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포항 2박 3일(대한에 떠난 여행)

난해 2022. 1. 24. 20:14

가장 추운 날, 대한에 떠난 여행

재작년 코로나 발생으로 취소했던 울진여행,

그래서 1/20(목) 네친구 서울역에서 모여

KTX 타고 포항으로.

 

숙소는 영덕 칠보산 자연휴양림으로 하고.

 

 

 

 

포항역 앞 유영호작가(1965-)의 '인사하는 사람'

작가는 인사가 모든 관계의 시작이라 보고

세계 곳곳에 greeting man을 세우기로.

 

포항에 자리잡은 차건동친구와 인사를 했고.

그의 차로 그의 안내대로 따르기로.

 

 

 

 

전재혁친구가 장사해변전투 이야기를 꺼내자

영덕 남정면 장사리 해변에

문산호가 나타났다.

 

'잊혀진 영웅들!'이라고 쓰여져 있는.

 

 

인천천상륙작전 하루 전, 북한군의 눈을 동해로

돌리기 위해 1950. 9.14. 5:40분

이곳에서 장사상륙작전이 시작되었고.

 

 

 

 

장자 상륙작전 전적비

8백명 학도병이 하루 전 부산에서 LST(Landing Ship,

Tank, 상륙전용함선)를 타고 이곳으로 이동, 

북한 최정예 정규군과 전투.

 

200여명이 전사, 39명이 포로가 되었고

문산호는 침몰하여 아직도 바다 밑에.

 

8.27일에 부대가 편성되어 유격훈련을 받았다고.

9.19일 생존자는 LST로 귀환.

 

 

 

 

바다는 이를 기억하고 있을까

6.25가 발발한 해 1950, 9.15. 인천상륙작전,

9.28 서울수복, 10.19. 평양탈환.

10.25. 중공군 개입

 

12.15. 흥남철수작전.

얼마나 급박한 상황들이었나.

 

요즈음 정치꾼들은 대한민국사람들이 아닌가.

이북을 찬양하고, 중공에 굽실대고.

 

그렇다고 이북이 민주국가이고

국민들이 잘 살고 있는지.

 

 

 

 

다섯명의 노병들

문산호로 이동,

그날들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1950. 9월, 낙동강 방어선은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고

 

1950.10. 6일 맥아더의 원산상륙작전은

늦게 상륙한데다 지뢰제거 작업등으로

시기를 일실했다고.

 

 

 

 

그때 당시의 문산호

 

 

 

 

영덕군 남정면 구계리에 있는

큰 맘 할매순대국에서 점심.

바닷가에 위치, 오션뷰도 좋았고

맛도 그만.

 

 

남정면 위쪽 강구면의 강구항을 지나

북쪽으로 차를 달려,

 

 

 

 

영덕읍 창포리 영덕해맞이공원에 주차하고

영덕블루로드, 해파랑길 21코스(12.8km)를

걷기 시작.

 

해파랑길 코스중 최고로 손꼽을 아름다운 길.

 

 

 

 

 

멀리 섬같이 보이는 곳이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 앞에 있는 대밭산(87m).

해파랑 21코스 종점.

 

 

영덕군은 진흥왕때 고구려에서 신라로.

1914년 영덕과 영해가 합쳐진 군.

게, 복숭아가 유명하고 오십천이 흐른다.

 

 

 

 

급경사 험한 해안길로

영덕군의 인구는 36천 명, 

 

북쪽에 칠보산(810m)이 있고

그 안에 신라때 창건된 유금사가 있다.

 

강구, 축산항이 어업중심지.

 

 

 

 

쉴만한 벤치도 있고.

파도가 거친 날이었지만

해가 있어 그리 춥지 않은 날.

 

 

 

 

파도인지, 구름인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저 바다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으니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저 파도 일제히 일어나

아우성치고 덤벼드는 것 보면

 

얼마나 신바람나는 일인가

그 성난 물결 단번에

이 세상 온갖 더러운 것을

씻어 내리리 생각하면'

(신경림, 1936-, 파도)

 

 

 

 

울툴불퉁 바위길을 오르고 내리고

오보해수욕장까지 영덕읍 대탄리.

해여울, 해탄으로 불리기도.

 

1469년 간행된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백탄포, 대탄포.

 

험한 지형 때문이리라.

 

 

 

 

곧게 뻗은 해송, 푸른 바다와 파도

여행을 도와주는 날씨.

 

 

 

 

오보해수욕장, 너무 적다

다섯 발걸음이면 끝?

 

 

 

 

영덕읍 노물리(老勿里) 방파제

싯퍼런 바다와 대비되는 빨간 등대.

노물은 늙지 않았다는 뜻?

 

가끔 낚시하다 실종사고도 있는듯.

 

 

 

 

다시 바닷가로 하강

극기훈련이나 마찬가지.

 

 

 

 

빨간지붕이 많은 동네, 대물리

유럽 못지않게 정이 드는 동네.

해변엔 갈매기떼.

 

사람이 살아야 새도 먹을 것이 있지.

 

동네 길가에는 '오징어 피데기 팝니다'

라고 써있고. 피데기는

반건조 상태로 말린 생선의 경상도 사투리.

 

 

 

 

다시 해안의 고개를 넘어

 

 

 

 

풍랑 이는 겨울바다

 

 

'세월이 무더기로 지는 

겨울바다

아득한 물머리에 서서

 

쑥대머리

하나

사흘 밤 사흘 낮을

이승의 바다 건너만 보네

 

가마득하기야

어디

바다뿐일까만

 

울고 웃는 울음으로

빨갛게 타는

그리운 마음만 부시고

 

파도는 바다의 속살을 닦으며

백년이고 천년이고

들고나는데----

 

까마아득하기야

어찌

사랑뿐일까 보냐'

(홍해리, 1942-, 겨울바다에 가서)

 

 

 

 

울퉁불퉁 해변에서 철계단 오르고

공사구간의 밧줄 타고 큰 길로.

영덕블루로드라 파란줄 쳐있고.

 

 

 

 

영덕군 영해면 석동마을은

삼국시대 역적으로 몰린 안씨성 사람들 개척.

이들이 떠나자 김해김씨가 정착한 곳.

 

돌면리와 예진리가 합쳐 석동으로.

 

석동미역이 유명하고

3-4월 학꽁치, 강성돔철에

낚시꾼들의 사랑을 받는 곳.

 

 

 

 

해안가 산길도 걷고

 

 

 

 

바다의 울음소리

겨울나그네의 마음을 적신다.

 

 

 

 

험한 바다와 싸워온 이곳의 방파제

그 연륜으로 아름다운 색을 발산하고.

절벽의 계단을 타고 오르니

 

 

 

 

덮치는 파도에 물벼락 두 번

피할 사이도 없었고

카메라렌즈도 예외일 수 없었다.

 

병헌친구도 온몸에 물세례.

바닷바위길 트래킹의 묘미일 수도.

 

 

 

 

텅빈 초소에

나그네의 마음도 텅-비고.

전국에 좌익세력이 판을 치고있으니

초소가 무슨 필요가 있겠냐만,

 

일본, 중국, 러시아에 대비할

국방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산언덕 위 지붕 위에 부처가 있는 효심사,

문수정사 지나고 축산면 경정3리

오매마을 진입.

 

 

 

 

오매마을의 500년 된 보호수, 향나무

산발을 하고 있다.

주위 전체가 한 그루.

 

안동김씨, 김해김씨가 개척한 마을.

남쪽에 오두산, 앞에는 매화산,

그래서 오매마을.

 

 

 

 

경정1리 해수욕장 들어서니

그래도 어촌마을 같다.

 

길가에 있는 이동카페에서

병헌친구가 커피를 샀다.

조그만 공간에서 아줌마 셋이서 오손도손.

 

휴지를 얻어 화장실도 갔다오고.

 

 

 

 

경정1리 떠나 포장도로로

가슴이 확 트이는 동해바다.

 

 

 

 

붉은 바위에 있는 갈매기 한 마리

거센 파도에도 바위처럼 꿈적을 않았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짝잃고 님을 그리는지.

 

 

 

 

뒤돌아보니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이곳 해안은 경북동해안지질공원.

백악기 퇴적암층.

 

백악기는 중생대 마지막기.

1억 3,600만년 전에 시작, 7,100년간 지속.

 

남아메리카는 아프리카에,

오스트렐리아는 남극대륙에

북아메리카는 서유럽에 붙어있었다.

 

백악기 중엽에 남아메리카 분리되고

북아메리카가 분리되기 시작.

백악기말에 공룡과 함께 파충류 거의 멸종.

 

 

 

 

경정2리 대게원조마을을 한 바퀴 돌고

방탄소년단 일행이 방문했던

밥묵을래 술물래 대개먹을래에 안착.

 

음식점이름이 길었지만 주인장 위트가 있었고

해안가 전망 좋은 곳에 위치.

 

건동친구와 택시타고 해맞이공원에 놓아두었던

차를 회수, 식당으로 귀대.

 

 

 

 

 

대게+미주구리무침+게딱지 볶음밥+가자미밥식해+맥주,소주

미주구리는 물가자미의 영덕 방언.

미주구리의 일본말 뜻은 냉수에 식힌

삶은 밤 또는 물에 담근 생밤의 뜻.

 

밥식해는 경북 동해안에서 생선, 밥을

섞어 삭혀서 만듬.

 

이날의 피로가 싹 풀렸다.

 

 

요즈음의 대게는 잘았다.

상품이 한 마리 3만원.

 

옛날 한 마리에 10만원 할 때가 이곳의 

전성기라고. 한 마리에 만원에 사서

손님들한테 10만원 받았으니.

 

 

 

 

우리의 숙소는 참나리, 11인실

짐을 풀었는데 건동친구는 한 명에 하나씩

큰 빵보따리와 라면, 누룽지 보따리를 내놓았다.

울진 금강송길 걸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영우친구도 빵보따리를 풀었고

병헌친구는 커피, 차보따리를.

 

 

11인실이라 화장실도 두 개,

널널한 공간, 모두 좋았지만

방이 너무 뜨거워 잠들을 설쳤고.

 

 

 

 

다음날, 휴양림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지만

건동친구는 영해면 대진리에 있는

대진해수욕장으로 차를 몰았다.

 

 

 

 

파도는 여전했고

오른쪽 하늘부터 붉어져 오고-

 

 

'일상이 정적인 나에게

 

울컥 그리움처럼 밀려오는 파도여

가슴에 가득 안고 또 안아도

오랫동안

너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길손 Ahn)

 

 

 

 

 

이웃해 있는

고래불해수욕장과 함께 동해의 명사 20리,

8km 길이.

 

거센 파도는 밀려오고.

 

 

 

 

바다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청년들

 

 

 

 

대진해수욕장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벽산선생김도현(1852-1914)도해비(蹈海碑)가 있다.

 

선생은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후 의병을 모집

투쟁했으며,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다,

국권이 상실되자 대진리바닷가에서 도해순국.

 

 

 

 

 

도해비 옆 비각에는

박대통령의 '천추대의' 필적이 보존되고 있다.

벽산선생의 대의를 기리는-

 

 

 

 

두터운 구름 위로 해가 나오기 시작

 

 

 

 

거친 바다 위 구름을 뚫고 

파도 위에 자취를 내보인 햇님.

통상적인 일출보다 더 멋졌다.

 

 

 

'바다 건너 바다 건너서

어둠을 살라 먹고

바다 건너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두진, 1916-1998, 해)

 

산 넘어를 바다 건너로 고침.

 

 

 

 

우리는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으로 이동

등대가 있는 산이 대밭산.

이곳에도 눈부신 해가 떴고.

 

산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축산이라고.

 

 

 

 

물가자미전문점, 해산식당에 걸려있는 흉칙한 아구

머리를 떼어내고 말리는 중.

 

충청도아줌마의 목소리가 변해 

경상도 억양이 들어가 있고.

 

물가자미 매운탕+떡국.

"충청도 아줌마^^ 맛있어요"

 

 

 

 

 

제법 현대식으로 지은 에이스 마트

이곳에서 이날 저녁거리와 마실거리 구매. 

 

화장실엔 '깨끗하게 사용한 당신 덕분에

참 행복합니다'라고 써있었고.

 

 

 

 

 

칠보산 자연휴양림으로 복귀

10시 20분 칠보산 등산 시작.

 

 

 

 

임도를 잠간 걷다가

숲길로 들어섰다.

편도 4.1km의 길.

 

정상(811m)의 소재지는 영덕 창수면 삼계리.

울진과 경계를 이루는 산.

동해를 바라볼 수가 있어 인기있는 산.

 

돌옷(바위, 돌에 낀 이끼),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구리, 철이 칠조라는데

특별한 보물은 아닌듯.

 

산중턱에 유금사란 오래된 절이 있다.

637년(선덕여왕6) 자장율사 창건,

1627년 중건한 절로 병곡면 금곡리 소재.

 

보물, 통일신라때의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탑에서 금불상이 발견되었다.

 

 

 

 

산사랑쉼터에서 휴식하며 간식

 

 

 

 

낙엽이 얼마나 두껍게 쌓여있는지

낙엽 밟는 소리가 아니라

낙엽에 빠지는 소리가 났고.

 

겨울산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눈도 없고.

 

선자령, 태백산에도 눈이 없다니

덕유산 눈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오는 기차 속에선 스패치를 잊고 왔다고

걱정했지만 공연한 걱정.

 

 

이산의 정상부는 침엽수, 관목이 아니라

참나무숲.

 

 

 

 

유금사 갈림길을 지나고

헬기장을 지나고.

 

 

 

 

칠보산 정상에서

811m 높이 표시가 뒷면에 적혀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없으니

사진을 부탁할 수도 없었고.

 

 

 

 

방곡면 병곡리 소재 고래불해수욕장

울창한 송림, 금빛모래가 찜질하면 건강에 좋다고.

대진해수욕장과 함께 동해의 명사 20리.

 

고래불은 고래가 노는 뻘. 고려말 목은 이색선생

(1328-1396)이 외가인 이곳에 와서

고래가 뛰노는 걸 보고 이름지었다고.

 

 

 

 

 

또 낙엽 쌓인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헬기장에서 빵, 양갱 등으로 점심.

 

 

 

 

 

새둥지도 눈에 띄고

이속에서 자란 새들은 둥지를 벗어나

먼 남쪽나라로 갔는지도.

 

 

 

 

 

왼쪽 이날의 숙소, 왼쪽 중간 옥잠화에서 시작

산사랑쉼터- 칠보산 정상- 산사랑쉼터-오른쪽 아래 

해돋이쉼터-관리사무실,  4시간 반 걸렸다.

 

 

 

 

'멀수록 그림 같은 아늑한 작은 마을

무지개 다리 놓듯 뽀얕게 길을 연다

 

바위가 몸을 떨듯 까마득 저 아래에

감출 곳 덮어주는 푸른 숲 치맛자락

생명들 

작은 씨알이

눈을 뜨는 곳이야

 

흐르는 물줄기에 이흙의 맥이 뛴다

새들이 깃을 틀고 고기들 헤엄치는

세상이

시작되노라

큰 바다로 가는 길'

(구을회, 1949-, 계곡)

 

 

 

 

거의 다 내려오니

왕릉같이 큰 무덤이 셋.

옛날 무덤이 아닐지.

 

 

 

 

해돋이쉼터에서 본 고래불해수욕장

 

'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풍경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동녁 바다를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하니

갑자기 슬퍼 두 눈이 먼저 캄캄해지누나

 

황량한 마을에 하룻밤 단란히 묵으면서

젊은 시절 회포를 세세히 논해보지 못하였는데

회상컨데 몇 년 사이 선배들은 다 떠났고

아침 까치 지저귀더니 어느덧 또 황혼일세'

(이색, 영해를 그리워하며<憶寧海>)

 

 

우리들 심사를 표현한듯 하고.

 

 

 

 

이날 쉴 옥잠화(5인실)

이틀 계속 휴양림에 머물 수 없었는데

운좋게 다른 숲속의 집을 예약할 수 있었다.

 

샤워하고 잠간 눈을 붙였다, 저녁.

만두+낚지볶음+햇반+김치+소주, 맥주.

축산항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찻물 끓이다 태운 주전자

손잡이를 내려놓은채로 끓였더니.

 

내가 설것이 하려했더니

영우친구가 말렸다, 시원찮다고.

 

 

건동친구는 손님이 있어 포항으로 갔고.

온도를 24도로 조절해놓았더니,

모두 꿀잠.

 

어제의 해안 트래킹, 오늘의 등산

피곤했나보다.

 

 

 

 

다음날 아침은 라면+누릉지

9시에 건동친구가 픽업하러 왔고.

우리는 다시 포항으로.

병곡면 금곡리에 있는 보건진료소를 지났다.

 

 

 

 

 

첫날 들렸던 장사해변을 지났고

 

 

 

 

포항 내연산 보경사 주차장(포항시 송라면 중산리)에서

포항에 사는 김윤호친구가 합세.

친구는 포철을 은퇴하고

병원 원무과장으로 재직중.

 

 

 

 

일주문, 해탈문 지나 천왕문으로

적광전과 오층탑이 보였다.

 

보경사(寶鏡寺)는 602년(진평왕 25) 지명법사 창건.

팔면보경을 묻고 불당을 세우면 왜구를 막고

삼국통일을 한다 하여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

 

 

 

 

천왕문 밑둥의 나무로 된 귀여운 사자상

잡귀, 부정을 쫓으려는 목적.

 

 

 

 

적광전 앞 오층탑

적광전은 왜소하나 보물.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셨고 신라시대

고부재(古部材)를 사용하여 중창한 것으로

조선중기 특징적 건축기법을 썼다고.

 

고려시대 5층석탑(일명 금당탑)은 

경북유형문화재. 고려 현종때(1023년)

건립. 높고 날렵한 느낌.

 

탑의 무늬는 자물쇠와 문고리 두 개.

 

 

 

 

대웅전과 오층석탑

 

 

 

 

원진국사비, 보물

1224년 고려 고종때 세워진 비.

원진국사(1171-1221)는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주지가 됨. 사후에 국사로 추증됨.

 

뒤에 명부전이 보이고.

이건물은 1677년(숙종 3)에 건립.

 

 

 

 

원진국사의 진영과 상,

사명대사 등 이절에서 수도한

큰 스님의 진영을 모신 원진각.

 

 

 

 

절을 한 바퀴 돌고

내연산 소금강전망대로 올랐다가

선일대쪽으로 하산했다.

 

내연산 폭포를 배경으로 '대왕의 꿈',

'남부군'이 촬영되었다고.

 

 

 

 

돌로 포장된 길을 지나 관음, 연산폭포쪽으로

내연산(711m)은 영덕 남정면, 포항 송라, 죽장면에

걸친 산. 동쪽, 남쪽사면은 급경사.

 

옛날에는 종남산이라 불렸으나

진성여왕이 견훤의 난을 피해 이곳을 찾은

후에는 내연산(內延)이라 불리게 됨.

 

내연산 계곡의 깊이는 14km.

 

광천 상류에 내연산 12폭포가 흐르고.

 

 

 

 

 

산에는 눈이 없고

일부 계곡은 얼어 있었고.

 

 

 

 

긴 나무계단길도 걸었다.

 

영일만을 끼고있는 포항시의 인구는 50만 명.

경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구룡포, 호미곳, 청하의 이름을 땄다는 청하면 등

귀에 익은 지명들.

 

고려초는 영일현이었고

1995년 포항시와 영일군이 합쳐졌다.

 

1732년 영조 8년 포항창이 설치되어 

포항이란 지명이 나온 육로, 해상교통의 중심.

 

 

 

 

처음으로 마주친 폭포, 상생폭포

1688년 이곳을 찾은 정시한(1625-1707)의

산중일기에는 쌍폭으로 기록됨.

 

 

 

 

봄이 그리운 계곡

 

 

 

 

등산로에선 보이지 않는

세갈래 삼보폭포.

 

 

 

 

삼거리에서 우리는 소금강전망대로

 

 

 

 

보현암에서 열공중인 젊은 스님

옛날엔 암자에 고승들이 기거했는데-

이곳에서 커피 한 잔하며 숨을 돌렸고.

 

 

 

 

만족을 아는 것이 제일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한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가능성은 아주 적다.

 

그러니 지금 사랑하라.

 

 

 

 

건너편은 선일대(仙逸臺)

신선이 학을 타고 비하대로 내려와 상용추를

완성한 후 선일대에 올라

오랜 세월을 보낸 곳.

 

2015년 현판식을 한 선일대 정자.

주위 경관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곳.

 

 

 

 

소금강전망대에서 한 컷

재혁친구는 애인을 끼고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이 청하 현감시(1733-5)

내연산폭포도 등 진경산수화를 창시했다고.

 

 

 

 

전망대를 한 바퀴 돌아 하산길로

 

 

 

 

계곡길로 하산

 

 

 

 

시간상 오르는 모든 길을 포기하고

선일대가는 길로.

 

 

 

 

얼어있는 음지의 계곡을 지나

호젓한 산길을 걸어-

 

 

 

 

선일대로 오르는 계단도 포기하고

 

 

 

 

관음폭포 구경하고

폭포구경은 한 여름철 계곡물이 불 때

보는 것이 맞고.

 

 

 

 

 

연산폭포에 고드름이 달렸다

 

 

 

 

무풍폭포

좁은 바위틈이라 바람을 맞지않는 폭포.

 

 

 

 

잠룡폭포

그리고 좀 더 내려와

왔던길로 보경사까지.

 

12폭포의 반은 보았나?

 

 

 

 

건동친구 사무실 근처에 있는

포항의 맛집, 참가자미전문 한양횟집에서

포항친구 둘이 송별연을 해주었다.

 

물회에 맥주.

 

 

 

 

우리는 건동친구 사무실에서

예의염치도 없이

차전문가인 친구의 마나님으로부터 

홍차 겻들인 다과를 대접받았고.

 

곳감은 먹어본 적 없는 상품.

사진은 상이 완전히 차려지기 전.

 

 

홍차는 다르질링차와 네팔홍차 두 가지씩.

 

다르질링은 인도 북동 고산지대.

원래 시킴왕국의 땅이었으나 영국이 탈취.

다르질링은 인드라신의 천둥이 휴식하는 곳.

 

이들은 이땅에 중국종, 아삼종을 함께 재배

고급 홍차를 생산했다.

 

 

네팔홍차맛은 완연히 틀리다는 것을 

문외한도 알 수 있었고.

 

 

 

 

건동친구는 히말라야와 토함산을 좋아한다

미국 자이언캐년에서 해가 비치기 시작할 때

자이언 산의 화려한 색이 생각나는 왼쪽 사진.

 

언제 친구와 네팔에 가볼까.

 

 

 

 

사무실에서 나오며 본 동백꽃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마주친 꽃.

 

 

 

 

포항친구들과 헤어지고

포항역에 갔더니 예약한 열차가 결행된다고.

이럴수가.

 

한 시간 이상 기다리고 

30% 특별 할인받고 사건 해결.

 

우리가 배정받은 좌석은 마주보기 좌석.

젊었을 땐 이쁜 여자가 앉지 않나 기대했을 텐데.

 

 

 

 

서울역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고

서울돈까스에서 우동, 메밀국수.

영우친구가 샀다.

 

 

2박 3일 동안 21천보, 20천보, 17천보를 걸은

강행군이지만 즐겁게 보낸 여행.

날씨도 도와주었고.

 

무엇보다 포항친구들의 성원이 컸다.

다시 한 번 감사.

 

같이 간 친구들의 덕도 있고.

 

고맙습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