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관매도, 조도, 진도 2박 3일 (2)

난해 2024. 5. 3. 10:25

숙소에서 짐을 꾸려 나오니, 길에 핀 송엽국

남아프리카 원산, 번행초과 여러해살이풀.
소나무잎이 달린 국화라는 뜻.
두툼한 잎을 가졌다.
 
사철채송화라고도 하고.
(다음백과)
 
 
 
 

배낭을 지고 다시 식당으로

큰 키의 흑송들은 길 오른쪽에 도열해 있었다.
시간은 10시가 훨씬 지났고
 
숙소는 조용해서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파도소리 없는 섬의 숙소.
피곤한 탓도 있겠지.
 
 
 
 

길가에 열린 매실도 틈실했고

관매도란 이름에 걸맞게.

 
 
 

식당에 짐을 맡기고 세번째 트래킹에 나섰다

섬들은 여전히 올망졸망 중첩해 있었고.
 
 
 
 

관호마을 돌담길에서

벼락바위 가는 길은 시작되고.
이때가 11시.
 
엉골잔등이란 말이 재미있다.
엉골잔등은 능선의 제일 높은 봉우리.
바위능선이 험하다는 느낌을 주는 말.
 
 
 
 

벼락바위 가는 길

이길은 능선을 타고 가서 해안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람직.
 
 
 
 

로즈마리, 허브(약이나 향료로 이용되어 온 식물)

지중해 원산의 꿀풀과 상록관목.
향신료, 식용, 약용, 관상용 등으로 쓰임.
 
 
 
 

편안한 길로 시작

앞에 엉골잔등이 보인다.
 
 
 
 

능선들이 만만해 보이지 않고

멀리 노란 항로표지가 보인다.
 
 
 
 

험한 바위길도 넘고

 
 
 
 

흰꽃이 산을 수놓고

다도해의 올망졸망 섬들.
 
 
 
 

엉골잔등에 올라서니

우측으론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다리여.
바다와 섬을 연결하는 고리.
 
 
 
 

좌측으론 벼락바위로 가는 능선

벼락바위는 숨겨져 안보였고.
벼락바위는 관매 8경의 하나인 하늘담.
 
옛날 총각을 제주로 추대해 당제를 지냈는데
1년 동안은 처녀를 만나는 것을 금했다.
 
제주가 된 총각이 전에 사귀던 처녀를 만나자
벼락이 내렸고, 죽은 한 쌍은 다리여의
구렁바위가 되었다고.
 
 
 
 

친구들은 기다리고

멀리서 다리여, 벼락바위쪽을 바라보곤 하산. 임대장은 해안까지 내려가 지형을 살폈고.
 
 
 
 

올해 처음 본 메뚜기

 
 
 
 

이곳 쑥밭에서도

아침에 본 여인이 농약을 치고 있었고.
얼골잔등을 오르내린 시간은 한 시간.
 
벼락바위로 해서 해안가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
시간 제약도 있으니.
 
여행의 달인, 원사장도 관매도 방문은 처음.
이곳의 코스를 물어물어 왔었고,
입구에서 좀 헤맸다.
 
 
 
 

관매사랑 식당으로 회귀

점심으로 톳칼국수 한 그릇.
맛은 그랬고.
 
 
 
 

관매사랑 식당, 여사장과 총각과 작별하고

선착장으로 나오니
새섬두레호는 들어오고.
 
관매도와도 이별할 시간.
 
가거도, 만재도, 굴업도와 함께
기억에 남을 섬, 관매도.
 
 
 
 

하조도 창유항에 내려 콜벤을 타고

하조도 하얀 등대 앞에 내려,
등대를 보러 가는 중.
 
 
 
 

바다와 섬들을 보며, 길을 돌고 돌아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오세영, 1942-, 바닷가에서)
 
 
 
 

눈부신 흰 등대, 등대문화유산 29호

1909년 대한제국시대에 건립된 12m 높이 등대.
남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서있다.
 
 
 
 

조도 안내도

관매도도 조도면 안에 있는 섬.
 
새떼처럼 많은 섬이 모였다 해서 조도.
35개 유인도, 119개의 무인도가 있다.
 
 
 
 

꼭대기에 있는 운림정(雲林亭)

산사나이, 임대장 혼자 올랐고.
 
 
 
 

섬 하나 하나에 동심(童心)이 담겨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 속 집도 절도 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
 
간 사람이 없으니
올 사람도 없는 섬
뜬구름 밀고 가는 바람이
혹시나 제 이름 부를까 싶어
가슴 늘 두근대는 絶海孤島여!
 
옷 벗고 마음 벗고
다시 한 십년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等神
눈으로 말하고 
귀로 웃는 달마가 될까?
(임영조, 1943-2003, 孤島를 위하여)
 
 
 
 

유채꽃 핀 바다

 
 
 
 

차 속에서 쑥막걸리에 꼬마고동

그맛을 알랴?
 
 
 
 

오후 4시, 다시 배를 타고 진도항으로

 
 
 
 

우리를 반기는 유순한 진도개

 
 
 
 

4월의 비는 내리고

 
 
 
 

세방낙조를 볼 수 있는 해비치카페에서

커피 한 잔.
지산면 가학리 소재.
 
친절하고 예쁜 여종업원, 앞에 펼쳐지는
섬들과 관련된 전설을 가르쳐 주었다.
 
낙조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왼쪽 뒤 톡 튀어나온 섬이 손가락섬(주지도)

오른쪽 뒤 두 봉우리가 발가락섬(양덕도)
소재지는 둘 다, 조도면 가사도리.
 
낙조가 잘 보이는 지력산, 동백사의 한 스님,
노을을 가로지르는 학들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학을 따라 지력산으로 날았으나,
 
수행이 부족하여 바다에 추락.
장삼, 가사가  떨어진 곳이 장삼도, 가사도.
 
바지, 상의가 떨어진 곳이 하의도, 상의도.
발가락, 손가락의 경우는 양덕도, 주지도.

심장이 떨어진 곳은 불도.
 
 
 
 

빗속을 뚫고 달렸는데

붉은 것은 나무인지, 꽃이 핀 것인지.
 
 
 
 

숙소 근처, 쪽빛식당에서 생선구이+막걸리

의신면 초사리 소재.
 
 
 
 

식당주인은 진도 가요대상 수상자

노래를 청하니,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등
세곡을 서비스로 들려주었다.
 
흥이 나서 분위기를 맞추어 주었고.
대상 수상자인 만큼 멋들어진 솜씨.
 
여행의 이벤트는 이런 것.
 
 
 
 

이날의 숙소는 솔비치 진도

화려한 건물이었지만
공사 마감은 별로.
 
자다가 문을 여니 문짝이 덜컹덜컹,
친구들의 잠을 깨웠다.
 
지방업체에 하청을 준 것은 아닐까.
 
 
 
 

다음날(4/24, 수) 아침에 본 숙소 건물

잔뜩 검은 구름이 끼었고.
 
 
 
 

이날 여행은 어쩌지?

 
 
 
 

흰색, 빨간색 항로표지

사이로 배가 들어오라는 표시.
무슨 양식장인지.
 
 
 
 

적지 않은 배들과 섬들이 떠있고

 
 
 

우리가 기대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

 
 
 
 

건물을 나와 주변 산책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바다에는 구름이 일고

 
 
 
 

아침햇살, 눈부셔라

 
 
 
 

처음 본 다소곳한 자란

해남, 진도, 목포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
 
 
 
 

바닷가로 나가 험한 길을 걸었고

 
 
 
 

바닷가에 핀 갯완두꽃

전국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두과 다년생 초본,
땅속줄기, 종자로 번식.
식용, 사료용, 밀원용으로 이용.
(우리주변 식물 생태도감)
 
 
 
 

바닷가 고인 물 속에는

솔비치 건물이 보였고.
 
 
 
 

숙소로의 진입

가로막힌 목책계단을 뛰어넘어.
지저분한 바닷가 폐기물은 어디서나 문제.
 
 
 
 

아침햇살의 눈부신 반영이 있었고

 
 
 
 

숙소 앞에는 겹벚꽃 피었고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웠던 병꽃

연록색과 어울어진 분홍, 빨강.
미인대회에 나가도 되겠다.
 
봄햇살이 따가워지면 피기 시작하는
우리나라 토종꽃.
 
 
 
 

솔비치 신비의 바닷길로

 
 
 
 

빈배는 외로워 보이고

내 마음, 텅 빈 배처럼 비어있으면 좋겠다.
 
 
 
 

갈라진 바닷길

 
 
 
 

순식간에 물이 들어왔고

안내방송에 불구하고 송대감과 나는
건너갔다가 재빨리 회귀.
 
송대감 덕분에 첫날 아침 대용식을 먹었고.
항시 준비물 챙기는데는 일등.
 
 
 
 

물살이 빨라지더니

아무일도 없듯이 바다가 되고.
 
 
 
 

숙소로 돌아오자니

바다의 색은 여러가지.
 
 
 
 

요술 부리는 바다 그리고 섬

우리는 고군면 회동리 신비의 바닷길로.
 
음력 2월 그믐, 6월 중순 회동마을과 모도
사이의 바다가 갈라진다.  2.8km의 바닷길이
1시간 동안 완전히 드러난다고.
 
 
 
 

기도하는 할머니

옛날 마을 이름은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호동.
그래서 사람들은 가까운 섬 모도로 가기로.
뽕할머니는 명주실 뽑느라 소식을 못들었고.
 
마을사람들은 손녀, 달래만 데리고 떠남.
할머니는 뿔치바위에 올라, 달래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모도

기도의 결과 2월 그믐 사리때 무지개를 
내릴테니 그걸 밟고 섬엘 가라고 했으나
할머니는 기력이 다했고.
 
모도로 간 사람들은 물이 부족, 호동으로.
할머닌 달래를 만나고 영등신이 되어 하늘로.
사람들은 제단을 만들고 제를 지냈다.
 
마을 이름이 회동으로 바뀌었고
영등제가 열리게 됨.
 
 
 
 

의신면 초사리, 소담식당의 소품

10시가 다되어 소담식당에서 아침식사.
차돌배기 순두부.
 
 
 
 

식후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운림산방으로

연녹색의 첨칠산(485m) 아래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 빨간색이 어우러졌다.
 
소치 허련(1808-1893)이 만년에 그림을
그리며 기거한 곳. 그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을
보고 남종화를 시작했고,
 
초의선사(1786-1866), 김정희(1786-1856)와
인연이 닿게 되고 시, 서, 화에 능하게 됨.
 
윤두서(1668-1715)는 윤선도의 증손이며
정약용의 외증조.
 
 
 
 

3대 허림(1917-1942)의 목동

남농 허건(1907-1987)은 소치의 손자.
운림산방을 지금과 같이 복원.
 
남종화는 소치 허련의 가계에 의해
이어졌고.
 
 
 
 

5대 허준(1976-)의 여정1

남종화는 동양화의 한 분파로 북종화에
대비되는 화파.  문인(文人)화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짐.
 
남종화파는 당나라 수묵산수화의 시조로 
추앙받게 되는 왕유(699-759)로부터 시작.
 
우리나라는 18세기 전반기 남종문인화가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고.
 
 
 
 

여름숲이 되어가는 첨칠산

 
 
 
 

곧 그늘이 그리워지겠지

 
 
 
 

운림산방의 호수

 
 
 
 

운림사(雲林祠)에 모셔진 소치선생

 
 
 
 

붉은색과 어울린 호수

 
 
 
 

운림산방은 여러번 왔으므로

감흥도 덜해 쌍계사로.
절은 대공사 중.
 
첨찰산(485m)은 진도내 최고봉.
첨찰산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이고.
정상엔 봉화대가 있다고.
 
서해랑길 진도 8코스가 절을 지나간다.
 
 
 
 

작은 마가목이 흰꽃을 피웠고

추위에 강한 장미과의 한대수목.
경쟁에 밀려 산으로 올라가, 높은산 꼭대기
아니면 볼 수 없었으나
 
이제는 정원수로 인기가 있다.
흰꽃과 빨간 열매가 인기의 요인.
열매는 널리 알려진 약재이기도.
(박상진교수)
 
 
 
 

우화루(雨花樓)

이름이 운치가 있고.
 
 
 
 

대웅전 뒤에는

부드러운 첨칠산 봉우리가 둘.
 
 
 
 

승방 튓마루엔

밀짚모자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귀경길에 오르다가

 
 
 
 

진도 타워 전망대(80m)에 올랐고

 
 
 
 

진도대교 옆엔 케이블카

해남 문내면과 진도 군내면을 연결시키는 
한국 최초의 사장교, 진도대교.
 
사장교는 물 흐름이 빠르고 수심이 깊은곳에
설치한다. 양쪽에 높이 세운 버팀기둥 위에서
비스듬히 늘어뜨린 케이블로 다리 위의
도리를 지탱하는 구조.
 
울돌목(명랑)해협은 풍랑이 거세, 영국회사의
설계및 감리 하에 1984년 완공.
 
 
 
 

전망대도 둘러보고

요번 여행에서 바다를 너무 많이 구경해서
별로였다.
 
울돌목은 바다의 폭이 294m 내외.
 
1597년 이순신장군이 허름한 배 13척으로 
울돌목을 지나 서해안으로 북상하려던
왜군 전함 133척을 맞아 31척을 격파.
 
정유재란의 전세를 역전시켰다.
 
 
 
 

3시, 고창 고인돌휴게소에서

점심으로 우동 한그릇 들고,
양재역에 도착, 원사장 보내고,
 
탐라순대국감자탕에서
순대국에 소주 한잔.

 


원사장이 기획한대로 편히 즐겁게 한 여행,
관매도는 정말 마음에 들었던 섬이었고.
 
걸음수를 보면 첫날 16천보, 둘쨋날  26천보
마지막 날 14천보.
 
원사장 그리고 오선지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