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토) 8:30분, 중곡역 1번출구에서 네 친구,
진천으로 출발.
세류역에서 출발한 아수문팀 5명은
농다리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음성휴게소에서 호두과자에 커피 한 잔.
아수문팀을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주말이라 도로는 붐볐고
한 차례 길을 헛돌았다고.
주변의 농다리전시관을 관람했고.
인근을 한 바퀴도니,
농다리(수월교, 비가 많이 오면 천이 다리를 넘치는
다리) 유래비도 있고.
지도를 보면 굴티마을에서 미호천에 놓여있는
농(籠)다리를 건너, 고개를 오르면
초평호(草坪湖, 옛 미호지)가 펼쳐져 있다.
이곳은 상산임씨 집성촌,
천년 넘게 상산 임씨들이 살아온 천년세거지.
임진왜란때 의병이었던 임수전,
명나라 원군으로 강홍립군으로 출정하여
만주에서 전사한 임현,
부자의 충절을 기린 부자 충신문.
야별초의 수장, 임연(상산 임씨 중시조)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
문백농협 장월지점 미니하나로에서
건전지를 사서 하이패스 전지를 갈고
선촌서당을 방문키로.
미니하나로 여직원 늘씬하고 친절했고.
상산(常山, 진천의 옛이름) 8경의 하나 평사낙안.
이곳의 10리 하얀 모래밭과 기러기떼가 볼만하다고.
농다리 위에 쌓인 흰눈의 정취,
농암모설(籠岩暮雪)도 상산 8경의 하나.
선촌서당은 하동 청학동 출신 김봉곤(1967-)
훈장이 가르키는 배움터이나
코로나로 휴장 중.
그는 교육자이자 시인.
매스컴을 타자 가수, 영화배우, 감독도 했으나
20억이 훨씬 넘는 부채로 은신 중.
이곳 서당 등에 과잉 투자를 한 탓.
TV를 안보는 나에겐 생소한 인물들이지만
친구들은 잘도 알았다.
나는 외계인.
김다연 홍보물 투성.
화환이 온듯.
인생이 일장춘몽인 것을.
주차할 곳이 없는 지경.
주차장 옆의 징검다리,
이 또한 정겨웠고.
마침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호천(美湖川)은 충북 서부를 남서류해
금강으로 흘러드는 강.
음성 보현산(482m) 북쪽 계곡에서 발원해
진천, 청원, 충남 연기를 거쳐 금강으로.
9명이 다리를 건넜고.
조선환여승람에 건조내용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굴티마을(구곡리) 앞 세금천에 축조된 돌다리.
사력암질의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안으로
차곡차곡 들여쌓았는데,
크기가 다른 돌을 적절히 배합, 서로 물리게,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게 쌓아
유속을 견딜 수 있게 하였다.
28칸 교각이 유실되어 25칸만 있던 것을
2008년 복원. 길이 93.6m. 폭 3.6m.
교각 1.2m. 교각 사이 0.8m.
교각위에 170cmx70cmx20cm(두께) 장대석
2개를 나란히 얹음.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
천년을 견딜 수 있었다.
임장군이 매일 세금천에서 세수를 했는데
추운 겨울날 젊은 부인이 아버지가 돌아가셔
친정을 가려고 내를 건너려 했다.
이에 임장군이 용마를 타고 다리를 놓았다고.
또 다른 전설은 농다리 상판이 뜨면 큰 재앙,
기상이변이 나거나 큰 인물이 죽는다고.
동학혁명, 박대통령 서거가 그 예.
초평호 밑부분에 미호천이 흐르고.
하늘다리까지 가는 3코스가 5km정도.
우리는 하늘다리를 건너
청소년수련원, 카누경기장을 지나
호수 윗쪽을 걸어 붕어마을 근처까지.
미르길의 미르는 우리의 순수한 말,
용을 뜻한다고.
진천군은 충북 북서부, 인구 84천의 농업이 주인 지방.
15년간 인구증가율 11%.
군내 공업이 활기를 띠어 인구는 증가 추세.
동쪽에 초평면, 남쪽에 문백면.
삼국시대 고구려땅이 신라땅으로.
1413년(태종 13년) 진천현으로.
차령산맥 지맥이 군의 서부에서 남북으로 뻗어
500m내외의 구릉지를 이룬다.
북동, 중앙부 저지대가 하천 평야.
김유신이 진천에서 태어나 그의 태가
길상산에 묻혔고 길상사에 영정이 있다.
이상설(1870-1917)생가, 사당이 있고.
선생은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되었고,
순국때까지 국권회복운동에 참여.
의좋은 형제가 어머니를 서로 모시려하니
원님은 살아있을 때는 진천에서 동생이,
사후에는 형이 모시라고 판결했다고.
실제 용인에서는 깊이 파야 물이 나온다.
물이 나오는 곳은 산소자리론 부적격.
장수및 말 발자국이 있다.
임장군이 다리를 놓기 위해 큰 바위를 메고
용고개를 내려와서 이곳을 지날 때
너무 무거워, 말 발자국이 생겼고
장군이 뛰어내리는 순간,
장군의 발자국이 찍혔다고.
아이고 먹고싶어.
저수지에 수몰된 부자마을 사람들이
스님의 시주를 거절하자,
스님은 '앞산을 깍아 길을 내면 더
부자마을이 될 것이다'라고말했다.
마을사람들 그대로 하니 피가 흐르고
마을은 망하고 말았다고.
지형이 용의 형상인데 허리를 깍아
길을 내니 용은 죽었기에 살고개.
'얼굴 하나야
손바닥으로
포옥 가릴 수 있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 만하니
두 눈을 꼬옥 감을 수 밖에'
(정지용, 1902-1950, 호수)
유재건친구가 열애할 때 흥얼거렸었지.
지금 육신은 회복되었지만
친구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초평면 화산리에 있는 초평저수지는
1961년 미호천의 상류를 막아 흙댐으로 축조.
1984년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개수.
저수량은 3배가 되었고.
넓이는 50제곱km.
군내 가장 큰 저수지.
베스만 잡히네.
검정우럭과의 긴 방추형 미국 원산 물고기.
크기는 25-50cm.
호수나 하천 흐름이 느린 곳을 좋아함.
공격력 강하여 생태계를 파괴.
옛날에는 비료로 쓰였으나 베스요리가 인기라고.
쥐포 원료로도 사용되고.
'깊은 산
외로움 거느리고
바다보다 깊은
파문 속에 내리면
메아리 산울림 되어
울음 우는 호수'
(권영민, 1948-, 호수연가)
산은 깨어나고
호수는 울음을 그치고.
두타산 세신이 내려와 담소를 나눈 바위.
우기에는 빗물이 장관의 폭포를 이룬다.
2021. 1-7월 방영된 드라마.
정통 궁중요리의 손맛을 타고난 영신과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과 성장을 그린.
하늘다리, 청소년수련원길을 따라 계속 걸었고.
한반도 지형을 보려면 오른쪽 전망대를 올라야.
점심 후 길을 돌아섰다.
당초는 붕어마을에서 유명한 붕어찜을
먹기로 했었는데.
노박덩굴과 상록관목. 크기는 2-3m.
해안 산기슭에 많이 자라고
정원용, 울타리로 애용된다.
병헌친구는 호랑가시나무에
가시가 없으니 호랑나무라고.
코로나, 저리 가라.
편마암의 일종이겠지.
청소년수련원, 충북 카누경기장을 지났고.
'슬플 땐
울 수 있도록
마음 속에 호수를 두어두자
출렁이며 가라앉으며
하늘의 높이만큼 깊어지는--
거뭇거뭇 물고기
훤히 보이는
투명한 호수를 두어두자
눈물은 가장 맑은 꽃이어니
자신을 위로하는 자신이어니
(정숙자, 1952-, 호수)
석기, 청동기시대 한반도 중부 이남지역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 지금의 참나무처럼.
지금은 생존경쟁에 밀려 그저 그런 잡목.
옛날 임금의 시신을 감싸는 목관으로 쓰인 나무.
회갈색 나무껍질은 세로로 잘게 갈라진다.
가을, 진한 갈색으로 익은 수 많은 열매가
솔방울 같이 날렵하게 보이고.
잎은 가죽나무와 비슷.
굴피집(굴참나무 껍질)의 굴피가 아님.
(박상진교수)
굳게 잡은 남녀의 손.
초평호는 이름난 낚시터.
좌대형은 7-8만원,
팬션형은 8-10만원,
원목형은 10-12만원.
여주인 얼마나 친절하던지.
여주인이 찍어준 사진.
구지목은 아홉개 가지가 사이좋게 자란 나무,
우리들처럼.
두 백두, 무얼 하냐?
귀로에 들어섰다.
전화를 하면 보트가 나온다.
붕어찜 등을 취급하는 음식점.
그곳에서 점심하자고 제의했었지만
아홉명이 타면 배가 뒤집힌다나.
호수에 새들은 많이 안보였고.
사진 출품자들은 철수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곳엔 천년이 붙은 명물이 많다.
이날 걸은 거리는 18천보.
이곳에서 안성장터에서 장터국밥 먹는다는
아수문팀 이별하고.
우리는 군자역에서 해산.
친구들 고마웠네.
여행을 기획한 재혁친구, 운전하느라 고생한
지탄, 흥구친구에겐 특별한 감사.
그나마나, 차건동친구가 보내온
히말라야, 야생화 사진이 있는 내년 카렌더를
잊고 못가져 갔네.
다음 산행시 나누어 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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