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장마 빗속을 뚫고

난해 2020. 8. 7. 14:30

 

지금 나는 비에 갇혀 있습니다

갈 곳도 없거니와

갈 수도 없습니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이 축축한

무료

적요

어찌 이 고독한 나날을 다 이야기하겠습니까

비는 내리다간 쏘와! 쏟아지고

쏟아져선 길을 개울로 만듭니다

훅, 번개가 지나가면

하늘이 무너져 내는 천둥소리

하늘은 첩첩이 검은 구름

지금 세상 만물이 비에 묶여 있습니다

(조병화 1921-2003, 장마의 계절)

 

 

 

 

 

무료하고 적요한 장마에 지쳤는지

아산친구로부터 내려오라는 전갈이 왔다.

 

8/5(수)7:27분 무궁화열차를 타기위해 플랫홈으로

내려가자니, 용산역에 새로 설치된 손소독기.

손바닥을 넣으면 소독약을 자동으로 분사.

 

우한바이러스 국내 유입된지

벌써 반년이 훨씬 지났다.

 

 

 

 

차창 밖은 성하(盛夏).

 

 

 

 

요즈음 읽고 있는 호주출신 작가,

클라이브 제임스(1939-2019)의

'죽음을 이기는 독서'를 꺼내들었다.

 

2010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실의에 차있는 중,

큰딸의 책선물로 좋아하는 독서를 다시 시작했고,

지속적으로 글을 발표하다, 작년에 작고.

 

작가의 날카로운 비평과 아름다운 문장은

정평이 나있다

 

 

어떻게 보면 이 나이의 우리들에게도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이 안남았을 지도.

 

 

 

 

비에 젖은 너른 벌판.

 

이책에는 헤밍웨이(1899-1961), 폴란드 태생의

조지프 콘래드(1857-1924) 등의 책들과

작가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사회적 이슈, 세계대전, 미정치와 헐리우드

뒷이야기 등과 시공간, 주제를 초월한

그의 식견이 담겨져 있다.

 

케네디대통령은 복잡한 여자관계로 암살을

당하지 않았더래도 매장을 당했을 거라고.

관계한 한 여자는 조폭두목과도 관계를 했고.

 

 

 

 

외할머니와 이별하며 우는 아이와 엄마.

오랜만에 보는 기차역의 이별 장면,

승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8:57분, 온양온천역에서 친구를 만나,

11시에 도착할 문산, 수원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현충사둘레길을 돌기로 했고.

 

 

 

 

오랜만에 찾은 적요한 현충사.

 

1706년(숙종 32) 지방유생들의 건의에 따라

건립되었던 사당은 1962년 박대통령 뜻에 따라

확장되고, 사적으로 지정됨.

 

면적 16만 3천평. 아산 염치읍 백암리 소재.

유물관에 난중일기 등이 전시되어 있고.

 

 

 

 

장군의 말씀,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卽生 必生卽死)

 

요즈음 정권, 필사적으로 살려 하는 것인지,

죽으려 하는 건지.

 

 

 

 

언제나 보아도 잘 가꾸어진 소나무.

 

 

 

 

여해(汝諧)는 장군의 자,

자는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일종의 이름.

장군의 시호(죽은 후 행적에 따라 국왕으로부터

받은 이름)는 충무.

 

옛날에는 실명보다 자를 많이 사용.

 

 

 

 

현충사 또는 방화산(168m) 둘레길 시작.

다행히 장마비는 소강 상태.

 

 

 

 

급하지도 않은 황토길,

우리에겐 딱맞는.

 

 

 

 

깨+팥 밭.

팥밭은 정말 보기가 힘들다.

 

친구와의 정담은 계속되고.

여기저기 못보던 야생화도 보였고.

 

 

 

 

성도 많은 우리나라.

 

곧장가면 백제시대 축성된 꾀꼴(앵리)산성.

성의 모양이 꾀꼬리집 같다고.

 

그리고 수한산 물한산성, 길이 600m의

돌무더기, 성곽 잔해 만 남은 석축산성.

 

우리는 우회전.

 

 

 

 

요번 장마로 생긴 Red Valley.

 

 

 

 

이곳에 방화림(防火林)으로 은행나무

600그루가 심어져 있다.

 

두꺼운 껍질 때문에 불에 잘 타지않는 은행,

동백, 굴참나무 등이 방화림으로 이용된다고.

 

가을이 되면 번잡한 염치읍 은행나무거리 보다

이곳을 찾는 것이 더 운치가 있으리라.

 

 

 

 

이곳에 3.1운동 사적지도 있고.

 

 

 

 

잡초로 속을 썩이는 미국자리공이

유독 이곳에 많이 퍼져 있다.

키 1m의 유독성 식물.

 

 

 

 

하산길로 접어들었고.

 

 

 

 

사이 좋은 솔, 벚나무.

 

 

 

 

길가의 한 집, 잘 가꾸어진 화초가 많았다.

 

잘 자라고 있는 천사의 나팔꽃.

가지과의 남아메리카 원산 독초.

이름에는 천사가 붙었지만 독초.

 

 

 

 

피기 시작하는 목백일홍.

 

 

 

 

Swordlily, 글라디올러스.

붓꽃과 구근식물로 국산품종이 개발되었다고.

날렵하게 뻗은 잎이 검을 닮았다. 꽃말은 밀회.

 

꽃대에 달려있는 꽃송이로 연인들끼리

약속시간을 정했다고. 예를 들면 두송이가

피었으면 두 시가 약속시간.

 

마침 여주인이 나와있어, 어떻게 그렇게

꽃을 잘 가꾸냐고 말했더니

입이 함박꽃처럼 펴졌다.

 

 

 

 

백암리마을에는 분홍색 상사화가

무리지어 피어있었고.

 

 

 

 

다시 마을에서 산길을 오르려니

앙증맞은 석류 열매, 꽃이 곧 떨어지겠지.

 

주차장에 돌아오니 10:45.

1시간 반 정도의 산보,

만보에 좀 못미쳤다.

 

 

 

 

11:00, 온양온천역에서 문산, 수원친구 태우고

옥천으로 출발하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빗속 풍경은 사람들을 우수에 잠기게 하고.

옛날엔 소 돼지 떠내려가는 풍경도 있었지만.

 

2년전 뉴질랜드 남섬 여행시에는

이보다 더한 빗속을 뚫고 자동차여행을 했었지.

 

도로가 유실되어 이곳저곳이 붕괴되고,

막힌 길을 이리저리 돌았던 기억,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

 

 

 

 

뚝방길 나무들은 가지런했지만

개천엔 흙탕물결이 거셌다.

 

 

 

 

폭우속에 내비도 헤매고,

인간내비도 헤매, 출발한지 두 시간 반만에

옥천 청산면사무소 도착(한 시간 이상 지체).

 

폭우는 수그러들었고, '청산에 살어리랏다'하고

써붙인 청산면사무소 마음에 든다.

 

 

 

 

아기자기한 청산면 소재지.

보은과 청산 사이에 금강 지류 보정천이 흐른다.

 

충북 남쪽에 위치한 옥천은 대전이 생활권.

인구는 52천. 신라때는 고지산군.

청산군이 옥천군으로 편입됨.

 

정지용시인의 고향이고, 임진왜란때 의병장

조헌의 고향. 금강유원지(휴게소)가 있고,

 

김옥균이 명월이와 운둔하여 있던 곳엔 청월정.

기생 명월이는 이곳 절벽에서 투신.

 

 

 

 

면사무소 옆, 이곳의 맛집, 선광집엔

손님이 장마에도 바글거렸지만,

뜰에는 비맞은 인동꽃.

 

인동초라고 불리지만 덩굴성관목. 겨울에도

줄기가 마르지 않고 5-8월 개화. 흰색꽃이

노란빛으로 변해 간다. 분홍꽃도 있고.

 

식당 입구, 이쁜여인이 체온도 측정하고,

방문록에 기록하라 하고, 손소독제도 뿌리라 하고.

 

외부에서 청정지역으로 바이러스가 들어올까

하여 철저히 규칙을 지킨다. 서울 식당들에도

이런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까.

 

 

 

 

도리뱅뱅이+튀김+어탕국수+국순당막걸리.

도리뱅뱅이, 튀김 대자가 단돈 15천원,

어탕국수 6천원. 얼마나 안가한지.

 

도리뱅뱅이는 충청도 요리로 동그랗게 빙어,

피라미를 돌려 담아 조린 음식.

 

 

 

 

백두나라 백성들과 함께.

 

타계한 지형친구와 함께 강원도 하조대에 본부를

두고 7-8년 여행친구가 되었던 팀원들.

 

지형의 외손자가 올해 서울상대에 입학했다고.

우리가 농장에 들렸을 때는 코흘리개였었는데.

 

 

 

 

식후 인근 커피피렌체에서 커피 한 잔.

심심산골 청산에도 외국카페가 침입했구나.

 

 

 

 

한때 경남, 전남 여행본부장, 하동의

안규철친구와 통화.

 

파란 목도리를 둘렀는데

얼굴과 목소리는 멀쩡.

 

요새도 하루 주량이 소주 4병.

목도리를 하고도 마실까?

 

 

 

 

청산군의 옆동네는 옥천 청성면.

 

8년전 8월, 임병흡친구와 고라니사냥과

천렵을 했던 곳.

 

 

 

 

이때 쓰러진 고라니의 애처러운 눈.

 

 

 

 

보정천에서 잡았던 물고기.

 

 

 

 

이때 병흡친구들이 잡았던 쏘가리.

 

 

 

 

병흡친구들이 잡았던 자라.

 

이때 여행기를 어떻게 읽었는지, 이곳이 고향인

산푸름이란 친구가 댓글을 달았는데,

'우리 고향에 오시어 자연파괴하시면 안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젠 살생을 할 나이도 지났고.

 

병흡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문적인 꾼들과

헤어지고 손자들에게 사냥, 천렵꾼 실습을

시키고 있다고.

 

 

 

 

3:30 청산을 출발 아산으로 가는 길,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파란 하늘이 보였고.

 

 

 

 

2시간 안걸려 5:25분 온양온천역 근처

맛집, 신정식당 도착.

 

 

 

 

물밀면 한 그릇씩.

다른 사람은 괜찮지만, 문산친구 때문에

저녁을 일찍 들어야 한다며.

 

아산친구, 지난 칠보산 각연사 여행시 다쳤던

손가락, 아직도 거푸집을 안풀었다.

 

 

 

 

상경열차는 19:57분발 관광열차, 서해금빛열차로.

West Gold? 서부로 금캐러 가나?

장마철이라 20분 이상 연발.

 

아산, 온양온천, 예산, 홍성, 광천, 대천,

장항, 군산을 거치는 관광열차는 안락의자에다

온돌마루실, 족욕카페가 있다고.

 

 

 

 

열차 외양은 금빛,

내부 천장, 전망창도 그럴듯하고

 

코로나 때문인지 두 좌석에 한 자리씩

자리 배치.

 

 

 

 

완전히 개인듯하기도 하고.

 

 

 

 

보이는 건물들의 디자인, 색이 세련됐다.

축사의 빨간색도 좋아보이고.

 

 

 

 

아홉시 넘어 집에 도착.

 

장마 속 여행이었지만, 그런대로 걷기도 했고

못먹었던 도리뱅뱅이도 먹었고.

 

운전, 점심식대를 지불한 아산친구,

밀면값을 낸 문산친구,

차표 끊은 수원친구, 모두 고맙네.

 

그러고 보니 나에겐 공짜여행.

 

 

 

 

여행 다음날도 폭우가 내렸고.

퇴직하고 평택에서 메론농사를 짓고 있는

김문수박사로 부터 전화가 왔다.

 

올 여름 농장 초대는 취소해야 되겠다고. 이날의

폭우로 하우스가 침수가 되어 추석을 바라보는

묘목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미 두 번이나 날 잡았지만 비때문에 취소했었고.

피해복구차 방문한다 했더니, 도울 길이 없다고.

피해가 많아 걱정했더니, 한 두명 피해 입었냐고.

 

껄껄거리는 그에게서 농심을 보았다.

그는 요즈음도 신품종을 육성 농가에 보급하고

중국 등에 씨앗을 수출한다.

 

긴 장마에 피해입은 사람들이 한 둘 아닌데

놀러 다니는 것은 죄? 그래도 돈을 쓰며 돌아다녀야

경제도 돌아가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