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 그림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창가에 덕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김용택, 1948-, 6월)
6/19(토) 한강철교를 지나 오랜만에 인천으로
6월 바람이 부는 맑고 시원한 날.
인천역에서 11명 모여 차이나타운(중구 북성동)으로
젊은 친구들, 11시 조금 넘었는데 배가 고프다고.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이지역이 청의 치외법권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긴 차이나타운.
산동출신 중심으로 상인, 노동자, 요리업자,
채소를 공급하는 농부들이 들어왔다.
1971년 '외국인 토지 취득및 관리에 관한 법'
시행에 따라 1980년말까지 퇴락하다
1990년 한중 수교후 부흥.
현재는 관광특구.
공화춘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신승반점에서 짜장면 한 그릇씩.
1905년 짜장면이 태어났다는데
산둥에서 온 노동자를 위한 음식이었다고.
점심때가 안되었는데도
주말이라 그런지 만원.
김현직친구가 쏘았다.
인천역에서 월미도까지 운행하는
월미바다열차는 승차권 매진.
우리는 큰길을 따라 월미(月尾)공원으로
섬의 모양이 반달꼬리처럼 휘어졌다해서 월미.
옛이름이 어을미. 조선 후기에는 행궁이
설치되어 18c전반까지 존속.
1920년 돌축대를 쌓아 연육도가 됨.
섬둘레 1km, 육지거리 1km였던 섬.
남쪽에 소월미도가 있고
인천내항의 북서쪽 방파제 역할을 하는 섬.
인천 개항후 외세의 각축장이었고
일제때는 군사기지, 인천상륙작전 전초기지.
1980년 이후 관광지, 놀이공원이 조성되었고
2001년 제2함대가 평택으로 이전하자
월미공원이 조성되었다.
길가의 인천내항 곡물저장용 사이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세계 최대 야외벽화.
공원입구를 지나 한국전통공원으로.
경복궁 후원에 있는 애련지(愛蓮池)
애련지보다 못하지만
과히 보기싫지는 않고.
이곳에도 있는 불로문(이재춘친구 사진)
늙지 않으려고 전부들 문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꽃사슴도 볼 수 있었고.
인천은 1949년 시가 된 우리나라 제3의 도시.
인구 295만 명.
개항 이후 급속히 발전된 도시이며
1960년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되자
경인공업지대의 중심축이 되었다.
백제 미추홀, 고구려 매소홀.
옛날의 인천은 관교동이 중심이었으나
1883년 제물포항 개항 이후 항구도시.
인천 남구가 미추홀구로 개명.
영종도 등 128개의 섬이 있고.
산둥성의 웨이하이, 텐진을 연결하는
여객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월미도길에는 한국사이민박물관이 있고.
1902년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자 102명을
태운 갤릭호가 인천에서 하와이로 출항.
공원내의 숲길
6월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고.
정원에 있는 월휴정에 올라 내려다 본 정경.
이곳 정자에서 한 장.
백발이 성성.
신영우친구는 처음으로 결석.
아들이 마련하여 종합검진을 받았더니
맹장에 혹이 있다고 하여
다음주에 수술.
별일은 없을 것이고.
담양 소쇄원의 제월당(霽月堂) 터
중종때 스승 조광조가 유배되자, 양산보(1503-1557)가
낙향하여 거처하던 집이 제월당.
제월은 비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빛.
함안 칠원면 무기리에 있는 국담원(菊潭園)
주재성(1681-1743, 호 국담)이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자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연당.
그는 학자이며 의병장.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정(芙蓉亭)
1707년 지은 택수재를 1792(정조 16년)년
고쳐 지은 정자.
머리 디밀어 사진도 찍고
경복궁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 굴뚝도 돌아보고.
우리는 6월의 숲속으로
인천상륙의 전쟁 포화에서 살아남은
월미 평화의 나무들.
은행, 느티, 벚, 상수리, 소, 화백나무 등
70-244세 나무들.
숲 속 길가에는 수국, 산수국이 한창
수국은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꽃.
잔잔하고 평안한 느낌.
식물조사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온
화란인 주카르느(당시 28세)는 기생 오키다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도망가버렸고.
학명에 그녀 이름을 남겼다.
수국은 변심한 애인처럼
피는 시기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사람들의 품종개량으로
석녀가 되었고.
산수국, 등수국은 생식기능이 있으나.
(박상진교수)
이곳에 있는 추모동산
황해도 청단군에 있는 용매도 실향민이
전나무를 심어 조성한 추모동산.
1950. 9. 15. 인천상륙작전 3일 후 용매도
청년결사대는 의거를 일으켜 성공하고
해군의 지원을 얻어 4,300명이
자유대한 품 속으로.
대통령을 비롯 집권층의 철부지들
자유의 귀함을 알기나 할까.
국민은 배곯는데 떵떵거리는
이북의 집권층에 절절매기는 잘 하지만.
마편초과의 작살나무꽃
가을 초입부터 낙엽이 뒹구는 늦가을까지
귀여운 보라색 구슬을 매다는 작은 나무.
다른 나무들과 무모한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사이좋게 살아간다.
꽃이 작아 벌, 나비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마주나기로 나는 중심가지와의 모양이
고기잡이용 작살을 닮았다고.
(박상진교수)
만나면 농을 하고 즐거워하는 친구들(이재춘친구 사진)
전재혁친구가 새마을 돼지 이야기를 했다.
옛날 농로가 새마을사업으로 넓은 농로로 변하자
돼지주인은 씨돼지를 손수레에 태우고
동네 암퇘지한테 데려 가곤 했던 시절.
숫돼지, 생각만 나면
손수레에 올라 타더라고.
휴식과 간식의 시간(이재춘친구 사진)
이날의 인기메뉴는 병헌친구의 브라우니와
재춘친구의 봉지 냉커피.
초코렛 케이크 브라우니도 있고 스코틀랜드
요정이나 꼬마도깨비, 브라우니도 있고.
브라우니는 헛간에 사는데 모습을 못보지만
청소 등 집안일 하는 소리, 장난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산파를 실어나르기도 하고
붕붕거리는 벌떼들을 잠잠하게 하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들을 위해
크림, 빵, 우유 등을 남겨야 했다고.
뒷짐지고 오르거나 걸으면
등이 곧아진다고.
우리는 월미공원 전망대에 올랐다.
과거와 현재, 100년전과 현재를 비교한 사진
좌로부터 뒤에 원적산, 함봉산, 만월산,
소래산이 있고.
앞은 옛날의 소월미도.
우리가 있는 월미도와 사이에 갑문이 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갑문을 이용
배를 내항으로 이동시킨다고.
송도 국제도시.
오른쪽에 인천대교가 있고.
좌로부터 3부두, 송도국제도시, 4부두.
좌로부터 컨테이나전용부두, 자동차전용부두,
연안부두, 인천대교, 무의도 순.
앞쪽에 갑문이 있고.
영종지구
겨울의 월미도
왼쪽에 우리가 지나왔던
곡물저장사이로가 보이고.
영종도와 월미도
전망대에서 내려와 월미공원
차들의 종점.
월미산 정상(108m)
'산과 바다를 품어라'
내 가슴이 그렇게 넓었으면.
그래도 정상에서 한 방 찍어야지.
친구들은 태욱친구가 좀 여위웠다하고.
그의 어려운 실정을 모르는 모양.
인천상륙작전 당시의 맥아더
풍전등화 같은 한국전쟁의 전세를 대역전,
세계전사에 빛나는 상륙작전.
조경진친구의 아버님, 초급장교로
이 작전에 참여하셨다고.
한미해병이 주축이 된 연합군은 낙동강전선에
밀집된 북괴군을 섬멸. 적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수도를 탈환했다.
이 작전에서 해병대전사자는 512명(미해병 415,
한해병 97).
미7사단 전사자 66명, 부상자 총 26백명.
미국에 대해 고마운 줄 알아야. 그렇지만
우리는 트루만을 두고두고 원망하고.
밀물시간에 맞춰
아침 밀물시간, 저녁 밀물시간에
2차에 거쳐 상륙.
6:33분에 월미도 녹색해안,
17:30분 만석동 적색해안, 문학산 아래 청색해안.
경진 친구 훤히 꽤고 있었다.
월미돈대와 월미포대
숙종때 강화도 돈대와 함께 건립.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기 곤란한
능선, 계곡가, 해안에 돈대를 쌓음.
공원입구로 내려가는 길
새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요즈음 탐조가의 숫자가 눈에 띄게느는 듯.
올 2월 철원 소이산 올랐을때
이태곤선생 덕에 귀한 두루미(학)사진을
얻어 볼 수 있었다.
월미산책을 끝내고 오이를 먹는 그 맛!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만두집 앞은 붐볐고
해안 천주교 성당.
1960년대 화교를 대상으로 성당이 세워졌지만
이제는 한중 합동 성당.
젊은이들을 위한 채널12 카페
1884년 서울, 인천간 우편물 교환 시작.
거리엔 우체통, 우체부 형상이 서있고.
수제맥주 인천맥주 공장
뻥과자를 기다리는 행렬.
40년 전통의 원조집.
당초 민어탕이나 닭강정+생맥을 하려 했으나
명품집은 기다리는 줄이 길었고.
컴포우즈커피에서 커피 한 잔.
오전의 짜장, 산책 중의 간식, 차이나타운의
뻥과자 덕에 아직도 배가 팡팡.
한잔에 1500원, 여기도 손님이 많았다.
더듬더듬 기계로 오더를 냈지만
한 참 기다려야했다.
앞으론 이러한 주문에 익숙해져야 하겠고.
동인천에서 급행 타고 집에 오니 6시가 넘었다.
이날 걸은 거리는 23천보.
'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동행 길에도 접히는 마음이 있는 걸
헤어짐의 길목마다 피어나던 하얀 꽃
따가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
(목필균, 1954-, 6월의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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