 약소국이었다.
1584년 고대 러시아 류리크왕조가 종식되었고,
제정러시아가 시작되어,
표토르대제(1672-1725)때 영토확장이 이뤄지고
근대적 국가가 탄생했다.
(1547년 이반 4세부터 짜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1721년 표트르대제가 임페라토르 칭호사용)
1917년 2월 피의 혁명으로
제정러시아는 종말을 고하고,
1991년 공산정권은 멸망, 옐친대통령 당선.
모스크바 알렉산드로브스키공원에도
가을이 왔다. 서울보다는 훨씬 추운 가을.
이곳에서 줄을 서 크렘린궁 입장을 기다렸다.
모스크바는 인구 1,200만의 러시아 최대도시.
1712년 표트르대제가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옮긴 후 2백년을 제외하고
15세기 후반부터 러시아의 중심지이며
러시아정교회의 영적 구심지.
모스크바라는 이름은 모스크바강에서 따왔다고.
모스크바는 습지, 젓소의 강이라는 뜻으로
모스크바시는 습지 위에 건설된 도시.
왕관모양의 바로크양식 타워,
쿠타피야타워.
크렘린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 중의 하나.
이곳에서 짐검사, 몸검사를 받는다.
쿠타피야타워를 거쳐 삼위일체다리(황제다리)를 건너
트로이츠카야탑(삼위일체탑)의
크렘린궁 입구로.
시계는 17세기 만들어진 것이며, 탑은
공중에서 보면 삼각형, 그래서 트로이츠카야탑.
1495-1499에 지어진 이탑은 현재 통로로 쓰이지만,
오랜 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1812년 나폴레옹도 이곳을 통해 후퇴.
입구의 보초병.
이들은 정예병으로 출세가 보장된다고.
크렘린(kremlin)은 성채, 성벽이란 뜻으로
대문자로 쓰면 구소련 정부청사..
이곳은 권력의 중심이었으며,
수많은 사건이 일어난 격동의 무대.
대공이 거주한 왕실이자
러시아정교회의 중심지.
1156년 유리 돌고루키공이 작은 언덕 위에
숲과 목책으로 요새를 구축했으나,
1382년 타타르족 침입으로 불타고,
15세기 이반 3세(1440-1505)가 이태리건축가를
불러 러시아건축양식으로 짓게했다.
성벽길이 2,235미터, 높이 5-19미터.
표트르대제가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1917볼쉐비키혁명이 일어나고,
의회가 이곳에 들어서자
궁전은 새로이 조명을 받았다.
입구를 들어서면, 좌측은 궁전병기고.
지금은 보초들 기숙사로 사용된다.
병기고 앞의 러시아군 대포.
나폴레옹군으로 부터 노획한 무기들.
크렘린 대회 궁전, 공산당의 잔재.
공산당 전당대회 등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공영장으로 사용.
12사도교회. 니콘총주교가 1655-56년
러시아풍으로 교회를 지은 후 총주교의
예배당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박물관.
푸틴대통령이 집무하는 세나트궁.
무게 40톤, 당시 세계 최대의 대포.
러시아를 방문하는 외교사절단에게 대제국을
과시하기 위한, 쏠 수도 없는 뻥포. 1586년 제작.
무게 2백톤의 세계에서 가장 큰 종.
안나여제(1693-1740)때 제작되었으나
대화재로 깨어져, 한번도 울린 적이 없는 종.
러시아 최고사원, 성모승천성당(우스펜스키사원).
5개 양파지붕은 예수와 그사제를 의미.
1475-79 이반3세(1440-1505)가 이태리건축가,
알베르티 피오라반티를 초빙, 작은 사원을 재건.
역대 짜르 대관식, 주교임명식 등
국가공식행사 때만 사용했으나,
나폴레옹 점령시는 마굿간으로 사용.
5개의 황금돔은 나폴레옹 퇴각시 빼앗은
금 300키로, 은 5톤이 사용되어 장식되었다.
러시아정교회는 의자없이 서서 예배를 보며,
일체의 악기가 사용되지 읺는다.
사원 내부는 성화로 가득차 있었는데,
서유럽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
짜르의 집무실, 거주지이며
왕후의 침실이 있던 테렘궁전.
이반대제의 팔면체 종루(오른쪽).
이반4세(1533-47 재위)때 지은 크렘린에서 제일 높은
건물(높이 81미터)이며 모스크바의 정중앙에 위치.
모스크바를 둘러싼 수도원의 감시탑으로
적의 습격이 감지되면 종을 울렸다.
21개 종이 있으며, 가장 큰것은 64톤.
1484-89년에 세워진 블라고베시첸스키성당.
(성모수태고지성당)
짜르가족이 미사를 드렸던 성당.
트로이츠카야탑(삼위일체탑)을 나서며.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크렘린같다고 했는데,
크렘린궁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곳이나 북구 여러나라에서
빨간 열매가 달린 마가목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크렘린궁에서 빠져 나오는 길,
레닌도서관과 레닌동상이 있었고.
다음으로 모스크바대학으로 이동.
대학건물은 스타린시절의 산물 중 하나.
소위 스타린양식의 건물.
일명 스타린의 세븐 시시터즈
이양식의 건물은 7개로 외무성, 교통성,
우크라이나호텔, 힐튼 레닌그라드호텔,
예술인아파트, 문화인아파트가 그것들.
스타린 사후 8번째 건물은 취소되었다고.
우리는 모스크바대학 앞쪽에 위치하고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인,
그래봐야 220미터, 레닌언덕(참새의 언덕)에
올라 시내를 조망하며 여유를 즐겼다.
건너편에는 초고속빌딩이 들어선
모스크바시티가 눈에 띄었고.
모스크바시티는 모스크바 중심지의
도시재개발프로젝트 명칭.
국제비니니스센터라 할 수 있다.
(뿅망치의 지인들과 함께한 북유럽여행에서)
우리는 다시 크렘린궁 옆의 붉은 광장으로 복귀.
붉은 광장은 크렘린성벽의 북동쪽에 위치.
길이 5백미터, 폭이 1백미터.
남동쪽에는 바실리성당, 북서쪽엔 역사박물관,
크렘린성벽의 반대쪽에는 굼백화점.
광장은 장터로 사용되어 왔기도 하나,
러시아 중요한 역사가 전개된 곳.
즉 처형, 시위, 폭동, 연설의 무대였다.
지금도 메이데이의 시위행사,
혁명기념일의 사열식이 행해진다.
17세기말 아름다운(크리스나야)광장으로
바뀌었는데, 크리스나야라는 단어에는
붉다는 뜻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붉은 광장이라는 뜻만 남았다고.
1881년에 건립된 국립역사박물관.
국립 굼백화점.
굼은 러시아로 종합백화점을 의미하는
글라이니 우니베르살니 마가진의 약어.
성바실리사원.
러시아 짜르 이반4세가 몽고군과의 전승을
기념하여 세운 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비잔틴건축양식과 러시아전통 목조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8각형의 첨탑을 중심으로 4개의 다각형탑과
4개의 원형탑이 숲을 이룬다.
양파모양의 큐폴라가 붙어있고,
외면이 다채롭게 채색되었다.
바실리는 이반대제의 자문격인 수도사 이름.
게임 개발자인 러시아컴퓨터과학자가
테트리스배경으로 성바실리사원을 넣었다.
이게임은 1984년 개발되어 미국전산망을
마비시키려 한다는 KGB음모설도 있었으나,
1989년 소련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크레물린궁 성벽.
레닌묘.
레닌(1870-1924)은 러시아공산당을 창당한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이며 지도자.
17세부터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을 탐독했고
1917 러시아혁명 이후 소비에트대회 의장에 피선.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창설을 주도.
굼백화점에서 본 붉은 광장.
백화점을 한바퀴 돌았는데,
빵가게, 아이스크림가게의 줄이 제일 길었다.
아이스크림가게도 값싼 가게의 줄이 더 길고.
우린 빵도 사먹고 아이스크림도 두번씩이나
사서는 백화점내 벤치에서 먹었다.
우울하면 단 것을 더 찾는다고,
러시아사람들이 초코파이를 좋아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
다음으론 우리의 인사동거리, 대학로의
특징을 다 갖고 있는 아르바트거리를 찾았다.
과거에는 젊음, 낭만의 예술가 거리,
모스크바 토박이들의 추억의 거리였으나,
현재는 전통문화와 현대가 공존하는 거리.
저항시인 오쿠자바의 동상.
모스크바 노래꾼인 그의 노래시 테마는
거리, 전쟁, 사랑.
'너의 낯선 이름과 너의 아스팔트는
강물처럼 흐르고 강물처럼 투명하다.
아, 아르바트 거리, 나의 아르바트 거리여,
너는 나의 부름이요,
너는 나의 기쁨이요, 나의 불행이다.
네 위를 걸어가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
그들의 구두굽이 매일 너를 두드린다.
아, 아르바트거리, 나의 아르바트 거리여,
너는 나의 종교요,
너의 길은 내 발 아래 누워 있다.'
오쿠자바를 닮은 거리의 악사,
우리가 왔을 때나, 떠날 때도
걸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경청했고,
돈을 던져 넣었다.
고려인 록가수 빅토르최(1962-1990)의 벽.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의문의 교통사고사로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그의 반전메시지,
부조리에 반항하는 저항의식은
러시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고,
또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러시아에 귀화,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한 안현수선수는
빅토르 안이라고 개명.
거리엔 모스크바태생 시인, 푸시킨(1799-1837)이
살았던 집이 있고, 시인 부부의 동상이 있다.
요염한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로 인해,
그의 연적 조르주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황제까지 그녀를 탐해서 그를
죽게했다는 궁전내부세력의 음모설도 나돈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거리엔 화상도 많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도 있고.
맥도날드화장실이 무료로 개방되고 있었는데
넓은 1,2층 매장이 꽉 차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 햄버거를 너무 좋아하는 것같다.
러시아말은 어렵다.
도통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르바트거리 끝, 아파트 벽에는 러시아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주코프장군의 초상화.
2차대전의 영웅이었고, 독일 점령당시 총사령관,
국방장관을 역임했으나,
스탈린 시절 좌천당하기도.
저녁을 위해 한식당으로 향하는 길,
2018 월드컵 경기장이 보였고.
모스크바강에는 유람선이 흘러가고,
모스크바시티에도 모스크바강이 흘렀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면,
친구부부의 식탁에는 1번, 우리부부의
식탁에는 2번 꼬리표가 항상 붙어있었다.
그러니 식당에 우 몰려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신경 쓰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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