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희로애락
가슴을 버린지 오래인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네 뒷모습을 보면서
왜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
끝내
가슴속이어야 하나
(이사라, 1953-. 뭉클)
11/3(화) 가을의 흑천을 찾아 집을 나서니
아파트의 모과나무도 단풍이 한창,
붉은 잎들 사이로 노란열매가 묻혀있고.
느티나무, 거의 낙엽이 지고
몇몇 잎만 추운듯 모여있다.
원덕역에서 아홉친구 모여 흑천을 걷자니
가을바람이 아니라 겨울바람에 갈대는 나부꼈고.
오랜만에 용문으로 이사한 재완친구가
참석했고. 이제는 건강을 생각하여
공기 좋은 곳을 찾을 나이가 되었다.
냇가, 바닷가 모래땅에 군집을 이루는 갈대,
그 숲 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하고
비밀을 참지 못하고 외쳤던 전속 이발사.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꼽추인 궁정광대)
에서 나오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산에서 자라는 은백색의 억새와는 달리
갈대는 키가 큰 편이고, 이삭이 갈색이며
물가에 자란다.
추읍산으로 오르는 마을로 가자면
정다운 이다리를 건너야.
적상추가 초록색과 어울리고.
곧 김장철이 되겠지.
갈대숲 너머 용문산 백운봉(940m)이
우뚝 솟아 있고.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같이 하얗게 밤을 세우네'
이정옥의 '숨어우는 바람소리'가
들리는듯. 왜 바람은 숨어서 울까.
적막의 흑천길, 한 번 걸어보시죠.
올 3월 이곳을 걸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
날씨가 쌀쌀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갈대숲 속에 은백색 억새,
이친구들, 남의 영토를 침범했나?
흑천의 가을 위로 보이는
평안한 추읍산(주읍산, 칠읍산).
솟대가 있는 다리를 건너면
용문면 삼성리 예쁘장한 담장,
가을이 스러지는 중.
이곳의 산수유열매,
아파트동네의 병든 열매와는 달리
유난히 빨갛게 반짝인다.
3.11일 이곳을 찾았을 땐
노란 꽃들이 피기 시작했었는데-
무인찻집 옆집의 가을과 단풍나무.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이원규, 1962-, 단풍의 이유)
무인찻집, 별내이야기 입구.
봄에 찾았을 때는
없던 그림이 여러 점.
쌩쌩한 친구들,
두 친구가 안보이네.
모친과 장인어른 모시느라 못나왔던
하태욱친구도 참석
화려한 식단.
주인공은 수제 도토리묵과 두부.
커튼 위로 보이는 가을,
천이 모자라서? 아니, 재치지.
호박 장식도 있고.
이곳을 떠나 흑천을 좌로 두고 가면
眞을 수련하는 수진원.
5만평의 넓은 농장.
민박도 하고, 전통장 만들기 체험도 하고.
이어지는 양평 물소리길 산책.
가을숲의 일부는 앙상함을 드러냈다.
아직 노란 은행 숲도 남아있었고.
뭉게구름과 사료용 볏짚말이가 어울리고.
흑천 냇가로 내려섰다.
징검다리도 건넜고.
갈대 숲속
숨어 우는 바람소리는 계속되었고.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1936-, 갈대)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오는가 보다.
용문역 옆, 한 현감의 불망비가
서있었는데, 누가 그를 기억할까?
우리 단골집, 능이버섯국밥집에
긴 줄이 있었고.
능이버섯전골에 소주가 물인듯 마셨고.
식당 창 밖에는
웬 젊은 은행나무,
거리의 은행나무는 황금나무인데.
귀경열차가 양수리에 왔을 때인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40,50수도권산악회가 주최하는 여주 강천섬
가을단풍/장어행사에 30명 예약자들이 집단으로
예약을 취소했으니 도와달라고.
아홉 명 중, 마음 약한 세 명은
4,50대 여인네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이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것보다는 강천섬이 여주에 있다는
소리에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11/7(토) 9:30분 세 명이 모여 군자역에서
강천섬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전에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틀리게
날씨는 쾌청.
닉네임이 해정이라는 여인이 버스 짝궁.
바닷가의 정자를 좋아한다고.
코로나의 위협 속에 집에만 있다
오랜만에 행사에 참여했다고.
노인네를 모시고 있다니 효부이고.
요즈음은 넷플릭스가 대세인가 보다.
별로 마음에 드는 영화가 드물다는 그녀.
버스에서 마시는 아침 커피, 맛있었고.
그녀의 말로는 요즈음 60대는 청춘,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면.
(손자를 봐주어야 하니까)
그러면 70대는 장년?
강천섬에 도착, 공원으로 향하니
이곳도 갈대와 억새가 가을을 연출했고.
아직도 푸른 버드나무가 운치를 더했고.
흑천이 이제 남한강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3조(7명)에 속했는데,
장어 상자 둘과 소주를 배당받았고, 공원에
도착하여 바람막을 설치하는 것이 급선무.
어찌나 강바람이 센지.
주말의 교통 체증으로 당초 계획과는 틀리게
12시 정도 이곳에 도착.
포플러가 즐비한 공원풍경.
넓은 공원에 사람들이 텐트나
바람막을 친 곳은 공원의 경계지점.
여주시 강천면 강천리에 자리잡은 강천섬은
남한강이 만들어 놓은 삼각주.
넓이가 17만 평, 한 바퀴 돌기 3km.
여주사람들도 잘 모르는 섬이었는데
최근 백패킹, 수상스포츠의 명소가 되었다.
백패킹은 야영장비를 갖추고 1박 이상의
여행을 하는 레포츠. 등산+트래킹.
등짐을 지고 간다는데서 명칭이 유래.
한 쪽에선 장어 굽고,
한 쪽에선 삼겹갈 굽고.
가락시장에서 구입했다는 장어는 손질이
잘 되어있었고, 맛과 양이 충분.
25천원에 야외에 나와 장어 파티.
마니마니(닉네임) 친구가 텐트, 집에서
익힌 농주, 다래주, 오리고기 등 준비.
음식 솜씨 일품이고, 유머감각도 일품.
소진(닉네임)은 쌈장, 상추, 삼겹살, 그릇 등
준비. 재춘친구는 코펠, 도원친구는 과일,
나는 버너와 라면.
여주 여인들은 익힌 돼지고기, 과일.
떡 등 준비.
농주에 얼근해져 공원을 돌자니
산줄기, 고목, 포플러, 텐트 등이
장 어울어져 있었고.
자전거 타기도 안성맞춤.
포플라 그늘 아래 그녀와 둘이 앉아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었소
내사랑 주리안은 마음씨 고운 여자
그리고 언제나 잘 웃어
아아 하늘엔 근사한 꽃구름
아아 가슴엔 행복이 초만원
내사랑 주리안은 마음씨 고운 여자
그리고 나만을 사랑해
(최희준, 1936-2018, 내사랑 주리안)
텐트도 빨간 색이 좋다.
남한강가엔 우리의 버드나무.
미국 원산 미루(美柳)나무, 이탈리아 포플라
보다는 버드나무가 마음에 들지.
키장다리 포플러를
바람이
자꾸만 흔들었습니다
포플러는
커다란 싸리비가 되어
하늘을 쓱쓱 쓸었습니다
구름은 저만치 밀려가고
해님이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어효선, 1925-2004, 포플러)
겨울의 따뜻한 햇볕의 느낌.
그리고 휴식.
60대 될듯말듯의 파숫꾼,
우리 두 친구.
오른쪽 빨간 옷 위의 손은
우리 친구의 손?
우리는 주차장으로 이동하는데
이날 야영할 사람들의 줄이
끊임 없이 이어졌다.
갈대 속에
숨어 우는 바람소리.
우리가
누린 적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박라연, 1951-, 아름다운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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