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양평에서 원덕 사이의 벚꽃길을 걸으려고
나선 길, 올해 처음 지나친 두물머리.
태백시 대덕산(1,307m) 검룡소에서 시작한 514km 한강은
이곳에서 금강군 옥밭봉(1,241m)에서 시작한
북한강과 합류한다.
부조리 투성이의 인간사회와는 달리
남과 북을 따지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 흘러
서해에 이르고.
우뚝 서있고.
작년만해도 미분양이었는데-
용문으로 이사하여 건강을 회복한
손재완친구와 상봉했고.
버드나무골 양근군(楊根郡)과 남한강 유역 낮고 넓은 들,
지평현이 합쳐진 양평.
지평에선 옛날 야별초 출신들이 몽고군을 격파했다고.
양근이 쎈 남자들 때문에 경로당이
남녀로 분리되어 있는지.
화(花)류(柳)가 잘 어울려 있다.
화류는 우리나라 놀이문화의 시작이라 할까.
나즈막한 산줄기가 강줄기 뒤로 부드럽게 뻗어있고
왼쪽 강가엔 화사한 벚나무와
푸르러진 버드나무가 도열해 있다.
올해 방문이 좀 늦은 느낌.
삼사일 빨랐아야 벚꽃이 더 화사했을 것 같다.
허기야 주말엔 봄비가 있었지.
봄비로 차분해진 풍경이고.
상춘객도 작년보다 적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오로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라고 써있었는데-
지역홍보에 더 열심인 것 같았고.
벚꽃은 이미 봄바람에 지고 있었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벚꽃나무 도열한 아스팔트
길을 걸었지만 일부는 강가를 걸었다.
시간이 흐르면
꽃은 시들고
나뭇잎도 떨어지고
짐승처럼 늙어서
우리도 언젠가 죽는다
땅으로 돌아가고
하늘로 사라진다
그래도 살아갈수록 변함없는
세상은 오래된 물음으로
우리의 졸음을 깨우는구나
보아라
놀랍고 아름답지 않느냐
(김광규, 1941-, 오래된 물음)
잔잔한 가슴에 누가 돌을 던졌나?
뉴질랜드 남섬 와나카호수 물속에 있는 버들,
이곳의 버들.
여인의 간드러진 허리를 연상케도 하지만
이른 봄, 연한 녹색의 버들이 좋다.
벚꽃, 푸르른 물결, 연초록의 버들
그리고 지난 가을의 흔적 등의 연한 조화.
이곳에서 직장 동년배 모임의 사진작가를 만났는데
강가의 철봉 울타리에서 넘어오는 여인들을 도우랴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반가움을 표시하랴
정신이 없었다.
열명의 친구들이 참가하니
먹을 것이 지천.
옛날 호빵, 호떡, 덩실떡, 두부부침, 호두과자 등등.
그리고 한 모금도 안돌아가는 소주.
우리가 먹을 것을 주기를 기다리는 직박구리.
요즈음 새들은 사람을 보아도 도망치지를 않는다.
참새목 직박구리과에 속하는 27-30cm 크기의 새.
흔한 텃새이고 시끄럽게 떠들며 군집생활을 한다고.
귀깃의 갈색 반점이 특징.
무리지어 피면 더 예뻐보이는 오랑케꽃.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올 때 즈음 피는 꽃.
양치기소년 아티스가 아름다운 소녀, 이아의
사랑을 모른척하자 그녀가 죽어서 피어난 꽃.
타계한 우리친구 조동진이 부른 제비꽃.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앞서 가는 친구들 따라잡기가 힘들었고.
이 친구들 매년 젊어지는지.
수원의 전재혁친구, 강남의 송승현친구가 오랜만에,
재완친구, 도원친구도 그렇고.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하게 마련인가 보다.
벗이 좋아 벚꽃구경 나왔는지도 모르고.
70노인네가 장인과 어머님, 두 노인네를 모시느라
얼굴을 볼 수 없는 하태욱친구가 보고 싶고.
너무 오래 사는 것도 자식들에게 폐이지.
튀긴 좁쌀을 붙여놓은 것 같은 장미과 조팝나무 꽃.
'소상강(양자강 지류) 기러기는 가노라고 하직하고
강남서 나오는 제비는 왔노라고 현신하고
조팝나무에 비쭉새(직박구리)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요'하는
별주부가 육지에 처음 올라와 처음 둘러보는 장면에
조팝나무가 나온다(별주부전).
바다 가마우지는 백령도에서 보았지만-
우리나라에선 2003년에 처음 민물가마우지가
발견되었다고.
80-92cm 크기의 보기 드문 텃새.
잠수 후 햇볕에서 몸을 말린다.
현덕교를 지나면 흑천을 따라 꽃길이 이어지고.
왼쪽에 추읍산(583m)이 보이고.
인생의 덧없음과 비유되는 꽃.
꽃 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꽃 지는 봄 산처럼
꽃 진 봄 산처럼
나도 누군가의 가슴
한번 울렁여 보았으면
(함만복, 1962-, 마흔 번째 봄)
우린에겐 칠십 번째 훨씬 넘은 봄.
바닥에 검은돌이 많은 흑천.
양평 청운면 도원리 성지봉에서 발원하고
길이는 37km.
우리가 이날 걸은 길은 양평 물소리길 6개 중
하나인 버드나무나루께길, 10.8km(18천보).
시원하고 웅장한 물소리를
제일 잘 들을 수 있는 길이다.
남한강물이 큰 소리를 내며 흐르지는 않지.
흐릿한 풍경도 좋다.
진하고 달콤한 꽃향기, 쥐똥나무 향기만큼 진했다.
도사는 구미벚꽃이라 했지만
꽃받침이 녹색인 자두(紫桃, 자색 복숭아)꽃.
이날 처음 자두꽃 향기에 취했다.
오얏리자를 쓰는 사람에게 자두향이 풍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옆의 친구들은 오리 종류인 것 같기도 하고.
작년보다 가마우지 개체수가 줄었다,
물고기들이 적어서 그런지.
개군면 공세리 신내들에 있는 강호해장국에서
선지와 양이 많이 들은 해장국 한 그릇씩.
작년엔 맛있다고 네 사람이나 포장을 해갔다.
서비스로 봉삼(봉황삼)주를 여주인이 내와
맛도 보았고, 태욱친구는 장인어른 드린다고
얻어갔었다.
봉삼주 내놓으라고 졸랐더니
대신 민들레, 미나리로 무친 나물을 내왔다.
씁쓰럼하지만 향내 나는 나물.
병헌친구와 흥구친구가 탐내더니
두 친구 모두 한 봉지씩 얻어갔다.
여주인의 친절함이 돋보이는 맛집.
봉삼(백선)은 운향과 식물 중 유일하게 나무가
아닌 여러해살이풀. 꽃의 향이 좋고 이쁘기도 하고.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
나올때마다 음식값을 내려는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고.
느긋하게 한 잔 걸치고 나오니 발걸음은 느려졌지만
여유가 있는 마음들.
두 셋씩 떨어져 가야하는데도
무슨 이야기들이 그리 많은지.
오늘 친구들의 이야기거리는 서울 부산 시장선거.
내가 요즈음 읽은 책은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가
지은 레 망다랭.
레 망다랭은 특권층 지식인을 폄하하는 표현.
이책의 내용은 2차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의 불안과 갈등,
그리고 환멸을 그렸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프랑스는 너무 미약한 존재였고.
요즈음 우리가 겪고 있는 좌우 대립도 유사하다면
유사하다 할 수 있고.
나치에 동조한 사람들, 친일파도
일맥 상통하고.
허지만 지식인들은 레지스탕스 운동을 거쳤고
대부분 좌파에 쏠려있었다는 점은 크게 틀리고.
집권층의 민주화 운동과는 차원이 틀리다.
70년 이상의 시간 차도 있고
우리의 마음도 봄바람에 가볍게 날고.
안(정신과 의사), 앙리,
안의 남편, 뒤브뢰유 등이 레 망다랭 주인공.
안은 보부아르, 앙리는 알베르 까뮈(1913-60),
뒤브뢰유는 장 폴 싸르트르(1905-1980)를
모델로 했다고도 한다.
하여튼 이소설이 보부아르의 자서전임에
틀림없고.
세상을 구하겠다고 날뛰는 남자들과 울고 미쳐가는
여자들을 그렸는데
보부아르와 미국작가 넬슨 올 그런의 연인행각을 그린
안과 루이스의 연인관계도 볼 만하다.
싸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부럽기까지?
서로 간섭을 안하지만 떨어질 수 없는 관계.
그나마나 우리나라 지식층들, 백성은 너무 허약하고
집권층은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역사적으로 허약했던 우리나라,
주위 열강의 아귀다툼 속에서도 집권층과 피지배층의
괴리 속에 나라는 외세에 눌리고,
그 원인을 강국의 침탈이라고 핑계대는
짓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제우스가 고모벌 되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쉬네와 동침,
얻은 일곱 자매가 무사이온. 영어로는 뮤즈.
시, 음악을 포함한 학예의 여신.
이들이 사는 집은 뮤지엄.
쉐르빌은 편안한 마을이라는 뜻의 불어.
할미는 손자를 업고 있고.
나이가 들수록 부부는 정다워져야 하는데-
두 여인의 몸짓이 나른하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야 할 텐데-
무슨 넝쿨인지 벌써 등에 뻗쳐있고.
암놈 앞에서 화려한 날개를 펴보이던 숫놈 공작새는
안보이고 토끼들만 우리 안에 있다.
이집은 집주인이 먼데 가있는지 작년 그대로이고
박태기꽃만 화려하게 마당을 지키고 있고.
튜립과 수선화, 장독 그리고 꽃나무 그림자.
매실밭의 홍매화는 말고.
역시 벚꽃 보다 진달래가 내 정서에 맞는 것 같다.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꽃이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천양희, 1942, 너에게 쓴다)
고학년과 입학한 학생들만 등교한다는데-
교정은 조용하기만.
키도 제법 크다.
유다가 서양박태기나무에 목을 달았다는데-
이정도의 키는 되어야겠지.
내년 봄이 되면 또 이곳을 걸어야겠지.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오니 다섯시.
재활용 스레기 분리배출도 해야겠고.
친구들 덕에 또 하루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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